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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자마자 우울한 기운이 밀려든다. 구시렁들 거리면서도 월드컵 티셔츠를 입는다. 이젠 자동으로 순응이다. 그러나 어쩌랴, “에이, 이게 뭐야”하는 김 과장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냥 편하신 대로 하세요”라는 말 이외에 어떤 말도 찾을 수 없었다.

역무실, 역장님: “왜, 옷 안 입었어? 똑같이 통일해야지”, “전 안 입을 겁니다” 순식간에 오고가는 어색함과 불편함, 그리고 서로의 외면. 무엇이, 어떤 힘이 우리를 이렇게 내리누르는 걸까. 내가 '시민들과 함께 월드컵 축구선수들을 응원한다'는 “국가대표 지하철” 티셔츠를 입지 않는 배경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나는 무인매표화한다면서 불꺼진 매표실앞을, 자동화 기계앞에서 왔다갔다하며 기계의 시중을 들기 위해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이 소외된 노동, 주 6일 2교대의 1920년대나 가능했을 노동을 하면서 남들과 같이 부화뇌동으로 축제분위기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크리스마스날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설날은 한 복으로, 어린이날은 삐에로 복장으로, '시민고객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역무원노릇 하자는 얘기도 나올 판이다.

어제 퇴근 후 술 자리에서 김과장: “여기선(지하철에선) 옳은지 그른지 따질 필요 없이 그냥 하는 거요.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지. 출근하면 나는 아메바입니다, 나는 단세포입니다 복창하고 하라는 대로 합니다” 이런 얘기는 이러닝 교육을 비롯한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얘기하다가 나온 얘기다. 역무원과 현장에 적합하지 않는 내용, 수시로 바뀌는 교육 콘텐츠 회사, 갑자기 늘어난 의무 이수시간, 작년에 필요한 시간을 넘긴 경우 초과한 시간을 올해 교육시간으로 대체해준다고 해서 열심히 교육시간을 채워놨는데, 올해 교육시간으로 인정해주지 않겠다고 한 결정 등등 현장의 의견을 듣지 않고, '항상 공부하는' 오세훈 식의 창의조직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부당성들이 자연스럽게 술 안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하라고 하니깐 어쩔 수 없이 하긴 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요.”라는 부역장의 말이 오가고.

사실 나도 위기를 느낀다. 교육시간을 주고, 교육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만들어줄 때까지 1시간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버텨오고 있지만,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지 나 자신도 장담할 수 없다. 나는 집에서라도 인터넷이 없는 공간을 만들자는 '가치관'으로 컴퓨터를 들여놓지 않고 있다. 명색이 박사논문을 쓴다면서, 학교 연구실에서 무슨 무슨 자격증 따기류나, 그렇고 그런 자기계발류, 혹은 고객감동서비스기법류의 인터넷 동강을 그 귀중한 시간에 들여다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제부턴 '독서경영'이라해서 동대문 운동장 센터에서 책을 몇 권 가지고 왔고, 빌려온 책들이 누구누구에게 돌고 있는지 기록해야 한단다. 많이 본 사람일수록 점수가 올라가고, 신촌역 실적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독서경영, 창조경영의 이면이고, 기업의 사회공헌도 따지고 들어가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놀라운 일이다. 이런 식의 등수 매기기 통제하에서라면 나는 제일 꼴등을 하게 될 거고, 공부도 하지 않는 무능한 역무원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역무원들 중에는 영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지하철에서 근무 중에 신문과 책을 읽지 말라고 하던 시절부터 독서에 열정을 가지고 이미 책 읽는 일이 생활이 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정서는 자유로움과 창조성과 유사한 것들이며,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한 관심과 무엇이 의미있는 삶인지를 찾는 과정에서 개성있는 취미와 독서가 비롯되었지 싶다. 이런 식의 실적으로 통제하는 책 읽는 구조는 '독서'의 의미를 탈색시키고 그나마 자생적으로 유지되는 작업장 안의 정신적 자산을 허무는 멍청한 짓이다.

점수화 하면 자동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이 조직의 발상. 도대체 이 구조에서 내 마음을 어떻게 지킬지, 어떻게 생활하고 처신하는 것이 지혜로운지, 또 논문은 어떻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 위기의식이 몰려든다. 노동조합이 총기를 잃은 이후 조금씩 양보한 것이 이제는 통제에 대한 실체의 오리무중이 되어버렸다. 인간을 소외시키는 명령을 내린 '주인공'은 없고, 조직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모두가 순응하게 되어버렸으며, 인간을 모멸하는 이 유령에 대적하려 하여도 나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신촌역의 점수를 깎고, 역장의 능력없음으로 돌려버리니 저항할 재간이 없어진다. 우리 모두가 원하지 않았지만 이제 우리는 점수매기기의 게임의 룰에 의해 모두가 '자동 순응형 기계'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은 너무 답답하다. MB가 허정무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는 인터넷 뉴스는 바로 내가 월드컵 축구를 혐오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온 국민이 들뜬 분위기는 이런 몰염치한 소인배들이 엉뚱한 짓을 하기에 너무도 좋은 알리바이를 만들어주고, 이 용렬한 자들은 그런 짓을 능히 할 인성구조를 갖고 있다. 이처럼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우리의 삶을 옥좨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회가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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