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기자
비 갠 17일 오후, 가을로 물든 서울대 관악캠퍼스를 찾았습니다.
관악산 자락에 자리한 서울대는 과거 골프장이었던 곳입니다.
서울에서도 풍광이 좋은 곳 중 한 곳으로 꼽히죠.
봄 내 하얀 꽃눈을 날리던 삼거리 벚꽃나무는 어느새 붉게 물들었습니다.
노랗게 색 바랜 버들골엔 연인들의 애틋한 몸짓, 청춘들의 한숨소리가 들려옵니다
도서관 앞, 햇빛에 부서진 은행잎은 눈 멀게 합니다.
하늘에 맞닿은 기숙사 건물들이 그려내는 파란 그림.
경영대 벽 울긋불긋 담쟁이넝쿨.
비 머금은 낙엽, 낙엽…
독자 여러분께 신영복 선생님의 글귀와 함께 가을을 선사합니다.
“여름 내내 청산을 이루어 녹색을 함께 해오던 나무들도 가을이 되고 서리내리자 각기 구별되기 시작합니다. 단풍드는 나무, 낙엽지는 나무, 끝까지 녹색을 고집하는 나무….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 바람이 눕는 풀과 곧추 선 풀을 나누듯, 가을도 그가 거느린 추상(秋霜)으로 해서 나무를 나누는 결산(決算)의 계절입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우리들은 추수라도 하듯이 한 해 동안 키워온 생각들을 거두어봅니다. 금년 가을도 여느 해나 다름없이 손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공허한 마음은 뼈만 데리고 돌아온 ‘바다의 노인’ 같습니다”
“캘린더에는 단풍의 계절이 흐드러져 있습니다. 이월화(二月花)보다 더 붉은 홍엽(紅葉)들이 높은 가을 하늘 아래 타는 듯합니다. 실생활의 중량이 배제된 ‘창고의 공허’ 속으로 계절은 다만 한난(寒暖)으로 환원되어 찾아왔다 돌아갑니다. 망치가 가벼워 못이 튈까 조심하고, 여름이 시원하여 겨울이 추울까 염려하다가도 계란을 보고 새벽을 묻는 조급함에 스스로 고소를 금치 못합니다. 어쨌든 달력의 가을 풍경을 보고 이내 겨울옷을 꺼내는 것을 지혜라 일컫기에는 아무래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의 짧은 가을이, 여름 동안 부대끼고 지친, 우리의 땀투성이가 된 정신을, 그 청량한 가을 하늘처럼 정갈하게 씻어줄 것입니다.”
*위 글들은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발췌했습니다.
김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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