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 광장] 협력하는 인간이 만드는 희망, 경제적 인간은 가라
한겨레신문 2013.09.03
협동형 인간 시대
2008년 터진 세계 경제위기의 상처를 보듬고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고 있다. 바로 ‘협동형 인간’(상호적 인간: Homo reciprocan)이다. 협동형 인간은 합리적·이성적인 면과 함께 비합리성과 감성적인 면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사회를 이뤄 서로 의지하고 돕는 인간이다.
복지사회와 지역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공유경제가 활성화하는 뒤편에서는 논문, 책, 대중매체의 보도, 강연 등을 통해 새로운 인간형이 만들어지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 김춘수의 <꽃>은 우리 존재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 남이 이름을 불러 줄 때 비로소 내가 된다. 사람이 무엇이냐는 것도 고정불변이라기보다 여러 이야기(담론)들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해간다.
2004년 나온 최정규 경북대 교수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나 노벨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비롯해 국내외에서는 인간의 상호성을 밝혀주는 책들이 잇따라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경제학과 심리학의 경계에 있는 행동경제학이나 진화생물학에서 관련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대학과 문화센터에서도 이런 강좌에 수강자들이 몰린다.
상호적 인간은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의 알을 깨고 나왔다. 경제적 인간은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근대 학문이 만들어낸 이야기였다. 경제적 인간은 시장에 적합한 인간인데 이익과 비용을 합리적으로 비교·판단해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이기적 선택)을 한다. 가격이 행동을 결정하는 시장거래에서 인간은 실제 이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시장이 세상만사를 해결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믿는 근본주의가 득세하면서 인간의 합리성과 이기심이 지나치게 강조된다. 특히 지난 30~40년을 휩쓴 신자유주의는 시장이 자연적이며 완벽한 제도이기 때문에 그걸 돌아가게 하는 인간도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 소유권을 확실히 하고 정보 유통의 제한을 없애며 정부의 개입과 같은 ‘잡음’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사실보다는 ‘희망사항’에 불과했지만 추상과 고등수학이란 ‘거탑’ 위에 올라앉은 주류 학자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결혼도 남는 장사이기 때문에 한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합리적 선택 이론, ‘웬만한 정부정책은 국민이 결과를 예측해 반응하기에 효과가 없다’고 얘기하는 합리적 기대 가설, ‘주가 같은 금융시장의 가격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정보가 반영된 것이어서 거품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효율적 시장 가설 같은 이론이 경제를 넘어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 들었다. 이런 경제학의 본산인 시카고학파는 1969년부터 2000년까지 노벨경제학상의 30%를 휩쓴다. 그 결과는 대공황에 버금간다는 지금의 고통스런 상황이다.
경제적 인간은 이론에서 먼저 반박을 당했다. 행동경제학의 연구는 인간이 완벽한 정보를 갖고 합리적 판단을 하기보다는 제한된 범위에서 주먹구구식으로 판단함을 보여준다. 메뉴판에서 중간 가격을 고르듯 우리의 행동은 준거의존적이다. 광고를 보면 마음이 바뀌듯 정보가 어떻게 ‘프레임’ 되느냐도 중요하다. 이렇게 인간의 본성이 불합리하기에 시장의 거품과 붕괴가 반복되는 것이다.
아울러 한 사람에게 1만원을 주고 옆의 동료와 적절히 나눠 가지도록 하는 ‘최종제안 게임’ 같은 실험을 해보면 경제적 인간은 1원을 줘야 합리적이지만 4000원 정도를 나눠준다. 즉 인간은 상대방을 의식해서 행동하며, 정의가 아니라고 보는 행동은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응징한다.
또 진화생물학은 다른 많은 동물처럼 인간이 왜 이기성과 함께 이타적 속성을 진화시켜 왔는지를 설명한다. 마틴 노왁 하버드대 교수는 <초협력자>에서 혈연선택, 직접상호성, 간접상호성 등 5가지 원칙을 들어 장기적으로 이타적 행동이 살아남는 원리를 설명한다.
아울러 게임이론은 우리가 이기적이고 합리적으로 선택함에도 사회적으로는 최적이 아닌 결과가 나오는 딜레마가 발생함을 보여준다. 내 자식 높은 점수 받으라고 과외를 시키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지만 모두가 그러다 보니 아이들만 고생하고 돈은 돈대로 들어간다. 누가 좀 말려줬으면 좋은 그런 상황이다.
합리성·이기심 강조한 신자유주의
지금의 고통스런 상황 몰고와
행동경제학, 진화생물학 등
인간의 상호성에 주목
복지사회, 지식기반 경제서
협력과 믿음은
한계 부닥친 한국 경제 키워드
인간사회에서 1+1을 3으로 만드는 방법은 협력이다. 인간의 협력적 본성은 계발돼야 하는데 대화나 토론 같은 소통을 늘리면 발전한다. 서로의 관계를 장기로 가져가고, 집단의 크기를 줄여 친밀성을 높이는 것도 협력의 밀도를 높이는 데 중요하다. 협력의 바탕이 되는 것은 믿음인데, 믿음을 강제하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사회적 자본’이라고 한다.
상호적 인간이 부각되는 것은 단지 도덕적 의무감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사회적으로 인간의 그런 속성이 요구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첫째, 경쟁뿐 아니라 협력의 경제적 가치를 알게 됐다. 믿음이라는 사회적 자본이 잘 갖춰진 나라는 일일이 의심하고 확인하느라 비용이 들지 않아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 또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진 사회는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진다. 육아, 간병 등을 사회적으로 ‘공동구매’하는 복지는 이런 격차를 줄여 안정적 성장의 발판이 된다. 그래서 복지를 “퍼주기” 또는 “예산 낭비”라고 눈을 치켜뜨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둘째, 경제가 제조업을 벗어나 지식기반 경제로 변했다. 지식기반 경제의 결정판인 네트워크 경제는 특히 협력과 신뢰로 움직인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능가한 <위키피디아>에서 보듯 지식은 함께하고 나눌 때 가치가 커진다. 애플의 콘텐츠 마켓인 앱스토어도 마찬가지다. 아이디어가 가치의 원천인 네트워크 경제의 혁신은 개방, 공유와 참여를 통해 일어난다.
결국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신뢰의 네트워크를 확산하고 서로 협력하는 ‘상호적 인간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성장의 한계에 부닥친 한국 경제의 과제인 것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
협력과 호혜의 협동조합…청년들의 새로운 선택지
‘제2회 청년 협동조합 콘퍼런스’ 열려
이 시대의 대다수 청년은 승자가 없는 모순된 게임을 하며 살아간다. 성적이 좋아 명문대에 가더라도 힘든 취업의 관문에서 좌절을 맛본다. 청년들이 마주하는 고달픔은 ‘효율’과 ‘경쟁’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미 난 길을 아주 조금 넓혀주는 것이 아니라 전에 없던 새 길을 찾아내도록 조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달 말 성공회대학교에서는 청년들이 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길을 통해 미래를 모색해보는 ‘제2회 청년 협동조합 콘퍼런스’가 열렸다. ‘협력’과 ‘호혜’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협동조합이 청년들의 미래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사진)는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가 외면한 다양한 ‘관계’들을 협동조합 개념을 통해 회복하자고 당부했다. 그간 우리는 효율과 경쟁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개인주의화한 나머지 다양하고 유익한 관계들을 외면하고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공동체에서의 협력과 호혜성과 같은 유익한 ‘관계’들이 복원돼야 하고, 이럴 때 여러 생각이 어울려 새로운 길을 트는 동력이 생길 거라고 강조했다.
이원재 전 한겨레경제연구소장은 청년들이 협동조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로 주인의식을 들었다. 높은 직무 스트레스와 직원 개인의 다양한 욕구가 상충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인의식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주주가 주인인 주식회사에선 이러한 생각을 지속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종업원 협동조합을 통해 공동의 지향점을 함께 설계하고 달성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기존의 경쟁원리에 익숙한 기성세대에 비해 이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운 청년들이 협동조합 창업과 운영에 더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행사는 협동조합 관계자와 청년 협동조합 창업자, 그리고 협동조합 취업을 고려하고 있는 취업 준비생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협동조합 기업에 대한 관심 때문에 참석하게 됐다는 오수지 학생(성공회대 경영학부)은 “협동조합에 대한 원론적인 수준의 논의에서 탈피해 협동조합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과 마음가짐 등을 이야기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jkseo@hani.co.kr
임대아파트에 꽃씨를 뿌리는 사람들
<동네 안에 국가 있다>.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이 올봄 출간한 책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국정을 경험했던 그가 기초단체장으로 1000일을 재임한 뒤 ‘동네 안에 우주의 총체가 녹아 있는 느낌’이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국가의 축소판인 마을과 동네에서 현 시대의 아픔과 고민을 먼저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8일 강원도 원주시 토지문화관에는 마을과 동네에서 대안을 찾는 사람 30여명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마을형 사회적기업 설립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들이었다. 엘에이치와 함께일하는재단은 2010년부터 엘에이치 공공임대주택단지를 중심으로 12곳의 지역에서 마을형 사회적기업을 설립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활동가들로부터 듣는 임대아파트의 현실은 참으로 삭막했다. 대부분의 임대아파트에 임차인 대표 회의나 부녀회가 없다고 했다. 정주의식이 없는 주민으로 가득 찬 아파트단지라니.
그런 곳에서 마을형 사회적기업을 일구는 이들은 세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사람들이다. 주민의 공동체 관계를 강화하고, 주민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사회적기업의 경제적 자립도 확보해야 하기에 그렇다. 무모해 보이는 시도이기에 이날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사정을 토로했지만 해결의 단초는 쉬이 드러나지 않았다.
다음날은 다 같이 협동조합의 메카 원주시를 둘러봤다. 원주협동조합 운동의 산실인 밝음신협 4층에 올라갔을 때 벽면의 액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시민여상(視民如傷), 즉 ‘민중 보기를 상처 입은 사람 보듯이 하라’는 맹자의 문구로, 원주에 협동조합의 씨앗을 처음 뿌린 고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의 글씨였다.
1960년대부터 ‘고리채로부터 농민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사람답게 사는 공동체를 만들자’ ‘만민이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등 지금도 울림이 큰 외침을 수십년간 실천에 옮긴 장일순 선생이 아닌가.
그런 선생이 성인의 문구로 자신을 늘 경계했다는 설명에 활동가들의 시선이 그 벽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자신의 마을마저 부정하는 임대아파트 주민의 상처를 보듬으려는 그들의 도전이 언젠가 꽃을 피울 튼실한 씨앗이길 바란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an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