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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5.02.04


[세상 읽기] 적어도 꼰대는 되지 말자!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학생들 다니는 분식집에서 국수를 한 그릇 먹고 있었습니다. 매운맛이 코를 자극하는 바람에 잠시 고개를 세우고 옆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지요. 그때 벽에 붙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1. 앞만 보고 가자. 내 인생에 뒤란 없다. 2.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3. 남처럼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 4. 공부는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거다. 5.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우리 학생들이 참 안쓰러웠습니다. 국수라도 좀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물론 자신의 식당을 다녀간 청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잘되길 바라는 건 좋은 마음입니다. 저는 분식집 주인의 이런 마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선의가 바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심지어 상황이 더 힘들고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선의가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결합하면 그리될 수 있지요.


신영복 선생의 서화집에 나오는 지남철(指南鐵, 나침판)의 비유를 떠올려봅니다. 제대로 작동하는 지남철은 바늘 끝이 늘 불안스럽습니다. 떨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고장 난 지남철의 바늘 끝은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어느 쪽이 남쪽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듯 말입니다. 학생 땐 흔들림 없이 확신에 가득 차 있던 선배들이 부러웠습니다. 뭐가 뭔지 잘 몰라 더듬대고 버벅거리던 제 모습이 불만스럽기도 했고요. 시간이 꽤 흐른 뒤 신영복 선생의 서화집을 보고 나서야 저는 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떨리는 게 정상이야!” 물론 지남철의 비유는 무지에 대한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온전한 지남철은 마구잡이로 떨지 않습니다. 남쪽이라는 구체적인 지향점이 있지요. 그런 떨림을 유지하라는 건 정체되지 말라는 요구입니다.


리영희 선생의 글을 처음 봤을 때 받은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건 선생의 ‘절필 선언’이었습니다.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신적·육체적 기능이 저하돼 지적 활동을 마감하려니 많은 생각이 든다.…” 절필은 ‘지적 활동의 마감’을 뜻했습니다. 건강 문제도 있었지만, 지적 능력의 한계를 선생이 스스로 인식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의 절필 선언은 제게 큰 울림이었습니다. 존경받던 지식인이 말년에 이르러 정확하지 않은 현실 인식으로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 결과적으로 분란을 일으킨 사례가 왕왕 있었기에 더 그랬습니다.


분식집 주인이 걸어놓은 글귀는 현실에 맞지 않는 주장을 선의로 하는 기성세대의 단면입니다. 과거를 살아온 경험만으로 미래세대를 위해 조언하는 건 허망해 보입니다. 외우고 기억하는 일은 사람이 기계를 앞설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공부를 잠을 줄여가며 해야 할 때가 아니지요. 제가 학생이었던 시절은 산업화 시대였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금은 정보화를 넘어 인공지능의 시대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구글은 인제 제 목소리를 제법 잘 알아듣습니다. 페이스북은 사람의 얼굴을 사람만큼이나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앞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컴퓨터와 빅데이터의 몫이 될 것입니다. 정보격차로 말미암은 불평등도 더 깊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또 우리가 그 시대를 어떻게 열어가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해법을 새로운 문제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이들을 일컬어 속된 말로 꼰대라 하는 모양입니다. “적어도 꼰대는 되지 말자!” 해가 갈수록 거듭 저 자신에게 하게 되는 다짐입니다. 끊임없이 공부하면서도 점점 더 부족해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게 이런 다짐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인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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