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숲속의소리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7.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3월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은 지혜로운 인디언이 2월에 붙여 준 이름이다. 2월 마지막 토요일 이문학회에서 글씨 연습을 하다가 인사동으로 나가 화랑을 둘러보았다. 한 해 동안 애를 쓴 작품들이 봄을 맞이하며 세상으로 나왔다. 매화 전시회가 시선을 끌었다. 나뭇가지에는 봄소식을 품고 곧 소리쳐 나오려고 하는 매화꽃 봉오리들이 많이 매달려 있었다. 어떤 그림엔 나뭇가지사이로 보름달이 내비치기도 했다. 다만 술병만 없었을 뿐 가히 시인이 다녀가도 될 만큼 봄이 무르익어 있었다. 눈으로 봄의 전령들을 마중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비가 오시는 데도 길을 나섰다. 청산도를 걷다 왔다. 늘, 마음에 꿈으로 남아있던 아름다운 곳이었다. 청보리와 유채꽃과 바다가 다 들어간 아름다운 그림 한폭. 아직 그림이 다 그려지지는 않았다.색칠이 덜 끝났다.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 보면 다 보인다. 떠나오는 날 새벽 비 개인 언덕을 걸었다.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세찬 바람 속에 서서 봄바람을 겨우 달랬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고 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도 한다. 나는 보물과 생존의 경계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것일까? 경계도시의 창조적 부적응자?....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점점 깊이 깨닫는다. “추억은 아주 힘이 세다”는 것을.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에는 평화가 있으려나....  

숲의 나무들이 333프로젝트를 따라 낙동강 순례를 기획하고 있다. 함께 가고 싶지만 먼저 정해진 집안의 일이 있어서 이번에도 못간다. 그 대신 지난여름, 4박5일 걷다가 돌아온 강 이야기 한번 더 풀어 보낸다. 2010년 7월 17일부터 21일의 일이다. 강과 맺었던 이 추억도 강물따라 잘 흘러가기를 바란다.

***강은 흘러야 한다.

매일매일 메일을 열어보지 않는다. 늘 그렇고 그런 소식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낙동강 순례 함께 가자는 메일이 눈에 들어왔다. 69 작가선언과 다양성 포럼이 기획했단다. 2009년 6월 9일, “이것은 사람의 말”이라고 선언하던 젊은 작가들의 말을 메모해 둔 것이 있다.

“작가들이 모여 말한다. 우리의 이념은 사람이고, 우리의 배후는 문학이며, 우리의 무기는 문장이다.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없어서 모였다.”
그러나 나는 오직 도보순례와 낙동강에 꽂혀서 조심스럽게 의사를 타진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비가 장대같이 내리던 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길을 떠났다. 추적추적 비가오니 참 심란했다. 길을 나서며 새 등산화를 버리게 될까봐 오래된 K2를 신고 나섰다.

동서울에 모여 서로 면면을 살피는데 분위기가 젊다. 나도 전에 국토종단을 해보고 싶었고 비무장지대를 걸어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때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웬일일까? 이번에는 비가와도 이 용감한 결정은 그대로 나아가잔다.

차에 오르고 서로 인사를 시작한다. 나는 우연히 온 메일을 보고 길을 나섰다. 작가도 아니고 활동가도 아니다. 그러나 사대강 현장 순례는 이번이 세번째이다. 친구들이 가자고해서 늘 따라나섰다. 이렇게 만나고 새로운 얼굴을 알게 되어 반갑다 라고 인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등단을 한 시인이며 소설가이며, 다큐 사진가들이며 음악, 그림, 그리고 활동가였다.

나는 도심한복판에 살다가 너무 복잡해서 강물을 따라 집을 옮겼다. 그래서 이제는 날마다 눈을 뜨면 한강물을 내다보며 강의 안부를 묻고 아침햇살에 빛나는 물별들에게 오늘 하루도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자고 말한다. 조금 거리를 두면 우아하게 사귈 수 있다.

비내려 흙탕물로 흐르는 강가로 갔다. 넓은 벌 동쪽 끝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실개천? 그런건 시에 남아있을 뿐이다. 곳곳에 목이 긴 황색 두루미, 쇠로 만들었고 움직일 때 매우 시끄러운 탱크 같은 두루미가 강물에 발을 담그고 모래를 퍼내고 있었다. 이제 얼마 후면 사라져갈 강가의 습지를 걸었다. 달의 뿌리가 자꾸 발에 걸린다. 이 식물은 이름이 곱기도 하지 ... 모래에 뿌리를 내려 길게 길게 그 생명을 이어간다. 달의 뿌리가 내 발의 뿌리에 자꾸 걸린다.

내가 아침마다 만나던 강은 그림 같다. 때로는 잘 찍은 사진 한 장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강은 사람의 힘에 밀려 갈 때까지 간 지친 모습이었다. 강을 무척 사랑한 초록공명은 눈에 이슬이 맺힌다. 보고 있는 나도 코끝이 찡해진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내가 아프면 너도 아픈 법이거늘, 지금 이 지구별에는 인정이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정이 흘러야 강물도 따라 흐를터인데.... 해 저무는 강 앞에 서서 어린아이처럼 울먹거리다 돌아왔다.

** 강에서 만난 사람들

지치도록 걸었다. 햇빛은 쨍쨍하고 길에는 중장비가 나뒹굴고 먼지가 너풀너풀. 지치도록 걷다가 강으로 들어가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아니 신발을 벗어들고 강 속으로 들어가보기는 다 자란 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바닷가에서 자라났으니 언제나 물의 근원을 따지지않고 그냥 바다로 첨벙 뛰어들기만 해왔다.

찰랑찰랑 맑은 물살이 발가락 위로 흘러간다. 모래알도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평화롭다. 약간 물의 비릿한 내음도 올라온다.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뜻을 함께두고 함께 걸으니 금방 친구가 된다. 그래도 다들 말을 아낀다. 물풀이 가끔 붙잡는다. 쉬어가라고...아니면 함께 가지고...조약돌 사이로 깨진 사기그릇도 보인다. 강물과 함께 흘러오며 많이 부드러워진 그 그릇은 간장 종지로 써도 좋을 것같이 예쁘다. 누군가 집어 손에 꼭 쥐고간다. 나는 그렇게 긴 강물을  처음 따라가 본다 아기자기 소꿉놀이 하는 것 처럼 정답다. 갑자기 이 모든 것에 가해질 힘이 두려워졌다. 강물은 무심히 흐른다지만 내마음은 조금씩 슬퍼져 갔다.

말이 없던 길시인이 풀이름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에도 모두 답한다. 척척박사다. 아마 시인은 오랜시간 동안 공을 들여 풀과 꽃과 강물을 사랑해 왔을 것이다. 시인의 마음으로 강물을 바라보았으니 강이 아프면 그는 더많이 아플 것 같다. 다시 저만큼 가서 홀로 걷는다. 이제는 그에게 더 말을 건네지 않기로 했다. 사진가는 사진으로 화가는 그림으로 소설가는 소설로 그들이 본 강을 알려줄 것이다. 사대강을 뉴스를 통해 보고 듣는 것과 이렇게 직접 만나 서로의 속살을 내 보이는 것은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른 만남일 것이다. 우리는 4박 5일을 함께 걸어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 3월은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세상의 거센 눈보라가
  문턱까지 넘어와
  뒤집어엎네
  영혼의 질서를  ...래너드 코헨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925 8. 마음에게 말걸기 11 좌경숙 2011.03.10
2924 3월 26일 행사 현황 및 개요 알림 2 심은희 2011.03.10
2923 김제동의 똑똑똑 - 신영복 성공회大 석좌교수 3 나무에게 2011.03.08
2922 아름다운 것은 잃은 뒤에야 깨닫는다 5 심은희 2011.03.06
2921 이런저런 생각들.. 1 김영재 2011.03.04
» 7.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3월 8 좌경숙 2011.03.03
2919 메모 - 2011. 3. 3 노동꾼 2011.03.03
2918 밀양여행에서 얻은..더불어숲이 ‘움직이는 숲’이 되기 위한 힌트 2 김선희 2011.03.01
2917 조금 늦은 밀양강연회 사진 2 김인석 2011.02.28
2916 더불어숲 3월 모임 제안 4 심은희 2011.02.28
2915 [re] 더불어숲 3월 모임 확정 공지(43명 선착순 신청받습니다~) 12 그루터기 2011.02.28
2914 [re] 일요일까지 신청받지만... *^^* 2 그루터기 2011.03.10
2913 밀양사진 시리즈3~ 의열단 박차정 열사 묘소에서 1 야수 2011.02.26
2912 밀양사진 시리즈2~ 아침산책길과 관재정에서 1 야수 2011.02.26
2911 밀양사진 시리즈~ 밀양강, 밀양초등학교, 삼원정에서 1 야수 2011.02.26
2910 또다시 즐거운 만남이었어요.^^ 5 이계삼 2011.02.26
2909 아이들과 함께 한 밀양 너른마당 방문 5 은하 2011.02.25
2908 다시 태어나지 말라는 것은 김자년 2011.02.25
2907 6. 나는 자유이므로.... 9 좌경숙 2011.02.24
2906 번 개 3월1일 등산번개( 개미마을 인왕산) 7 가보세 오르세 2011.02.23
Board Pagination ‹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167 Next ›
/ 16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