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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바지랑대를 굳건히 세우다
신복희, 그대에게 드리리, 에세이문학출판부, 2011년



글쓰기를 시작하면 여태껏 내가 몰랐던 일들이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며 인식시킨다. 그렇게 사물을 이해하면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점차 커진다.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세상을 읽을 수 있다. 수필 공부는 단지 쓰기 공부가 아니라 세상 살아가는 지혜와 예절, 이치를 깨닫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이치를 깨달으며 훌륭한 인격을 점차 갖추어 나가는 것이다.
- 「수필이란」, 198 - 199쪽

수필가인 저자가 수필에 대해 쓴 글의 일부분이다. 저자는 수필이 무엇인가  이야기면서 “음악처럼 리듬이 있어야 한다.”거나 “역사 속의 사건이나 사람을 예로 들어 현실과 빗댈 수 있어야 하고 다큐멘터리처럼 하나의 주제에 따라 같은 풍경이라도 각기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수필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는데 수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함축적으로 드러난 것은 역시 위에 인용한 글이 아닌가 싶다. 저자에게 수필은 “세상 살아가는 지혜와 예절, 이치를 깨닫는 공부”인 것이다.

저자가 이번 수필집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은 조상의 지혜다. 저자는 그것을 “우리들의 생활 속에 전해 내려오는 미신을 나름대로 풀어 본 글이 대부분”(「책머리에」)이라 말하고 있다. 우리가 조상의 지혜를 미신이라고 하여 낮춰 보고 마침내 버리기까지 한 상황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미신과 대비되는 과학 지식을 동원하거나 논리로 설득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저 일상에서 직접 겪거나 느낀 것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레 풀어나간다. 그리하여 저자의 글은 억지스럽지 않거니와 설득력이 있고 독자로 하여금 공감하게 한다.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던 말씀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사진 속에 남은 옛날을 생각하면서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눈물짓던 며칠은 발전이 아니라 어두운 퇴보였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물에 비치는 얼굴도 자주 들여다보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거울이 없던 시대의 말이라, 나르키소스처럼 외모에 스스로 반하여 자신을 망치는 일은 하지 말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일렁이는 물결에 비친 얼굴도 자주 보면 자신을 망친다고 걱정했는데 사진 속에 담아 두고 자꾸 본다면 영혼이 빼앗긴 사람처럼 허물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 「사진과 영혼」, 75 - 76쪽

저자는 이와 같이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던 말씀”에 코웃음 치는 현실을 성찰한다. 그리하여 그 말씀은 “단지 사진일 뿐인 가짜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진짜 사람을 누르”지 않도록 경고하는 것이라는 데까지 나아간다. 미신이라고 여기는 말이 매우 귀중한 말씀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저자의 미신에 대한 성찰은 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이며 새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설날 아침에 여자가 첫 손님으로 오면 일 년 동안 재수가 없다고 하는 미신”이 있는데 그것은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여성을 배려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바쁜 정월 초하루에 여성을 남의 집에 가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담긴 말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미신에 대한 성찰은 「밤이슬을 밟는 여인」「며느리 볼이 얼면」「엿 먹어라」「미신, 과학」「기둥에 못을 박으면」「방앗간을 없애려면」「밤에 장롱을 정리하면」「설날 아침」「계란으로 바위 치기」「밤에는 빨래를 널지 말라」같은 작품에서 계속된다. 그러면서 “우리가 미신이라며 쉽게 생활 속에서 밀어낸 말들은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게 하고 사색을 통하여 성숙할 기회를 준 가르침”이라고 강조한다. “사라져 가는 말들 속에 선명하게 비치는 생활 지침들을” 생활 속에서 길어내 성찰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생각을 확장한 것이다 보니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나 오류도 있다. “엿 먹어라” 같은 은어를 낱말 그대로 풀이한 것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받아들인 조상의 지혜에 수렴할 수 있는 정도의 주장이다.

저자의 미신에 대한 성찰이 집중된 것은 시골살이를 통해서다. 저자의 연륜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데 한몫 했으리라 여길 수도 있지만 더 크게 작용한 것은 자연 속에서 몸을 쓰고 살아야 하는 시골살이 덕분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가 “무거운 이불을 끝내 이겨 내지 못하고 부러”진 바지랑대를 버리고, “뒷산에 가서 직접 대나무를 꺾어 새 바지랑대를 만들어 세”울 정도로 몸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세상일도 그렇게 두려움 없이 시작하고 다듬고 세우”게 되었다. 그러하니 서울에서라면 차마 겪지 못했을 일들을 몸으로 겪으며 우리 조상들이 그렇듯 세상살이 지혜의 바지랑대를 삶의 복판에 굳건하게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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