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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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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영복 교수님.  

저는 올해 전북대 과학학과에 입학한 신입생으로서, 신영복 교수님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등을 읽으며 멀리서나마 흠모해왔던 신동관이라는 학생입니다. 특히, 최근에 내셨던 <강의 - 나의 동양고전독법>의 책은, 우리네 사상에 대해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나아가 제 삶으로의 체현까지 이루고 싶었던 제 소망에 등대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진실히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고3 올라가던 때, 가끔씩 챙겨보던 KBS <TV, 책을 말하다>에 신 교수님께서 나와 <강의>란 책을 설명하고 계신 걸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어! 새 책 내셨나보다.' 하고 주의 깊게 들었는데, 당시 저로서는 우리네 사상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 무변했던 터라 이를 인연이라 여기고 단박에 그 책을 독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어느덧 1여년이 흘렀습니다. 수십 년째, '태산준령 앞에 빗자루 들고 쓸고 계신' 선생님 앞에서 주름 잡는 격입니다만, 동양사상에 대해 점차 눈이 뜨이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궁금한 것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은 때가 된 듯 합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예전과는 달리,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글을 쓰는 방법도 작시의 소재나 사상의 정도도 많이 변했다는 점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데로, 저와 같은 청소년기에 우리네 사상에 대해 공부(그것을 공부라고 할 것도 없다고 하셨지만)를 하면, 아마도 저 깊이 심층의 정서로 쌓이는 탓에 그러는 모양입니다.

생면부지. 면식도 없었던 제가 선생님 앞에서 너무 과도한 잘난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러한 글을 보내게 된 데에는 피치 못할 사연이 있습니다.

지금 저는 대학에 다니질 않고 휴학을 한 상태입니다. 만 18세가 되던 해에 결심하였던 나홀로 외국여행(1~2여년간)을 결하고자 하는 탓에, 입학식을 마치고 얼마 안 되어 휴학을 신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외국여행에 필요한 수속들을 모두 마치고, 지금은 막바지 준비에 한창입니다.

약관의 나이로, 말하자면 난생 처음 부모님과 동생들 그리고 다정한 옛친구들과 헤어져 국외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금 저로서는 두렵기도 설레기도 한답니다.  

이번 워킹할리데이비자를 통해 1년 동안 국외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단순히 '여행'이라는 관광에의 의미를 뛰어넘어, 우리와는 또 다른 어떠한 '삶의 현장'을 목격하고 발견하며 체험으로까지 이룰 수 있다고 한다면, 분명히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후회 하나 없이 소중히 간직할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외람된 말씀을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여행과 감옥, 이 둘 사이에 자유도를 설명하는 스펙트럼이 있다면 아마도 저마다 최끝점에 위치할 일이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분명한 공통점 하나가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왔던 환경과 시대와 받아왔던 교육과 사상에 대하여 최대한 엄정히 자기반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선 여행살이와 감옥살이는 통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여행살이를 하려고 하니까 한 가지 문제가 생겨서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여행과 감옥의 닮은 꼴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여행의 특성상 여행자가 바리바리 책을 소지하면서 다닐 수가 없지요. 또, 외국에까지 나가서 부모님께 불편스럽게시리 매번 책 보내달라고 떼를 쓸 수도 없는 일인지라 저로서는 가져갈 책 선정에 심사숙고 해야 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도 그러했듯이 저 또한 "한 권을 가지고도 오래 읽을 수 있는 책" 여러 권을 한 권으로 제본해서 들고 가려고 하는데요, 여기서 선생님께 부탁 하나를 하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동양고전은 고전인데, 중국의 것이 아닌 한국의 경과 전을 추천해 주십시오. 물론, 중국의 것과 한국의 것을 나누고 보려는 단순이분법은 어차피 우리네 사상이라는 점에서 지양해야 할 일인 줄로 압니다만, 저는 그보다 더 큰 의미를 품고자 해서 잠시 구분했으니 이해해주시리라 믿고 계속해서 제 생각을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인 김관식이라는 양반은, "한자를 모른다는 것은 동양인임을 포기한 것 아니냐!"라고 설파했다지만, 저로서는 "한글로도 할 수 있는 걸 굳이 한자로 써야 한다고 하는 것은 한국인임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라고 되묻고 싶었습니다.(그가 작고시인이라 직접 그럴 수는 없었지만요. ㅡ.ㅡ;;)

옛 중국 당대의 굴지하는 시인들 문인들이 모여 시경 서경 초사를 만들었다면, 분명 우리 나라에도 그보다 상급이었으면 상급이었지 그런 고전시 모음집 하나 없을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논어 노자도덕경 장자 중용 등 사상이 만발하던 제자백가 시대의 중국 경전들이 존재하듯, 대한민국 땅에도 한국인 고유의 정신과 혼이 깃든 한국 경전들 또한 있을 줄로 믿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동양사상의 출발이자 서론은 인도요, 본론은 중국이고, 결론은 대한민국이라 합니다.(일본인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일본경전에 대해서도 공부해봐야 할 일이라고 저는 봅니다.) 비단 동양사상의 결정판이 대한민국이라서가 아니라, 논리 중심의 서구 철학적 방법이 아닌, 유식 중심의 인도 철학적 방법도 아닌, 격물치지의 중국 철학적 방법도 아닌, 우리 한국인들의 혼이 담겨 있는 철학과 사상을 익히고 싶다는 얘기올시다. 그렇다고 해서 진리연한 일체 사이비적인 학문이나 교양이나 사상이나 주의 따위는 저에게는 무용의 장물일 따름이고, 따라서 생사관두에 선 절박한 심정과 고민으로 이렇게 선생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부디 제 부탁을 거절 마시고 우리네 사상, 엄밀히 말해서 우리 한국인들의 철학과 사상을 영험할 수 있는 눈을 지닐 수 있도록 명리를 떠난 청담을 청하는 바입니다.

사실 저로서도 많은, 무수한 번민이 있었습니다. 한국 고전에 관하여 경과 전, 그리고 저와 같은 비전공자들도 잘 따라갈 수 있게끔 잘 풀이되어 있는 책은 없나 찾아도 보았지만, 어렵고 훈고학적인 것들이 상당했으며 게다가 저로서는 한국사상의 기틀을 다지는 것이라 더욱 신중을 기했던 탓에 몸보다 생각만이 앞서는 꼴이 되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질 못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수님의 책처럼 믿음직스러운 점까지 고려해야 하니 책 고르는 것을 두고 마치 십면초가에 놓인 격이었지요.

4월 7일부로 저는 이곳을 떠납니다. 진작에 신 교수님께 여쭈어볼 걸 이라 후회해보지만, 그 늦은 시간만큼이나 제 메일을 과연 읽어보실지 또 답을 해주실는지 조차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괜히 교수님께 수고를 얹혀드리는 것 아닌가 염려스러울 따름입니다.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메일 보내드립니다. 안녕히 계시고, 몸 마음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의> 책 감사드립니다.

4월 3일 서울에서.
이러한 이메일보다는 편지로 보내드려야 어울릴듯한 신 교수님께

신동관 드림.


추신 : 아무래도 못 읽으시고 지나치실까 걱정이 되는바, 삼고초려마냥 세번째에 글을 여기에 남깁니다. 정말 시간이 촉박하네요. 죄송합니다만 신 교수님께서 제게 답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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