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의 수업시대를 시작하는 글을 쓰고 어느덧 일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 년간 예정했던 만큼의 글을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바쁘기도 했고, 올 한 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면서 독서를 하거나 장애인문제 일반에 관심을 갖지 못하기도 하여 글감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초반에는 그동안의 고민들로 버텨왔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밑천이 바닥나 버렸지요. 그러다보니 글을 올리는 간격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게으름일 것입니다.
1년간 쓰려고 했던 계획은 본래, 장애문제에 대해 비판에 직면하더라도 새로운 관점의 주제나 문제의식을 던져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야한’ 장애인이고 싶다”,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이라는 글 등을 썼고, 장애인의 낙태발언을 옹호하는 만행(?)을 저질러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 간과한다고 생각하는 고통의 문제에 주목해보고자 “알약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후반부에는 오바마나 타이거우즈 같은 유색인종들의 욕망과 정체성의 문제들을 통해서 스스로의 욕망구조를 성찰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역시 돌아보면 각각의 주제들에 대한 전달력이 부족하기도 했고, 제 딴에는 새로운 문제제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민한 흔적들을 답습한 것에 불과한 것들도 있었고, 어떤 것들은 저 스스로가 미숙한 상태로 했던 어설픈 고민의 조각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간간히 독자분들이 보내시는 리플과 이메일을 통해 글을 계속 쓸 힘을 얻고는 했습니다.
이제 한 해가 지났고, 제가 에이블뉴스에 더 이상 쓸 말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다른 장애인언론사의 청탁으로 새해에도 다른 공간에서나마 칼럼을 이어가기는 하겠지만 그 횟수는 아마 이곳보다 더 적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 2010년을 맞아 새로운 고민과 공부에 열중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지 고민과 공부의 단계를 넘어서 우리들의 삶이 가진 무게와 해방에 대한 진지한 실천에도 힘을 보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29살이 됩니다. 저는 다가오는 30대를 뜨겁고 상상력이 넘치는, 타인과 새로운 무대를 창조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2010년을 준비하려 합니다. 그래서 저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돕는다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인 우리 스스로가 그토록 거부하고자하는, 일반적인 관념의 ‘봉사’에 그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서민을 위한다, 장애인을 위한다면서 오뎅을 사먹고 목도리를 선물한 후, 뒤로는 예산을 축소하고 제도를 폐기하는 일들이 공공연히 발생하는 이 시대에 저는 제 삶이 지향해야할 '도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돕는다는 의미에 관해서, 마지막으로 신영복선생님의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한 부분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칫솔 한 개를 베푸는 마음도 그 내심을 들추어보면 실상 여러 가지의 동기가 그 속에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는 겪어서 압니다. 이를테면 그 대가를 다른 것으로 거두어들이기 위한 상략적인 동기가 있는가 하면,... 극단적인 경우 그의 추종이나 굴종을 확보함으로써 자기의 신장을 도모하는 정략적인 동기도 있으며, 또 시혜자라는 정신적 우월감을 즐기는 향락적인 동기도 없지 않습니다. 이러한 동기에서 나오는 도움은 자선이라는 극히 선량한 명칭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은 조금도 선량한 것이 못 됩니다. 도움을 받는 쪽이 감수해야 하는 주체성의 침해와 정신적 저상(沮喪)이 그를 얼마나 병들게 하는가에 대하여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서둘러 자기의 볼일만 챙기는 처사는 상대방을 한 사람의 인간적 주체로 보지 않고 자기의 환경이나 방편으로 삼는 비정한 위선입니다.
〔…〕 이러한 것에 비하여 매우 순수한 것으로 알려진 ‘동정’이라는 동기가 있습니다. 〔…〕 그러나 이 동정이란 것은 객관적으로는 문제의 핵심을 흐리게 하는 인정주의의 한계를 가지며 주관적으로는 상대방의 문제 해결보다는 자기의 양심의 가책을 위무(慰撫)하려는 도피주의의 한계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돕는다는 것이 무엇일 수 있는지 이렇게 덧붙입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그의 말처럼, 진정한 도움은 사실상 함께 비를 맞는 연대인 것 같습니다. 단지 사진 몇 장을 남기는 이벤트가 아닌, 실제로 누군가가 그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원조하는 지속적이고 창의적인 연대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를 위해 ‘수업시대’를 마치고, 실천의 시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를 포함한 에이블 뉴스의 모든 독자들이 더 좋은 글, 더 좋은 고민. 그리고 더 많은 공감과 연대가 넘치는 2010년에 "함께 비를 맞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독자여러분과, 지면을 할애해주신 에이블뉴스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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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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