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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버지, 그립습니다.

   2월 4일은 아버지의 기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해운대엘 다녀왔습니다. 형제들이 다 모여와 명절을 지내고 아버지 제사를 지냈습니다. 새벽에 두 분 부모님을 위한 미사에 함께 갔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보냈습니다.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병원에서 잠시 휴가를 나오셔서 구정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시고 그 다음날 주무시듯 고요하게 떠나가셨습니다. 여든 넷, 참 부지런히 살아오셨습니다. 병원에 계실 때 제게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참 잘 살아왔다. 하고 싶은 건 다 해 보았고 보고 싶은 곳도 다 가보았고, 정말 이제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년 연상이셨고 더 오래 아프셨지만 남편을 앞세우고 뒷일을 모두 지켜보신 다음에 꼭 100일째 되던 날 뒤따라 가셨습니다. 자식들이 모두 임종 침대를 둘러싸고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우리는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셈입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하시며 천수를 다하셨으니 우리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고맙고 또 보고 싶기만 합니다. 두 분은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던 시간까지 매일 미사를 함께 다니셨으니, 파란만장한 시대를 신앙으로 잘 지켜오신 것이지요.

나는 아버지와 기질적으로 많이 닮았습니다. 성향이 말이죠. 형제들 사이에서 아버지과로 분류되는 사람입니다. 호기심이 많고 발이 빨라서 아버지와 나는 함께 다닌 곳이 많습니다. 항상 술을 즐겨 드시던 아버지의 술시중은 나의 몫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여러 가지 술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향수병보다 술병을 더 좋아해서 신기한 술을 보면 다른 여인들이 향수를 사는 것처럼 진귀한 술을 사 모았습니다. 자연히 친구들도 술을 매체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체력이 딸리면 보약을 지어먹고서라도 술판에서 일찍 일어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주류로 남을 수 있었지요. 농담반 진담반입니다.

아버지는 내가 살았던 유성엘 오시면 항시 계룡산으로 산책을 가셨는데 그때는 늘 함께 갔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등산로 초입부터 새로운 물건을 보시면 꼭 6개를 사셔서 집집마다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맑은 공기와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서는 감탄을 하시며 즐거워 하셔서 모시고 간 나도 참 기뻤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아버지와 함께 사리원 냉면집에서 빈대떡과 냉면과 만두를 먹을 때였습니다. “아버지, 이것 좀 잡숴보세요”, “ 얘야 너도 이것 좀 맛봐라” 하면서 정답게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옆에 앉았던 사람들이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며 “친정 아버지세요?” 하고 물어보더군요. “참 좋아 보이십니다.” 그 사람은 그 말을 하며 속으로는 울고 있었던 것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겪어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되는 겁니다.


전직 기자출신으로 남성 심리와 가족문제 전문가가 된 닐 체틱이 쓴 <아버지, 그립습니다>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아들이 한번은 겪어야 할 죽음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라는 설명이 표지에 있습니다. 이 책은 1997년~ 2000 년까지 3년간 미국 전역에서 유년기에 아버지를 잃은 사람에서부터 70세에 아버지를 여윈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376명의 평범한 남자들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와 전화설문 조사를 한 결과에 대한 글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는 이들의 솔직한 심정과 다양한 표현 방식들, 그리고 그 죽음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에 당시에는 사실 그 일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제대로 실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단 한번뿐인 이번 생애에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기에 충격의 늪도, 그 소용돌이도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통한의 눈물을 삼키며 남은 생을 그리움에 젖어 살아가기도 합니다.

프로이트는 아버지의 죽음을 “가장 지독한 상실”이라고 했고 , 배우 숀 코넬리는 “모든 것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청천벽력”과도 같다고 표현 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아버지가 죽은지 50년도 더 지났지만 어디를 가든지 아버지의 사진을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설암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시인 딜런 토마스는

“ 그 좋은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늙은 나이는 날 저물 때 불사르고 몸부림쳐야 하리니
   빛의 소멸에 분노, 또 분노하기를 ”

이라고 시를 통해 울부짖었습니다. 그의 이 시는 20세기 문학작품 중에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가장 감동적인 헌사라고 불리우며 죽음을 묵상할 때 자주 인용되는 싯귀입니다. 딜런 토마스는 아버지와 서로 가까운 곳에 살며 자주 시간을 같이 보냈지만 부자 사이에는 표현하기 힘든 긴장과 침묵이 있는 ‘매우 억제된 친밀감’을 유지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딜런 토마스는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며 더 이상 열정적일 수 없을 만큼 비통하게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절정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의 감정표현이 억압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나 봅니다. 조사연구를 하는 동안 ‘남자들의 감정은 마치 지각변동처럼 움직였고 땅 속 깊은 곳에서 전율과 오싹한 느낌이 분수처럼 솟아나왔고 때로는 눈물도 솟아올랐다’고 작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충격은 종종 몇 년간 지속되었고 남자들은 아주 천천히 그 상실의 충격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가끔은 아버지의 죽음을 몸으로 애도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정원을 손질하고,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아 갔던 질병과 싸우는 대책을 마련하기도 하면서 아들은 아버지와 화해하고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남자들에게 아버지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아버지의 상실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아버지께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남자들도 이제는 마음을 열어놓고 이런 말을 나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가끔은 젊은이들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감추어진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봅니다. 절제하려고 이를 악물고 참다가 터져 나오는 외침입니다. 화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끝내 용서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결별하고 말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죽음을 위한 준비과정이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아들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오늘을 살고 있을지 모르나 아버지는 화해의 시간을 오래 오래 기다리고 또 뒤를 돌아보며 떠나 갑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기 때문입니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이미 대학에서 죽음 준비교육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하겠다고 마음먹은 그 나중은 때로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정말 하고 싶은 말 한마디는 산산히 흩어져 허공에 떠돌고 남은 사람은 회한의 나날을 눈물로 보냅니다. 아니 술로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못다 핀 사랑이 자기 파괴로 결론을 맺고 맙니다. 그러니 적절한 순간에 꼭 필요한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화해하는 기회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움의 동사형은 ‘그리워하다’입니다. 그리워하다는 ‘그리다’에서 온 말입니다. ‘그리다’에서 그림이 나왔지요. 아버지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놓고 나는 아버지의 기일에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름다운 그림 한 장을 그려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와의 모든 추억을 한 장의 그림에 담으면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이 강물처럼 흘러가며 고요하게 내 마음을 살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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