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숲속의소리

2011.12.31 21:35

싹 다 벗고 오세요

댓글 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며칠 전 유방검사를 하기 위해
예약 날 검사실에 검진표를 내고
알려준 방 앞에서 기다렸다.

내 순서가 돼 들어갔다.
바쁘게 뭔가 갈아끼우던 검사관은
계속 일에 몰두하며
"거기 위에 가운 있지요? 싹 다 벗고
가운으로 갈아 입으세요."

'싹 다???'
'가슴을 찍는데 왜 싹 다 벗어야하나??'
신식 기계가 나왔나??'

그렇게 궁금해 하며 시키는대로 몸에 걸치고 있던 것은
싹 다 벗고 가운을 입고 나왔다.

"다 벗으셨어요?"
30이 넘었을까, 그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 검사관이
내 모습을 힐끗 보며 물었다.
"네."

"그럼 이리오셔서 가운을 풀고 가슴을 여기 유리 위에다
대세요."
"네??"
가운을 풀면 어떻게 되는 건가?
난 그냥 홀딱 벗은 전라인데.....

"가운 풀고 여기에다 가슴을 올려놓으시라구요."

미적 거리고 있는 나에게 검사관이
"나도 지금 바빠 죽겠거든, 말귀 좀 빨리빨리 알아들어라.'
라는 표정과 말투였다.

"저기....싹 다 벗으라고 해서 다 벗었는데요.....
어떻게 가슴을 풀어요....."

기어들어가는 나의 말에 검사관은
"네?"
하더니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일그러졌 다.

"헛참! 아주머니 위에만 다 벗고 들어오시라고요."

"아~상의만요?"

"네, 아주머니 이 검사 처음 하셨어요?"

"아니요"

"그럼 아실 텐데...."

"전 그동안 새로운 기계가 들어온 줄 알았어요."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검사관은 허허 웃으며

"하의는 다 입으시고 상의만 다 벗고 오세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 진 나는

'바보 같은 녀석! 그렇담 정확하게 상의만 다 벗으세요, 라고
해야지, 저 녀석 학교 다닐 때 분명 국어 성적 최하위였을 거야.
젠장!
늙어서 이게 무슨 추태야!
아니, 경사인가???'

헷갈려하며 가슴을 찍고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어깨가 너무 아파 움직일 수 없었다.
병원에서도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가 나오고
무조건 운동하라는 진단만 나왔다.


"왜 이렇게 아픈 거지요?"
나의 물음에

젊은 여의사는
"나이가 들어서 그래요."
대답은 간단했다.

통증이 심해 물었다.

"약이 없나요?"

약이 있다면 아플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옆에 있던 레지던트 선생이 미안한지
얼른 나의 눈치를 살폈다.

'싹아지 없는 것!
너의 젊음이 영원한 것 같지?
하긴 나도 그랬으니까....'


오른쪽이라 생활하는데 더 힘이 들었다.
오십 견이 되었나, 라는 생각에
경락을 받으러 경락집을 찾았다.

들어갔더니 경락사가 탈의실로 안내한 뒤

"옷 다 벗으시고 이 가운으로 갈아입으세요."
하며 탈의실을 나갔다.

내 앞에는 깨끗하게 빨아 다림질까지 되어 있는
가운과 분홍색의 일회용 부직포가 비닐 안에
얌전하게 놓여있었다.

난 시키는 대로 다 벗고 가운으로 갈아 입은 다음
비닐을 벗기고 분홍색 부직포를 머리 위에 썼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머리를 감싼 머리띠 위로 구멍이 뚫린 것이다.

'요즘 경락집 머리띠는 이렇게 나오나???
아마 머리 위도 경락하기 위해 이렇게 나왔나보다.'
생각하고

"다 갈아 입으셨어요?"하며

날 데리러 들어오는 30대 여자 경락사에게

"이 머리띠 새로 나왔나봐요. 머리 위에 구멍이 둟려 있네요."

라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를 힐끗 보더니 풀썩 주저앉아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

난 영문을 모른 채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한참을 웃다 일어선 경락사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아주머니, 그거 머리띠가 아니고 일회용 빤쯔예요."

"네? 아니, 그런데 왜 일회용 빤쯔까지 갈아입어야하나요?"

"경락하다보면 속옷에 기름이 묻을 수가 있어서요."

"아~~네...."

나는 머리에 둘러쓰고 있던 신식 일회용 빤쯔를 주섬주섬 벗었다.


한 시간 뒤 어깨 위에 잔뜩 부황을 뜬 붉은 상처들을 만들고
한 해가 가는 길로 들어섰다.

이렇게 또 박명아의 한 해가 가는구나

힘 내자!!!
박명아!!!
머리에 일회용 빤쯔를 뒤집어 써도
싹 다 벗어도 괜찮아!!
팔이 아파도
약이 없어도
괜찮아!!
씩씩하게 가는 거야!!!
앞으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225 미개하다.미개해 소나무 2003.03.22
3224 우리 둘째 아들의 전향 9 정연경 2003.03.22
3223 [re] 신영복 선생님을 초청강연회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3 그루터기 2003.03.24
3222 신영복 선생님을 초청강연회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263 희망 2003.03.23
3221 나무가 거목에게 6 david jung 2003.03.23
3220 찜질방 이야기 3 솔방울 2003.03.23
3219 인사드립니다.. 272 김미혜 2003.03.24
3218 직업을 구하고 있나요? 박경화 2003.03.24
3217 숲 - 길 1 사람의 숲 2003.03.25
3216 숲 - 무덤 2 사람의 숲 2003.03.25
3215 숲 - 오르다 사람의 숲 2003.03.25
3214 숲 - 저녁 사람의 숲 2003.03.25
3213 파병동의안 국회처리 4월2일로 연기. 267 송정복 2003.03.25
3212 새옹지마 david jung 2003.03.26
3211 [re] 처음 와본 이곳이 참 맘에 듭니다..^^* 1 신복희 2003.03.26
3210 처음 와본 이곳이 참 맘에 듭니다..^^* 1 박아란 2003.03.26
3209 요즘 나는...... 3 김지영 2003.03.26
3208 이희, 박춘화나무님의 두번째 공주님탄생을 축하드립니다. 2 이명구 2003.03.26
3207 오늘 술을 마신 이유 6 슬사 2003.03.27
3206 숲 - 바람이 멎지 않는다 3 사람의 숲 2003.03.27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167 Next ›
/ 16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