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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만 이틀동안 외롭다고 징징거렸다. 발단은 바다를 보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였다. 바다보다 더 긴급하고 중요하게 생각되던 일이 나를 틀 속에 가두어버렸다. 마감일이 중요하기는 하다. 늘 그렇게 살아왔지만 이젠 일의 속도가 느려져서 놀 수 있는 시간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마음이 상하니 몸이 먼저 반응을 했다. 감기 비슷한 미열과 콧물이 일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고 시간만 빼앗아갔다. 허무했다. 농락을 당한 것 같았다.

엎친데 덥친다고 큰아이가 휴가를 같이 가기로 해놓고 엄마가 며칠 바쁘게 돌아다니는 동안, 혼자 짐을 꾸려 달아나 버렸다. 그래, 한번 해본 말이었겠지...그러나 이 시점에서 아이와 속깊은 얘기를 해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나는 그만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그 배신감이라니...꿈은 언제나 우리를 배신한다고 책에서나 읽었던 말들이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온 것이다. 게다가 작은 아이마저 일하러 멀리 가버렸다.  쓸쓸한 일들은 이렇게  한꺼번에   밀려오기 마련인가 보다.

갑자기 외롭다고 생각하니 정말 외로운 것 같았다. 책을 읽어도 외롭고 인터넷 서핑을 해도 외롭고 왔다갔다 해봐도 외로웠다. 한꺼번에 울려대던 전화벨도 딱 멈추고 적막한 오후다. 그래서 징징 거리기 시작했다. 모닝 페이지 카페에 가서 “큰일이네”라고 낚일 글을 한줄 써넣었다.  그래도 외로워서 문자를 보냈다. “외로워서 죽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냥 외로운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시간 반 후에 문자에 대한 답이 돌아왔다. 평소보다는 조금 빠른 반응이다. “가을을 타시네요. 추녀가 되셨습니다그려  책하나들고 커피 집 가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뜨건 물에 목욕하고 한숨자거나 친구하나 꼬셔서 술을 퍼먹으면 직방입니다.”

약을 올리는 방법도 가지가지. 카페에는 낯선사람, 황야의 이리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실연을 한 상태와 유사한 현상인데요..... 남녀불문 사랑의 대상을 찾아 나서시든지요”라는 처방을 주고 염장을 지른다. 누군가는 즐겨듣는 음악을 바꿔주겠단다. 좀 더 에너지가 넘치는 곡으로... 이 처방은 매우 산뜻한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조금 더 외로움 속에 해가지고 어둠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저녁 8시 반쯤 전화가 왔다. 네 개의 처방을 보내준 사람이다. “저녁은 드셨나요?...” 그리고 20분.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이런저런 얘기들로 말을 걸고 말을 들어주고 천천히 외로움을 거두어갔다. “어쩜 그렇게 족집게 과외처럼 외로움을 잘 아시는지요? 근데  1번 처방은 늘 하고 있는 일이라 그렇고 2번은 더 이상 자를 머리카락이 없는 짧은머리라 아닌것 같고 3번은 할 수 있고  4번은 마음에 드는데요.”  이런저런 두리두리 대화는 끝났고 “고마워요. 안녕히 주무세요.” 이상 끝.

이렇게 시작되는 것 같다. 머리로는 다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던 우울증도 이렇게 내게 가까이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엄살을 부릴 곳이 있었고 아직은 이렇게 징징거릴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만약  내가 더 자주 징징거리면 사람들은 아마 세 번까지는 참고 달래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지 못하면 그때는 관계에 서로 부담을 느끼기 시작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비가 왔지만 일부러 밖으로 나가서 말을 많이하고 왔다. 잘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 말을 하며 나의 외로움이 좀 정리가 되는 듯했다.

만약 살다가 “매사가 귀찮다”는 느낌이 들면 우울증이 찾아오는거다. 위태롭다. 그대로두면 점점 꼼짝하기가 싫어진다. 그렇게 혼자 꽁 박혀있으면 다음엔 점점 사람을 만나기 싫어지고 자기생각속에 갇히게 된다. 그때부터는 상황이 좀 복잡해질 수 있다. 그러니 만약 안부를 물어볼 때 "매사가 귀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왜 귀찮은지 꼼꼼하게 따져 물어서 못살게 굴어야 한다. 만약 그사람이 “나는 이렇게 끈질기게 묻는 네가 정말 귀찮다” 라고 반응한다면 그 사람은 그때 에너지가 솟아나오는 것이다. 부디 "매사가 귀찮다"는 사람을 귀찮다고 내버려두지 말자. 우린 모두 외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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