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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조금 있으면 다 떠난다. (물론 결혼해 떠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결혼해 떠나면 돈이나 안 들지! 아들은 가톨릭 조형예술 대학이 있는 인천으로, 딸은 서울에 있는 학교의 조교로 매일 출근해야 하므로 자신의 학교와 가까운 학교 뒷문으로.(정문에 있는 방은 너무 비싸서)

아들에게도 디자인을 배우라고 강요한 것은 나였다.
“공부를 잘해 스카이 대를 나와도 40 넘으면 책상 빼야해. 처자 생각해서 개기고 있다 어느 날 출근했는데 너의 책상이 없어지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 그럼 넌 어쩔래? 이제 평생직장은 없어졌어. 우리가 10년에 걸쳐 알아야 하는 지식들이 인터넷에서 하루의 지식이 되고 사라져.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네가 어제 알던 지식은 구식이 되는 세상이야. 그런 세상에서, 너의 밑에서 새로운 지식을 가득담은 신선한 뇌를 가진 팔팔한 젊은이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네가 40넘어서까지 너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래, 퇴직금 받아 뭔가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자. 그동안 회사 일에 매달려 있던 네가 그 나이에 사업을 해서 성공할 수 있겠니?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극소수야. 그러니 이젠 자신의 손에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최고야.
대학? 옛날에는 중고등학교만 나와도 많이 배웠다는 소리를 듣던 세상이 있었어. 대학을 나오면 정말 가문의 영광이고 마을에 자랑거리가 되어 현수막까지 붙이는 세상이었어. 그러나 요즘은 90%에 가까운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가. 대학은 더 이상 소수가 가는 곳이 아니라 당연히 누구나 통과하는 보통학교가 된 거야. 네가 배움이 미치도록 좋고 학문이 너무 좋아 공부를 한다고 치자.(물론 넌 나를 닮아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너의 지식으로 먹고사는 것은 이제 힘들어. 똑똑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아니? 유학을 가 고생고생해서 박사학위를 따와도 대학의 보직을 잡는 것 또한 하늘의 별 따기야. 처음에는 이 대학 저 대학으로 너의 지식을 파는 강사로, 그것도 대학에서 거의 착취에 가까운 강사료를 받기 때문에 한 대학에서는 강의하여 먹고살기 힘들어. 그렇게 여러 대학을 돌아다녀야 하는 고단한 시간강사로 시작해야 해.
그렇게 고생하다 그 중에서도 실력보단 인맥 좋고 줄 잘서는, 그리고 학교에 기부금을 좀 낼 수 있는 형편인 소수의 사람들이 전임 강사라는 보직을 받지.
서운한 말 같지만 현실을 직시해서 네 자신을 똑똑히 보면 네가 학자가 될 정도로 공부에 미치거나 흥미를 느껴 끝까지 공부해 학자가 될 타입은 아니란 걸 너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객관적이고 냉철한 입장에서 보며 가혹한 말이지만 넌 아니야. 엄마는 그렇게 된다고 해도 말릴 거야. 학자는 똑똑한 사람들이 하면 돼.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나. 너? 물론 똑똑하지(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해) 아이큐 98인 엄마보단 다들 똑똑해. 그러나 똑똑한 거와 세상사는 지혜는 다른 거야. 대학 나와서 직장을 잡지 못한다면 엄만 차라리 고등학교만 나와서 기술을 배워 취직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인서울? 다닐 때뿐이야. 요즘은 SKY대를 나와도 다니는 과가 좋지 않음 취직 힘들어.
이젠 로스쿨을 나오거나 그 어려운 고시에 합격 된다고 해도 1000명 씩 넘게 뽑아 인원이 넘쳐 판검사 보직 못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상이야. 변호사하면 된다고? 변호사는 판검사 다 거치고 연줄이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차리는 것이 변호사야. 누가 갓 고시에 합격한 새파란 변호사에게 변호 맡기겠니? 운이 좋다면 로펌이나 새끼 변호사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소수야. 그래도 공부한 것이 억울해서 변호사 개업을 하면 사무실 임대료도 못 내는 변호사가 되는 거야. 의사? 의사도 마찬가지야. 종합병원이 아닌 개인병원은 건물 임대료 못 내 문 닫는 병원이 부지기수야. 그것 또한 서울에만 몰려드는 의사들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지만, 아직도 우리 국민 수에 비해 의사와 변호사의 비율은 턱 없이 모자라. 그렇지만 그 어려운 고시와 의사공부 해서 병원이 없는 마을에 가려는 사람은 없어. 어려운 공부를 했으니 본전을 뽑아야 될 거 아냐. 물론 그렇지 않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지, 그 외에는 의사들에게 슈바이처 선서는 굴러다니는 개 똥 만큼도 의미가 없어. 배운 사람들이 인간성이 결여되면 못 배운 사람들보다 교활하고 치밀해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 그 문제는 뭐 여기서 따질 문제가 아니니까 건너가고, 그러면 이런 세상에서 뭘 하면 될까? 이런 이기적인 세상에서 사기 치지 않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길은 어떤 것일까. 기술이야. IT? 그것도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젠 너무너무 힘들어. 자신의 손에 기술이 있어 정년 걱정 없는 것. 그게 뭘까? 리어카를 끌어도 제 장사를 하는 것이 정년 걱정 없이 속 편하다고 하지만, 말이 그렇지 장사 또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야. 공무원? 그래 정년 걱정 없는 쇠 밥그릇 직장이지, 그렇지만 9급 공무원도 이제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워. 공무원 시험에 붙기 위해 전국적으로 재수 삼수를 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공무원 시험이 이제 옛날 판검사 고시공부 같은 수준이 되었어. 정부 각 기관의 운전사인 별정직도 석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원서를 내고 있어. 일단 공무원이란 이름만 들어가는 직업이면 소방관, 119 구급대원, 환경 미화원도 힘들어.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자신의 손에 있는 기술! 그게 최고인데 어떤 걸까? 자동차 수리? 비행기 수리? 미용사? 조리사? 화장품을 사업? (화장품 사업은 전쟁이 나도 되는 사업이지, 무기사업은 전쟁이 나면 날수록 좋은 사업이고) 네가 사업을 할 타입은 아니야. 사업가는…… 더 이상 말하지 말자. 자동차 수리기능직은 아직까진 정년 걱정은 없어. 차라리 월급 88만원의 비정규직 보다는 훨씬 나을 지도 몰라. 그렇지만 이제 자동차 수리점도 너무 많고 자동차 수리도 기름 때 묻혀가며 수리하는 시대는 점점 사라지고 첨단화된 고급기계를 만질 수 있는 전문가나 로봇이 고치게 될지도 몰라.
지금으로선 미용사나 조리사가 제일 유망해.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해. 그렇게 자기 손에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직업을 찾는 거야. 그런데 모든 학생들이 그걸 생각하지 않고 학과야 어떻든 우선은 폼 잡을 수 있는 인서울 대학을 가려고 해 .인서울? 다닐 땐 물론 폼 나겠지. 그리고 운이 좋아 직장에 취직했다 쳐, 그런데 40이 넘으면 네 책상 없어져.
그러니 그런 헛된 껍질 같은 것에 미혹되지 말고 네가 대학을 나와 40이 돼도 잘리지 않는 공부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 누나가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으니 너도 디자인 공부를 하는 것이 어떠니? 물론 전쟁이 나면 디자인이고 뭐고 다 소용 없겠지만 그런 상황을 배제한다면 지금 너에게 가장 유리한 공부는 디자인이야. 이젠 밥통에서 세면대까지 디자인 없으면 안 되는 세상이니까. 그래서 누나와 함께 같은 분야에서 돕고 사는 거야. 그러다 디자인 사무실을 열어도 되고. 지금 디자인을 배우면 인서울에 있는 학교로 갈 수 없다는 등, 이런 얘기는 엄마에게 하지 마. 엄만 인서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인서울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학을 나와서 네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 가 더 중요해. 그러니 미숙하고 늦었더라도 누나와 같은 디자인을 배워!
너의 손에 다양한 표현의 기술과 참신한 발상이 머리에 있고 그것을 계속 응용하고 창조하는 노력을 계속 한다면 디자인 계통으로 취직은 너의 창작력과 기술이 있는 한 40이 넘어서도 잘리진 않아. 어때? 이래도 실속 없는 서울 끝에 붙은 대학이라도 인서울을 고집하겠니?
장래를 생각해야지. 그래야 남의 귀한 딸 데려다 밥은 굶기지 않을 것 아니니? 아니, 그보다 먼저 대학을 졸업 하자마자 월급 88만원의 계약직이나 백수가 되진 않는다는 얘기야. 그런데 네가 미술이 아주 싫다면 그건 안 되겠지. 하지만 너 그림 그리는 것 좋다며? 그럼 지금 시작해도 괜찮아. 너의 그림 실력이 아직 미숙해 알아주는 대학을 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중에 네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될 거야. 엄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개인적으로 엄만, 매일 아픈 사람들만 봐야하는 의사나, 매일 범법자만 봐야하는 판검사들이 결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병은 돈 있으면 고치면 되고 판검사가 필요하면 역시 돈만 있음 고용하면 돼. 엄마가 너무 속물이라고?
“맞아, 엄마 속물이야. 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운 일인가를 알아. 엄마를 살게 한 힘이 뭔지 알아? 너희들까지 나의 고통을 절대 물려주지 않을 거라는 숱한 결심과 의지로 살아왔어. 언니들과 동생들도 그렇게 살기를 바랐지, 그런데 그것까지는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더구나. 이제 엄마는 자본주의 안에서 인생 장사는 끝났어. 이젠 너희들 차례야. 그러니 대학 따지지 말고 전망이 있는 학과를 선택해.

내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이 시무룩하게 한마디 한다.
“엄마, 나 어릴 때 미술학원 안 간다고 할 때 왜 말리지 않았어?”
“뭐시라? 지금 네가 놀고 싶다고 해서 실컷 놀게 해준 엄마를 탓하니? 지금 생각하니 후회스럽지? 그러니 디자인 대학 안 간다고 고집 부리지 마. 지금 후회하는 것처럼 후회하지 않고 나중에 다 엄마를 고맙게 생각할 거야.”
“피아노 학원도 때려서라도 계속 보내지.”
“난 네가 하기 싫다면 안 무리하게 고집부려 배우게 하지 않았어. 싫다고 하면 그만두고, 놀고 싶다고 하면 놀게 하고, 그때는 좋았지? 그러나 지금은 후회되지? 봐! 열심히 안 하면 모든 것이 후회뿐이야. 넌 그걸 알게 된 거야. 그러니 지금 네가 엄마 말을 듣는 거고, 만일 엄마가 억지로 시켰다면 넌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지금까지 억지로 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엄마, 애가 뭘 알아? 존중하지 말고 그냥 때려서 보내지!”
“그래, 존중 필요 없이 막 패지 않고 억지로 시키지 않아 미안하다, 그럼 지금부터 네 소원대로 엄만 널 존중하지 않을 거니까, 입 닥치고 엄마 말대로 디자인 배워! 엄마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절실했던 것이 뭔지 아니? 기술이었어. 내가 타자 두드리는 기술이라도 있어서 회사에 들어갔거나 아니면 공무원 시험을 쳤다면( 하긴 그것들은 무리겠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의 월급으로 엄마 가족 모두가 살 수는 없었을 테니까.) 절대 이렇게 살지 않고 엄마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넌 절대 모를 거야.”

“엄만 지금 배울 거 배우고 잘 살고 있잖아. 나이가 들어서 공부하는 엄마를 부러워하잖아. 그런 사람이 몇이나 돼? 엄만 복 받은 거야.”
아들이 내가 불쌍했는지 측은한 목소리로 위로했다.
“그건 등록금이 공짜라 공짜에 눈이 뒤집혀 다닌 거고, 지금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세상에 거저인 것은 하나도 없어. 엄마는 지금의 삶을 얻으려고 엄마의 청춘을 다 버리고 평생 우울증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가 됐잖아…… 그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지, 그게 세상의 이치니. 그러니까 엄만 너희들이 엄마처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줬으면 좋겠어. 좀 고될 수도 있지만 네 머리와 손에 있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전문기술이 널 사회에서 오래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살게 하고 싶어.”

그렇게 사정 반 협박 반으로 아들을 늦었지만 고3부터 미술학원에 다니게 했다. 어느 날 아들은 징징 울면서 지금의 자기 그림실력으론 좋은 학교 갈 수 없다고 울면서 안타까워했다. 좋은 대학? 그거 엄마 중요하지 않다고 했잖아! 않되! 전문대를 가건 재수를 하건 넌 꼭 디자인에 관계된 일을 해야 해. 아들의 착하고 유순하고 정이 많고 순진한 성격을 잘 아는 나는 아들이 흙탕물 같은 사회에서 힘없는 아랫사람을 짓누르고 강한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온갖 비리와 부정이 난무하는 사회에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마디로 조직사회에서 살아남을 만큼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좀 자유스러운 예술계 쪽으로 갈 것을 끝까지 고집했다. 그리고 인천 가톨릭 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환경 디자인과로 입학했다. 미술 실력이 딸렸으므로 좋은 대학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과연 그 기대를 져 버리지 않고 아들은 인천으로 가게 됐다. 난, 재수만 하지 않는 것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술 선생님과 상담할 때“ 재홍이는 학습 태도만큼은 정말 진지하고 정열적입니다. 한 번도 지각 결석 없이 앉지 않고 12시간을 서서 전쟁하듯 그림을 그립니다. 전 미술 실력이 좀 부족해도 이런 아이가 성공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말해서 ‘이번엔 틀렸구나, 내가 너무 늦게 미술 공부를 시켰구나, 재수를 시켜야겠다.’ 고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인천이라도 대학에 붙은 것이 너무나 신기해 우린 얼싸안고 좋아했다. 남들이 바보라 하건 말건.
‘다’ 군에 나와 같은 대학 제품 디자인과에도 붙었지만, 나는 엄마와 학교 같이 가까운 학교 다니자고 구슬렸지만 딸이 “엄마 말대로 자본주의에서  장사 다 끝난 사람이 이제 장사 시작하려는 애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좋은 터를 추천해줘야지 엄마만 생각하면 어떻게 헤!” 라고 적극 반대해 딸의 강력한 의견을 따른 것이다. 맞는 말이므로…… 그래서 아들과 함께 학교 다니는 것을 꿈꿨던 일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하여튼 그 결과 아이들은 이제 떠나게 된 것이다. 아들은 인천으로, 딸은 희희낙락 서울로.
‘아무도 날 찾아 주지 않는 외로운 이 산장에~~’  난, 이렇게 되고.
서울로 나가는 딸은 조금도 서운한 기객 없이 오히려 신이 난 것 같았다. 매일 아프다고나 끙끙거리기나 하고, 집안 치우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을 것인가.
“엄마, 너무 서운해 하지 마, 일주일에 한번 씩은 올게.”
큰 선심 쓰듯 딸이 말했다. 흥! 품안에 자식이라고 지금 마음이야 그렇겠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엄마 이제 일본학과 졸업하고 대학원 가면 바빠서 외로울 틈도 없을 거야. 그리고 또 아저씨가 매주 오잖아.”
“매주 오면 뭐하냐? 내가 얘기를 하면(좀 얘기시간이 길긴 하지만) 졸린 눈을 억지로 참으며  “자기, 잘 때 먹는 우울증 약 효과 언제 나타나는 거야?” 라거나 “자기 잘 때 먹는 약 먹었어?” 라는 사람인데.”
딸은 쿡쿡 웃는다.
“정말 엄마 너무 신기해. 어떻게 그렇게 한 시간도 쉬지 않고 계속 말 할 수가 있어? 얼마나 아저씨가 괴로웠으면 그랬겠어? 자면 엄마 바둑이 같은 성격에 얘기 들어주지 않고 잔다고 성질 낼 거고 잠은 오고, 아저씨 마음 내가 너무 이해가 된다.”
“엄마가 매일 그러냐? 너희들이 얘기를 들어주지 않으니 주말마다 오는 아저씨에게 일주일 분의 얘기를 다 하게 되니 그렇지! 그래, 네 아빠를 닮아 집에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넌 있으나 마나야. 돈 탈 때나 입을 열지”
“ㅋㅋ 재홍이가 있어야 엄마 말 잘 들어주며 조잘거리는데.”
“그래, 우리 집은 좀 바꿨어. 딸은 과묵하고 아들은 상냥하게 상대방 말 잘 들어주고 조잘거리고. 재홍이가 나를 많이 닮았지”
“엄마 그래도 아저씨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잖아. 그러니 마음 풀어.”
“내가 언제 마음에 자물쇠 채웠냐? 풀게.”
“엄마 혼자 있는 것 좋아하잖아. 책 읽는 것도 좋아하니 실컷 읽어.”
“생각해 줘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렇게 말한 딸은 이제 자유라고 생각하며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아들이나 좀 서운해 하는 것 같아도 워낙 단순한 녀석이라 그때뿐이다. 하긴 잠이 안 온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자 자기가 자장가 불러 줄 터니 자라고 나를 눕혀 놓고 자장가 노래를 “…… 하고 싶은 말 그만하자! 그만하자!” 앞에 불여우 같은 여자 목소리가 들리고 후렴구가 그만하자, 라는 노래를 자장가로 불러준다. “정말 그만하자! 엄마 잠 온다. 이제 됐으니 어서 나가 봐.” “거봐! 내 자장가가 효과가 있잖아. 그러니 이제 엄마 힘들게 왔다갔다 하지 말고 푹 자! 사랑해요! 잘 자요! 좋은 꿈꾸세요!” 라는 말을 기계처럼 하고 후딱 컴퓨터 안에 들어있는 제 방 친구들에게로 간다.
어떤 날 허리가 아파 다리로 밟아 달라고 했더니 으기 양양하게 와서
“엄마,  누워봐! 내가 정말 시원하게 안마 해 줄게! 우리 반 여자애들이 나보고 얼마나 시원하게……” 그러더니 말을 뚝 끊어 버린다.
“야! 이 미친놈아! 너 너의 반 여자애들 다 안마해 주고 다니니?”
“내가 안마사야? 모두에게 안마해주고 다니게?”
“지금 그랬잖아? 여자애들이 너에게 안마 잘한다고 했다며?”
“아! 그거야 엄마가 나를 그렇게 키워서 그렇지! 여자들 생리할 때 힘들고 아프니 잘 해 주라고 그랬잖아?”
“뭐라고? 그거야 너의 부인에게나 해 주라는 거지, 온갖 애들 다 해주라는 거였니? 그리고 그년은 뭣 하는 년이 남자 아이 앞에서 생리한다는 말을 버젓이 하는 거니?”
“아! 우리 반 아이들 여자 아니야! 그냥 친구야! 중학교부터 같이 공부해서 이제는 여자로 보이지도 않아!”
그러던 놈이 고3 학기 초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난 자다가 놀라 왜 그러냐고 물으니 사랑 고백을 했는데 거절당했다는 거다.
“재홍아, 이제 너 대학가면 그런 년들보다 훨씬 예쁜 여자애와 사귀게 될 거야. 그러니 그런 촌년들 잊어버려.” 라고 안아주었다.
아들은 훌쩍 거리며
“다 내 피부 때문에 그런 거야. 나 시험만 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른 피부과 가서 여드름 치료부터 할 거야. 정말 *나 사랑했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제 방으로 갔다.
‘뭐지? *나 사랑? ㅋㅋ’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데 난 너무 웃겨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러는 녀석이 혼자 떨어져 산다니 가스불이나 잘 잠그려는지, 남의 집 다 태워 우리가족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든 게 걱정뿐이다.

“어머, 어머, 왠 일이니! 너 정말 너무 빨리 혼자된다!”
내 상황을 들은 언니들 말이다.
“얘, 넌 배우는 거 좋아하니까. 이제 자식 다 키워놓았으니 잘 됐다. 실컷 배워.”
이건 생각해 주는 건지, 놀리는 건지.
‘그래, 생각해 주는 것이 맞겠지…… ’
“그나저나 혼자서 무서워서 어쩌니? 감시 카메라 있지? 하긴! 고라니도 때려잡는 네가 무서울 게 뭐 있니!”
“고라니를 때려잡아? 아니, 피 흘리고 죽어있는 고라니를 딸과 함께 자루에 넣고 옮겨와 낑낑 거리며 묻어 준적은 있지만 때려잡은 적은 없는데 어쩌다 내가 고라니를 때려잡는 것이 되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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