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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퇴근하며 막걸리를 한잔 했다. 낮술은 온 하루를 망치게 만드는지라 피하려고 하지만, 더구나 야간노동이 끝난 낮술은 쥐약과 다름 없다. 이웃동네에 사시는 부역장님이 퇴근하면서 역곡역에서 보잔다. 사실 그분의 따님이 다니는 학교에서 빌린 책을 주어야 했기에 피할 수도 없었고, 며칠전 지옥같은 일터에서 벗어나 "막걸리 두통을 마셔야 인간으로 돌아온다"는 그 분의 답답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고, 바로 나의 심정이기도 하여, 낮술을 먹는다. 발길에 밟힐 운명의 은행잎들이 추락하는 늦가을, 미쳐돌아가는 직장에 환멸을 쏟아낸다.

이 부박한 MB시대에 어느 누구가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을까마는, 마치 우리 사장님은 마지막 남은 인간적 자존심마저 싸그리 없애려 작심한 모양이다. 그나마 눈꼽만큼 남아있던 일에 대한 책임감 혹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통제능력을 통해 의미를 부여받던 그 작은 자존심의 영역마저 싹싹 쓸어버리는 것이 그의 사명이고, 지하철에 대한 걱정은 모두 혼자만 하는 줄 착각하는지라, 매일 출근하면서 듣는 것이 근무기강확립이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무사안일의 역무원으로 전락하는 하루 하루가 지옥이다. 90년대 후반 김대중 대통령 시절, 나는 출근할 때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기계였으면 했었다. 마치 신자유주의정책이 신념인듯 몰아부치는 그시절 일터에 남아있던 인간의 영역은 차곡 차곡 돈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기계의 수발을 드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30년 전에 '나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고 싶다'고 절규했던 전태일열사의 그 절박한 요구는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아니 그때보다 더 노동자의 지위는 추락한게 확실하다. 이제 나는 기계만도 못한 인간, 기계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시종으로, 맑스가 얘기했던 죽은노동(기계)이 산노동(인간)을 몰아내는 소외의 극단의 벼랑에 놓인 것이다.  .

브레이버만이나 조지 리처는 작업장에서의 합리화가, 곧 우리 사회의 합리화경향이  결국 노동자의 통제권을 박탈하는 것이고, 이것에 대한 피해는 고객과 노동자에게 간다고 지적했다. 조지 리처는 문제가 발생한 책임은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소비자는 이전에 노동자들로부터 서비스를 받던 일을 스스로 하게되면서, 이익은 합리화를 추진한 세력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지금 지하철의 상황이 딱 그짝이다. 맑스와 베버의 후계자인 이들이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쩌면 저렇게 똑같을까 놀라울 정도다. 내가 생각하기에 시장의 맹신과 권위주의가 혼합된 MB시대 우리 사회에는 노동자의 통제권 박탈이 아니라, 노동자들로부터 인간적인 자존심, 자기 존엄성을 철저하게 회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존감을 잃은 노동자는, 인간은, 소비자 정체성을 갖는 고객들은 더 높은 이상과 주변에 대한 배려와 연대감을 갖지 못한다. 그런 능력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질문할 능력을 상실한 채 몇푼의 돈에 노예가 되어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사물일 뿐이다. 노예들은 자기가 인간으로 존중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는 관념조차 거세당해버렸다.  

“나는 너무도 지쳐버려서 내가 공장에서 머무르는 진정한 이유를 잊어 버렸으며, 공장생활의 가장 강력한 유혹, 즉 공장생활로 인해 고통 받지 않을 수 있는 전적으로 유일한 수단인 ‘아무것도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유혹을 거의 극복할 수 없게 되었다”는 시몬느 베이유의 1930년대 공장 체험은 오늘날의 이 행복도시 서울에서 내가 느끼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내가 공부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인간을 비합리화하는 세력에 대한 분노였고, 사람을 도구적으로 대하는 이 체제에 대한 화였으며, 우리시대의 아버지들인 노동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연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지하게 단조롭게 하고, 일의 성격을 의미없게 만들며, 육체를 혹사시키는 교대제 노동체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기진맥진이며, 퇴근후의 시간이란 나를 누르는 무력감에 눌려 잠시 죽어 있을 뿐이다. 생각하고, 질문하고, 열의를 갖는 일이란 이 작업장체제의 사람들에게 너무도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답답하다. 답답해. 아무런 질문도, 이유도 필요치 않는 영혼이 저당 잡힌 인간을 요구하는 오늘의 이 일터에서 내가 마치 미쳐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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