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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올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을 내다보면 이런 날, 유리에 아른 거리는 얼굴 하나가 있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자전거를 타며 환하게 웃고 있는 아름다운 선비의 얼굴, 뮌헨 대학에서 동양학을 강의했던 이의경 박사, 그의  필명은 이미륵.

이의경은 189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아들 귀한 집안에서 미륵불에게 빌고 또 빌어 얻은 삼대 독자여서 아이 때부터 미륵이라 불리웠다. 그는 경성 의학전문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유학은 유학이지만 독립운동의 청년 수배자가 되어 요즈음 말로하면 정치적 망명이 되겠다. 상해에서 배를 타고 마르세이유를 거쳐 뮌스터 슈바르자하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에 이르러 독일 생활을 시작한다. 여기에 오기까지는 안중근의 사촌 안봉근의 도움이 있었다. 8개월을 그 수도원에서 지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요했다. 사람들은 각자 일을 하기도 하고, 묵상하기도 하고, 길을 걷기도 했다. 아무도 낯선 이방인이 하루 종일 무엇을 하며 보내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일상이 그렇게 더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드는 저녁나절이면 , 그는 때때로 솟구치는 상념에 들떠 먼 숲길을 배회하고는 했다. 그는 안봉근이 베를린으로 떠나면서 선물한 코트프리드 켈러의 장편소설 <푸른 하인리히>를 펼쳐들고 첫 문장부터 단어를 일일이 찾아가며 독일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뻐근해진 안구의 통증으로 더 이상 글을 읽을 수 없을 때까지 그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언제쯤이면 학문을 할 수 있을 만큼 이 어려운 말을 다 배울 수 있을지....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여전히 낯선 세계에 와 있다는 생경한 느낌으로 가득찼다.

그는 주인공 하인리히가 고향으로 돌아와, 어느 날 문득 푸른 산비탈 작은 계곡을 거닐다가 “간절히 원했지만 잃어버리고 만 것들, 또 잘못된 생각으로 놓쳐버린 모든 것을 회상하며” 고통스러워했던 장면을 떠올리며 수도원 뒤로 나있는 작을 길을 따라 지칠 때까지 걸었다. 아득히 고요해진 들녘에 붉게 물든 노을빛은 어머니에게로, 아내에게로 , 어린 자식에게로, 누이와 벗들에게로 향한 그리움으로 물들게 했다. 고국을 떠나온 8개월 동안 집으로부터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리가 멀기도 했지만 그의 편지들은 일제에 검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보니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밤사이에 세상이 하얗게 변했고 눈 속에 깊이깊이 잠겨 있었다. 그는 그날, 마침내 고향에서 온 편지 한통을 받았다. 큰 누이의 편지였다. 지난 가을 어머니가 며칠을 앓은 뒤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이었다. 너무도 멀리 떠나와 있다는 무력감이 온몸이 저리는 통증으로 변했다. 날카로운 비수처럼 그를 스쳐간 아픔은 그를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겨울의 냉기가 더욱 혹독하게 그의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은 오히려 그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삶의 의지를 불타오르게 했다. 그렇다. 그는 살아남아야 했다. 어머니가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스물두 살, 이의경은 수도원을 떠나 세상 속으로 나아갔다. 두 개의 대학을 거친 후 마침내 뮌헨에 정착했다. 그리고 의학을 동물학으로 바꾸어 뮌헨 대학에서 박사공부를 끝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고향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의 온후하고 맑은 삶에 매료된 독일인 친구들은 오래오래 그의 곁에 머물고 그를 사랑했다. 그는 그가 독일어로 쓴 글들을 친구들에게 읽어 주었다. 그 시대에 “잃어버린 것에 대한 허무한 고통”을 함께 나누었던 독일의 친구들은 그의 기억 속에 있는 고향에 감동했다.친구들과 얘기하며 그렸던  그의 추억과 회상이 책으로 만들어졌다.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sst>라는 책은 1946년 봄에 뮌헨의 유명한 피퍼 출판사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다. 그때 그는 의경이란 본명 대신 미륵을 필명으로 사용했다. 이 책은 전후 지독한 상실감에 빠져 있던 독일인들에게 어머니의 품 같은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아득히 먼나라 에서 온 아름다운 동양인에 대한 동경으로  생의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단순한 호기심을 뛰어넘어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이미륵의 글은 명문장으로 독일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사람들은 지금도 그의 기일이 되면 뮌헨 근교의 그래펠핑에 묻혀있는 그의 묘소를 찾아 제를 올린다. 그를 생전에 알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처럼 땅에 묻혔으나 가슴에 깊이 남은 참사람에 대한 사랑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하는 것 같다.

이 책 <압록강은 흐른다>의 마지막 장면은 내가 오래 간직하고 있는 한 장의그림이다.

"언젠가 우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알지 못하는 집 앞에 섰다. 그 집 정원에는 한포기 꽈리가 서있었고 그 열매는 햇빛에 빛났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그처럼 많이 봤고 또 어릴 때 즐겨 갖고 놀았던 이 식물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였던가... 나에겐 마치 고향의 일부분이 내 앞에 현실적으로 놓여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 집에서 어떤 부인이 나와서 왜 그렇게 서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가능한 한 나의 소년시대를 상세히 얘기했다. 그 여자는 한 가지 꺾어서 나에게 주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얼마 후에 눈이 왔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 나는 성벽에 흰 눈이 휘날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흰 눈에서 행복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 고향 송림만에 휘날리던 눈과 꼭 같았다.
이날 아침, 나는 먼 고향에서의 첫 소식을 받았다. 나의 맏 누님의 편지였다. 지난 가을에 어머님이 며칠동안 앓으시다가 갑자기 별세하셨다는 사연이었다. "

1950년 3월 20일 이미륵은 늑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 고통을 가슴 속 깊이 품고도 늘 그윽한 미소로 온후한 인정을 베풀었던 최고의 인간 이미륵을 떠나보내며, 누군가 생전 그가 즐겨 불렀던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했다. 

1959년 4월 29일과 5월 2일, 독일 바이에리쉬 방송국에서는 이미륵 추모방송을 했다. 짦은 흑백 영상필름에 담긴 이미륵의 생전 모습!  그는 자전거를 타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 해에 전공을 바꾸어 독문학을 공부하던  전혜린은 미륵의 장례식 때 추모사를 낭독했고 그의 한국학 강의를 이어 받았던 엑카르트 교수의 조교가 된다. 그녀의 짙은 감성이 배인 <압록강은 흐른다>의 첫 한국어 번역본이 1959년 여원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1963년 한국 정부는 이미륵에게 독립 운동의 공로를 인정하는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12월 26일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국가 보훈처로부터 이미륵에게 독립유공자 훈장이 수여되었다.

2010년, 그의  60주기를 맞이하여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임형주가 부르는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를 배경으로 그의  삶을 펼쳐놓았다.  흘러내리는 눈물로 그를 추모했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한  고향땅  황해도 해주 송림만에는 오늘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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