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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 벅찬 서울 껴안고 아파합니다
북한산의 사랑



북한산에 오르면 백두대간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발자국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노라면 600년전의 한양(漢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것이 내가 북한산에 오르는 이유입니다.
백두산에서 달려온 내룡(來龍)이 삼각산에서 좌정한 다음 보현봉에 이르러 잠시 한양땅을 굽어보고 다시 머리를 낮추어 이윽고 주산(主山)인 북악이 됩니다.
인왕산(仁旺山)을 우백호(右白虎)로 낙산(駱山)을 좌청룡(左靑龍)으로하여 한양땅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산 바깥의 동서남 삼방(三方)을 한강이 감싸 안고 돌아나갑니다. 다만 객산(客山)인 관악산(冠岳山)이 너무 승(勝)하여 외세가 넘보는 땅이라는 험만 아니라면 나무랄데 없는 땅이라고 합니다.
북한산에는 이처럼 내사산(內四山)이 품고 있는 서울땅 외에 북한산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또 하나의 터전이 있습니다. 30여리의 산성으로 이루어진 천험의 요새입니다.
삼국시대부터 북방진출의 전략적 거점이었고 한강유역의 쟁패에 결정적인 요충지였습니다. 임진ㆍ병자 양란(兩亂)을 겪은 후에는 남한산성이나 강화도보다도 훨씬 뛰어난 도성방어의 보루(保壘)로 주목된 땅입니다. 군자가 품고 있는 비장(秘藏)의 무기라 할 수 있습니다. 북한산은 이처럼 문무(文武)와 강유(剛柔)를 겸비한 산입니다.

20여년만에 서울로 돌아왔을 때 산천의구(山川依舊)란 말을 가장 실감케한 것이 바로 삼각산이었습니다.
구름이 발밑을 지나고(雲浮在下) 바다가 보이는(海坼無西) 삼각산의 위용과 빼어남은 과연 경탄의 대상이었습니다. 한양땅의 수려함은 단지 이러한 산천의 빼어남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산천과 궁궐과 문루가 이루어내는 조화에 있습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궁궐과 문루가 좌우로 산세를 따라 서로 속삭이듯 어우러져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조물(營造物)과 자연이 어떻게 서로를 도와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봉학(峰壑)마다 깃들어 있는 사실(史實)에 생각이 미치면 사람의 삶이 과거의 삶과 어떻게 맥을 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평화의 교실이고 역사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오늘 북한산에서 느끼는 생각은 참으로 침울합니다. 산천이 '몸'이고 그 위에 이룩된 문명이 '정신'이라는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지금의 서울은 참으로 참담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처난 몸이 거대한 머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사람의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가슴'과 '머리'의 조화라고 하였습니다.
따뜻한 가슴(warm heart)과 냉철한 이성(cool head)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사람은 비로소 개인적으로 '사람'이 되고 사회적으로 '인간'이 됩니다.
이것이 '사랑'과 '이성'(理性)의 인간학이고 사회학입니다. 사랑이 없는 이성은 비정한 것이 되고 이성이 없는 사랑은 몽매(夢昧)와 탐닉(耽溺)이 됩니다.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 두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인가를 내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가슴이 먼저라는 당신을 어둡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때 ‘가슴에 두손을 얹고 조용히 반성하라’는 말을 우스워하였습니다.
인간의 사고(思考)가 이루어지는 곳은 심장이 아니라 두뇌라는 사실을 들어 그것을 비웃기까지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성주의(理性主義)의 극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의 오만이 부끄럽습니다.
우리의 이성이란 땅위에 서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 그 흙가슴을 떠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컴퓨터의 체(體, hard-ware)가 허용하는 범위내에서만 그 용(用, soft-ware)이 실릴 수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가슴을 떠나는 것은 '질'(質)을 버리고 '양'(量)을 취하는 것이며 사용가치(使用價値)를 버리고 교환가치(交換價値)를 취하는 것이라던 당신의 말이 떠오릅니다.

오늘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백두대간이 달려오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600년전의 서울도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가슴위에 축조된 거대한 콩크리트 빌딩만이 시야에 가득 다가옵니다.
북한산은 이제 두 팔을 한껏 벌려도 아름이 벅찬 서울을 껴안고 아파하고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더 이상 북한산을 오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북한산에게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기대어 쉬려고 하는 나자신이 너무 염치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산에서 보는 서울이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를 가장 당황하게 한 것은 지금까지 내가 택했던 등산로가 바로 외적(外敵)이 북한산성을 쳐들어오는 공격로였다는 당신의 지적이었습니다.
최후의 보루(堡壘)였던 북한산성은 방법이 달라진 20세기의 침략에는 너무나 무력하여 나라를 지키는 소임을 해보지도 못하고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북한산은 비장의 보도(寶刀)마저 녹슨 채 오늘도 지친 몸으로 수많은 사람의 공격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부터 다시 600년후에 북한산이 어떤 모습이 될 지 지금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성문을 복원하고 정수리를 단혈한 쇠말뚝을 뽑아내기는 하였지만 산룡(山龍)은 이미 사룡(死龍)이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룡의 정기가 북악산으로 조심스럽게 이어지는 과협처(過峽處)는 그 맥을 다치지 않기 위하여 해마다 흙으로 돋우고 산성도 그 쪽으로는 토성을 쌓아 이름도 보토현(補土峴)이었는데 지금은 4차선 북악터널이 뚫려 있습니다.
인왕산을 지나 한강을 잠류하며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이어지는 미맥(微脈)의 경부(頸部)에는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뜸을 뜨고 있습니다.
외세의 침탈이 서울의 풍수 탓이 아님은 물론이고 30년의 군사독재와 정치의 혼미가 지맥의 훼손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영위되고 있는 그 토대에 대한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가슴'과 '사랑'에 대하여 겸손한 생각을 길러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북악산이 남산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남산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도 가슴이 뚫리고 머리에 첨탑이 씌워 떠날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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