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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막내 동생이 신발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필요없다고 한사코 얘기했는데.....
제 동생은 제 말을 잘 경청하지 않는 아이인가 봅니다.
여하튼 쿠션이 참 좋더군요. ^^

그래서 오늘(28일) 저는 그 신발을 신고
시청까지 걸어보기로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전 며칠 전 성공회대학교에서
신선생님께 들은 특강 내용을 생각하며
길의 특성을 살피며 구불구불 걸으려고 마음먹었지만
길이 모두 직선으로 쭉 뻗어 있어서  
그냥 직선으로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지그재그로 구불구불 걷기 시작했습니다.

왜냐구요?
사람들이 계속 제 쪽으로 걸어오더군요. ^^
인도가 좁으니 서로가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학생들, 건장한 성인 남녀는
먼저 길을 비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을 제 나름대로 바꿔서
"먼저 길을 양보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물처럼 바람처럼  
지그재그로 구불구불 좁은 인도를 부드럽게 나아갔습니다. ^^;

95%는 제가 피해갔고,
4%는 상대편에서도 저를 피해가려고 해서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고,
기꺼이 평소 양보가 몸에 배신 듯한 제스처로
딱 한 분(할아버지)만 저보다 먼저 길을 양보해 주시더군요.

먼저 양보하면서 걸어가니까, 아니 양보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사람들의 보행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걸어가니까
어깨싸움, 눈싸움, 기싸움 같은 괜한 신경전을 할 필요도 없고,
좁은 길을 복잡하게 걸어간다는 스트레스도 받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쌍문역을 지나는데 거리 분향소가 차려져 있더군요.
지나치다가 다시 돌아가서 조문을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시청까지 이런 거리 분향소가 몇 개나 있을까?
다 들러서 조문을 할까?"

그런데 그 이후엔 못봤습니다. ^^;

여하튼 한참 걷는데 어떤 아저씨가 백원만 달라고 하시더군요.
전 백원 달라고 하는 분은 처음 봤습니다.

없다는 제스처를 하고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가서  
천원짜리 한 장을 드렸습니다.

이번엔 저보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하시네요.
참.....

여하튼 계속 걸었습니다.
밀집모자를 써서 햇볕이 그리 따갑진 않았지만
땀이 계속 흐르더군요.

한 세시간쯤 걸으니 한성대입구역이 나오더군요.
신발 쿠션이 좋아서 발목은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고맙다. 막내야. ^^"

광화문 쪽으로 걷다가 조계사에 들렀습니다.

노란 리본에 많은 분들이 자신의 글을 그에게 남기셨더군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라는(극락왕생) 내용과
미안하고, 고맙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관련된 내용은 극소수였습니다.

하지만, 분노와 원망, 증오와 관련된 글이
거의 없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조문은 하지 않고
대웅전에 들어가 삼배를 하고 나왔습니다.

시청역에서 시계를 확인하니
총 네 시간 정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

대한문 쪽으로 걸어가니 분향소를 찾은 인파가
구불구불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과 시청역 담에 붙은 글들을 읽어보니
자기 성찰, 자기 반성의 글들과 미안함과 고마움이 담긴 글들이 많았습니다.
더불어 분노와 원망, 증오에 가득 찬 글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조계사에서 본 글들과
이곳에서 보고 있는 글들은 왜 차이가 있을까?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조계사는 어머님들과 연세드신 분들이 많고
이곳 대한문 분향소 앞은
젊은 분들이 많아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이곳의 분들은 평소 정치에 대한 관심,
그 분에 대한 관심이
조계사에서 조문하신 분들보다
조금 더 많아서 그런가 하고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럼 나는 어떤가?
그냥 구경꾼인가?
이도 저도 아닌 제 삼자인가?

조문을 오늘 한 것까지 합쳐서 총 세번이나 했는데.....
그와 관련해서 글도 이것까지 합쳐서 세 개나(?) 썼는데......
하루에 서너번씩 눈물을 글썽이는데.....
그래도 왠지 제 삼자, 구경꾼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왜일까? 분노하지 않아서?
아님, 몇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조문을 하지 않아서?
촛불을 밝히고 밤을 지새지 않아서?

분향소 자원봉사자 분들이 나눠주시는 시원한 물은
두 잔이나 마셨습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오늘 느낌을 종합하자면
너무나 좁은 공간임에도 불편을 감수하고
그를 추모하려고 모인 분들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꼭 여기여야 하나?
좀 더 넓은 장소에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자유롭게 그를 추모할 수는 없을까?"

"광장이 어디없을까? 음...여의도 광장은 공원으로 바뀐 걸로 알고 있고,
음.... 한강변이라면 좀 넓지않나?"

"너무 정부와 청와대를 의식한 나머지
광화문과 서울 시청 앞만을 고집하는 건 아닐까?"

여하튼 오늘 저는 시청 앞 좁은 잔디 밭이 아닌,
푸른 하늘 아래 넓은 광장에서 자유롭고, 활기차게
마음껏 그를 추모하는 상상을 하며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라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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