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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12.01.18 19:18

무좀? 블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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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무좀 블라우스 알아?”
약을 먹고 겨우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동생의 한 잔 걸친 맛이 간 목소리다.
“지, 지금 몇 시니?”
“2시 밖에 안 됐어.”
“뭐 2시! 야 새벽 2시가 밖에 안 된 거야? 넌 안 자고 뭐하니? 새벽 2시에 무좀이고 블라우스고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야?”

“아! 언니! 귀 먹었어? 무좀이 아니고 무정 브루스!”
“나 가는 귀 먹은 거 몰라? 그리고 무정이고 무좀이고 그게 왜?”
“언니 그 노래 너무 좋지 않아?”

새벽에 자는 사람 깨워 무좀이고 블라우스고 좋으면 혼자 좋아하지  술 한 잔 마시고 한다는 소리가 노래가 좋으냐고? 내가 이 년을 죽여야지, 싶었다.

“너 지금 제 정신이니? 무좀이 왜? 블라우스가 왜? 너 보고 뭐래?”
“언니 그 노래 아냐고?”
“몰라! 무정인지 유정인지 잠 좀 자자!”
“언니, 글 쓰는 사람 맞아?”
“야! 거기에 글 쓰는 얘기가 왜 나와!”
“글 쓰는 사람이 감정이 왜 그 모양이야?”
“그래서 글 못 쓰잖아! 난 공짜고 할 일 없어 치매예방 차원으로 대학원 다니는 거야. 문학 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입에 거품 물 말이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우리말을  쓰는 공부가 제일 쉽다고 생각하니까. 골치 아픈 수학이나 단어 안 외워도 되고.”

“언닌 정말 너무 현실적이다. 언닌, 그 산속에서 외롭지도 않아?  가슴이 시리지도 않아?”
“산속이라 조용하고 더 좋다, 꼴 보기 싫은 사람들 안 보고, 그리고 자는데 뭐가 외로워! 넌 ‘잠’이란 공간에 둘이 같이 들어가서 자냐? 어차피 잠은 각각 혼자 자는데 뭐가 외로워! 따뜻하게 보일러 켰는데 왜 가슴이 시려? 시리면 몸에 병 난 거지.”

“할 말이 없다. 언닌, 참 가슴이 없는 여자다!”
“그래, 그래, 나 가슴 없어! 이제 알았냐? 나바론의 건포도야.”
“나바론은 또 뭐야?”
“세계에서 제일 높은 절벽!”
전화기 속에서 낄낄 거린다.
“언닌, 개그맨이 돼야했어.”

“야, 개그고 가글이고 이제 제발 잠 좀 자자.”
“언니 무정 브루스 너무 좋아, 난 언니가 그 노래 알면 불러달라고 하려했는데……”

엄마야! 내 동생이지만 얘 정말 미쳤나보다. 새벽 2시에 노래를 불러 달라고? 이거 미친년 아니야?

“언니, 난 너무 외로워.”
“뭐가 외로워? 자식 있고, 이 추운데 잘 집 있고, 남편은 없지만 그거야 뭐 있을 때도 있으나 마나였던 인간이었고, 새삼스럽게 도대체 뭐가 외롭냐고?”
“언닌 집과 자식 있으면 안 외롭냐?”
“당연하지! 집 있고, 자식 있고, 김치 있고 쌀 있는데 뭐가 외로워?”

“참나! 내가 말을 말아야지! 언닌 엄마 생각 않나?”
“않나! 않나! 자는데 돌아가신 엄마 생각? 하나도 않나! 그리고 지금 시간엔 엄마도 주무시고 계실거야.”
“언니 난 이 어둠이 싫어, 날 삼키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어.”

“너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너야말로 문창과 들어가서 시 써. 시는 너 같은 얘가 써야해.”
“내가 무슨 시를 써?”
‘지금 나한테 한 얘기가 시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전화 끊고 지필묵, 그러니까 연필과 공책을 꺼내 네가 말 하고 싶고 느낀 것을 전화로 하지 말고 글로 쭉~써.
계속 쭉~ 알았지?”
“알았어, 끊을게, 언닌 잠이나 실컷 자!”

다시 자라고? 다 깨워놓고?

“그래, 고마워 눈물이 나려고 한다.”

전화를 끊고 엄마와 너무 닮은 동생을 잠시 생각한다. 사랑 하나에 목숨 걸어 주위 사람들을 죽도록 고생시키는.

“언니, 난 사랑하는 사람이면 심장도 떼어 줄 수 있어.”

“미쳤냐! 심장은 하나 밖에 없는데 떼어주고 죽으면 무슨 소용 있어?  넌 죽는데? 그 사람은 살아나서 다른 사람 사랑하라고? 야! 너 그러다 진짜 간이나 신장 떼어달라고 하는 인간 만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제발 정신 차려!”

"그럼 떼어주지 뭐! 사랑 하는데."

"미쳤구나! 이제 하다하다 장기까지 떼어주겠구나! 여자에게 간이나 신장 떼어 달라는 그런 인간이 사랑 때문에 널 만나겠니? 장기 떼어 장사 하러 만나지! "
"언닌, 정말 뜨거운 가슴이 없어 사랑을 몰라, 모든 게 부정적이야."
"됐고! 나 지금 보일러 틀어서 가슴 엄청 따뜻해.
그러니 정신차려! 이 친구야! 제발!!!"

엄마, 제발 엄마 딸들 좀 정신 차리게 도와주세요.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건
엄마로 충분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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