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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10.07.05 13:45

관계 - 200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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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게시판에서 아주 좋은 글을 봤다. 근래에 본 문학적 글 중에서 가장 잘본 글이다. 그 글중 유난히 번쩍 뜨이는 문구가 있었다.
'내가 죽어도... 관계로만...'
작자의 속뜻은 모르지만 나는 그 글을 관계, 혹은 소통이 존재의 상실을 가져오고 그것에 소름끼쳤졌던 건 아닌지...

신영복 선생님의 고전강의가 있다. 그 강의는 동양사상-중국-을 관계론의 맥락에서 짚어보고있다. 선생님은 끝내 강의의 말미에 불교의 인드라망으로 넘어간다. 왜 그랬을까? 불교가 중국사상이 아니라는 것, 또 관계론의 한계. 그러나 선생님은 또 강태공을 연상시키는 유종원의 시 "江雪"로 나오신다. 인드라망에서 다시 돌아와 기다림. '天山鳥飛絶/萬徑人踪滅/孤舟蓑笠翁/獨釣寒江雪'. 그리고 맨 마지막이 장자의 구절이었던가? 어리석음. 제목은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레닌의 책제목들이 생각났다.

관계! 그렇다. 관계의 과잉은 존재의 사라짐, 원하지 않는 떠밀림에서 자신을 보고 운다면 존재의 과잉은 떠밀려남에서 손을 내밀어도 잡는 이없는 관계의 상실에서 운다. 자본은 간단히 모든 것을 차려시키고 역시 칼자루를 잡은 자는 쓸 수 있는 방법들이 더 많다. 순식간에 사람들은 무릎끓고 그 자본을 중심에 세운다. 무릎을 끓거나, 떠나거나, 저항하거나. 우리는 분열되기 위해 모였고 우리는 부패하기 위해 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관계는 나처럼 막노동판을 벗어나기 위해 용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관계란 역시 자기 테두리인 것이다. 그래서 종교가 나오는가? 우리는 부패해지기 위해 모였고, 관계의... 존재의 과잉으로 운다.

겨울 데마,
새벽에 나섰다가 데마를 맞고 들어와 술병과 마주한다. 아침술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고 김진균 교수님 장례가 있는 날이다. 사이버에서 돌아가셨다는 글들을 읽었고 유명하신 분이라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건 없다. 고작 칼럼 한두 편, 그것도 건성의 사이버식으로 넘겨버린. 그러나 가보고 싶었다. 노제니 하는 상여구경을. 데마를 맞고 바로 생각났다면 그쪽으로 향했겠지만 그때는 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소주 한 병을 다까갈무렵 무슨 의무감으로 다가왔다. 꼭 가봐야 된다는. 파커를 입고 뛴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했다.

혜화역, 성대쪽 출입구로 나서는데 상여가가 먼저 들린다. 망설임도 잠깐, 상여행렬 맨 뒤에 서서 상여길을 따라 나섰다. 한쪽에는 검은 만장에 흰색 글씨, 한쪽에는 흰색 천에 검은 글씨. 상여가 앞서가고 장례행렬 좌우로 행렬과 같이 가는 만장,
"민중의 벗으로 돌아오소서"
"평등의 넋으로 살아오소서"
두세 걸음 걷다가 휘청 멈추고, 대여섯 걸음 걷다가 멈추고. 그렇게 노제가 열리는 마로니에 광장에 들어섰다. 이미 중심에 커다란 영정이 걸려있고, 앞에 객들을 위한 의자가 놓여있고. 검은 장례행렬, 왠지 서글퍼진다. 고 박일수님 자살도 생각나고, 왠지 여기에 와있는, 단 한사람도 아는이 없는 곳에 와있는 재 자신이 초라해지고 서글퍼진다. 소주를 한 병 마시고 나왔지만 약간의 술냄새와 쓰린 속이 아니라면 말짱하다.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민중가요가 흘러나온다, 평일이라 그런지 노동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장례식의 예를 갖추느라 깔끔한 차림으로 왔는지 모른다.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아무도 아는 사람없는 이 자리에, 서글픔 느껴지는 이 상여길에.

작은 공원이라 입구까지 서있는 사람들을 뚫고 화장실로 갔다. 소변을 보고 돌아서는데 누가 들어온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척해도 되는 사람이다. 그도 나처럼 오늘 아침에 데마를 맞고 벌써 잔뜩 취했다. 어깨를 툭 건드리니 보다가 이제 생각난다고 한다.
"여기 왠일로?"
"응 여기 왔어"
손으로 바같 장례식장 쪽을 가르키며 말했다.
"대학도 안나왔잖아. 저기 대학 나온 사람들 모이는 데 아니야?"
"응, 그냥 누가 가보라고 해서..."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가 나온다. '투쟁의 한 길로...'. '투쟁의 한 길로' 두어 번 가사 그부분을 되뇌여보다가 피싯,

약력, 추모사, 추모가, 유족, 무용.
의자 뒤에 사람들 사이에 서서 가끔 담배를 뽑아물면서, 가끔 서글퍼 지면서, 외로워지면서. 늘어진 줄을 따라 헌화를 하고 내침김에 모란공원까지 따라가볼까 하다가 혜화역쪽으로 걸음을 바꾼다. '이게 무슨 꼴인가! 내가 뭐나 되는 것같이. 씨, 얼떨결에. 얼떨결에?' 그래 이거였다. "얼떨결에"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느니 하는 말들을 나는 믿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가끔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 우울한 소식에 독기가 올라서, 또는 눈물을 하염없이 주르륵 흘리다가 써올리고 나면 기운이 푹 빠져나간다. 어떤 때에는 스르르 무너질 것같다. 그것보다 더 맥이 풀리는 건 또 그런 일이 일어날 때이다. 못 쓰겠다. 고 박일수님, 그냥 고이 가시는 길, 쓰지 않겠다. 난 쓸 게 없다.

전화가 끊어지고 나면 말들만 뚝뚝 부러져, 이게 아닌데, 나랏 말싸미 서로 사맛디 아니 하야, 그냥 웃자고 한 소린데... 그 말에서 멈추어져 상처로 살아있지 않는지.

우리는 혁명을 하러 온 아니라 부패하러 왔다!
얼덜결에!




200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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