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인사이드컷] 신영복의 '처음처럼'
2014.09.05 | 이보배 기자
[프라임경제] 주부가 되니 친구를 만나도 마트에 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오랜만에 친구 얼굴을 보는 것도 좋지만 내일 아침 찬거리 걱정에 마트 한바퀴 돌아보는 것이 일상이 된 것이죠.
간만에 만난 친구와 최근 대형마트를 돌아보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사진 속 소주를 보게 됐는데요. 소주를 슬러시처럼 얼려먹을 수 있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며 찾아간 주류 코너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생김새는 흡사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젤리형 음료수를 닮았는데요. 외관은 영락없는 술병이었습니다. 팩에 담겼을 뿐이지 소주병 모양을 하고 있는 외관에 웃음이 터졌는데요. 냉동실에 2시간만 넣어두면 슬러시 형태의 소주를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 속 소주팩을 가만히 쳐다보니 몇해 전 지인에게 들은 처음처럼 로고에 대한 얘기가 떠올랐는데요. 보기만해도 시원해보이는 '처음처럼' 서체는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신 교수에게 부탁해 사용하게 됐다고 합니다.
신 교수는 '처음처럼'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언제나 처음처럼 새 날을 맞이하듯 초심을 잊지 않는 삶을 살고픈 마음을 '처음처럼' 소주 한 잔에 담아내고자 했다네요.
아, 그러고 보니 '처음처럼'이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단체를 지원한다는 악성 루머가 퍼지기도 했는데요. 처음처럼의 판매수익금의 일부가 좌익 또는 북한 세력에 지원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같은 루머는 1986년 통혁당사건으로 복역한 전력이 있는 신 교수의 '처음처럼' 로고 서체를 사용한 것이 이유가 됐는데요. 롯데주류에 따르면 2006년 소주 '처음처럼'을 출시한 두산은 로고 서체 사용 허락에 대한 감사의 사례비를 신영복 교수에게 제의했습니다. 하지만 신 교수는 완강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다만, 본인보다는 후학을 위해 써줄 것을 당부해 성공회대 장학금 1억을 기부하는 것으로 대체됐는데요.
이런 연유로 당시 한기선 두산 사장은 2006년 1월31일 성공회대 새천년관 4층 회의실에서 장학금을 전달했습니다. 그렇지만 신 교수의 서체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이적단체에 기금이 지원된다는 루머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죠.
이와 관련 롯데주류는 "성공회대 1억원 장학금 기부 이외에는 어떠한 금전적 지출도 없었음을 말씀드리오니, 부디 일말의 오해도 없기를 바랍니다"라는 글을 자사 홈페이지에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