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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오늘,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오르는 인천행 마지막 열차에 자주 볼 수 있었던 노무현 욕을 해대던 그 노인네들, 걸핏하면 세금을 내는 것이 커다란 위세인 듯 역무원들이 무한정의 봉사를 요구하면서 삿대질로 노무현 대통령을 욕하던 그 민중들은, 노무현이 김정일에 대한민국을 갖다 바친다는 서초동과 동부이촌동 사람들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나처럼 이 나라가 어디로 갈지 두려운 어떤 조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나는 지난 대통령선거가 IMF이후 지하철 노조 선거유형의 확대판이라는 생각을 했다. 노조집행부를 향해 요구만 했지 조합원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는 없는 소비자로서의 정체성, 누가 진정 우리를 위해 앞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인지 우리를 이용할 사람인지 뻔히 알면서도 조합원이 원하는 것을 모두 만족시켜 줄 수 있다는 위인에 투표를 하는 즉물적 실리주의, 우리 스스로의 부끄러운 점을 드러내는 반성과 성숙으로 사회적 역할을 하기보다는 월급만 올려주면 좋은 거라는 1차적 욕망을 자극하여 노조 정치꾼의 뜻을 관철하는 저급한 선전이 지배했던 것이 소위 민주화된 정부하에서 작업장을 지배하던 정치수준이었다. 그래서 정말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지 않고도 월급봉투를 두껍게 할 수 있었고, 자신이 이루던 바를 성취했던가? 천만의 말씀이시다. 사회적인 총명함을 잃은 대신 돌아온 건 노동조건의 악화와 직업병과 스트레스로 인한 죽음이었다. 천육백여명의 정원 감축에 이어 또 다시 2,000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런 지하철에서 일어난 불길한 사례들이 우리 사회에 그대로 일어날 듯 하여 걱정이다.  

엊그제, 당고개행 지하철에 사람이 누워있다는 사령실의 연락을 받았다. 일테면 지하철공사로 시민의 민원이 들어온 것이다. 시민이 원하면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수퍼맨인 나는 공익 친구와 그 열차에 올랐다. 환자였으면 좋으련만 역시 노숙자다. 그 딱한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런 신고를 하는 그놈에 시민이 누군지 짜증이 났다. 이렇게라도 갖은 눈치와 사방에서 쏟아지는 혐오의 기운에 맞서기 위해서는 어깃장 형식을 취해야 한다. 누가 뭐라하던 살 썩는 냄새를 풍기면서 지하철 좌석에 드러눕는 것. 그래야 훌륭한 시민들은 집적 손을 대지 않기 때문에, 그 잠깐이라도 등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 대신 우리의 소시민들께서는 손전화로 흰 손가락을 누르면서 시민정신을 발휘한다. 그러면 어디서나 예! 감사합니다 고객님 하며 달려오는 역무원들을 볼 수 있다.
이렇게라도 잠시 냄새를 피우고, 여러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그들끼리의 집단이 형성된 서울역이나 도심으로 갈 수 있지 어떤 점잖은 방법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이 노숙이 형성되지 않은 전혀 엉뚱한 외곽에 있을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을 감안하여, 보면서 못 본 척해주는 것도 아량있는 시민이 아닌가 싶다. 2-3칸에 오르자 왼쪽 편 노약자석 의자에 그가 누워있다.

공익: 어디까지 가세요. 그 훌륭한 시민들 멀뚱멀뚱 처다본다. 누군가 신고를 했다면 어디서부터 시민에 불편을 주었다든지,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하철에서 이런 사람들을 통제도 하지 않는다든지 뭔가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노숙자: 전두환,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역대 대통령들 이름들이 들어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죽 이어짐.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놔둬, 제발 놔둬 다. 그러니까 나도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거 다 안다. 그러니 나도 지하철에 이렇게 누워있지만 사람들의 싫은 눈치 속에서 편한 것이 아니다. 갈 수 있는 동안만이라도 조용히 가게 그냥 나둬라 이놈들아 이런 말인 듯싶다.  
나 : 서울역 가는 길이세요? 아저씨 같으신 분들이 모여있는 곳에 있어야 그래도 편하지 않으세요? 몇 정거장 안 남았으니. 양말은 신으시고, 사람들이 또 신고하니 누워있지 말고 앉아있으세요.
노숙자: 나도 천주교 영세 받았고, 군대 갔다 온 사람이여. 그 말에는 여러분들이 보는 것처럼 엉터리 인생이 아니라는 하소연이다. 그도 가정을 건사했던 가장이었고, 이 사회에 좋은 뜻을 세우려 살고자 했다는 여러 의미들이 담겨있었다.
공익: 어디가세요, 어디까지 가세요. 이놈은 그저 이 소리뿐이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법도 모르고 오로지 전동차에서 끌어내야 한다는, 자기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있다.
나 : 어떻게 하다 (인생이 꼬여)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추위는 피하고, 밥은 어디서 주는데라도 있어요? 참, 얼굴이 선하다, 눈도 생전 누구를 속여본 적이 없는 눈이다. 청문회의 그 교수출신 예비 장관들과는 달리 이 착한 사람은 말도 못한다. 그의 위아래 앞니는 하나도 없다. 술로 다 삭아버린 모양이지만, 부처님, 하나님 얼굴이다.
노숙자 : 천주교 영세받고, 군대도 갔다왔고, 고향이 해남인디. 더 이상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순 없지만. 한 때는 꿈도 갖고 이 사회를 위한 적도 있는 지금 당신들이 보듯 모두가 싫어하는, 냄새나 피우는 그런 인생이 아니었다는 누구에게 말하지 못하던 그의 하소연이 담긴 주장이다. 성실하게 살아보려 했지만 세월을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저 짝에 때 절어 뻗뻗해진 양말 짝을 주워다 주고, 그는 뻗뻗해진 고체덩어리에다 작은 발을 끼우고 나서 다시 검은 비닐봉지를 한 번 더 쒸운다. 전동차는 한 정거장을 가고 그 와중 공익은 떨어져서 여전히 아저씨 어디가세요, 어디까지 가세요고 우리의 시민들의 눈길은 이쪽으로 향해 있다. 나의 소매를 붙들고 일어서려다 주저앉기를 몇 번, 일꾼처럼 든든한 몸을 갖고 있지 않은 나는 그의 체중에 흔들흔들거리며 전동차에서 내렸다.

신용산역에서 내려 아무래도 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야 추위라도 피할 수 있고, 끼니라도 해결할 수 있을 듯하여, 용산역으로 갈 수 있도록 계단으로 안내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그는 말을 한다. 그동안 기억 속에 잊고 있었던 사람과의 대화를 하는 그 살아있는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의 공익, 빨리 가자는 신호를 주고, 나를 붙잡은 노숙인 눈엔 물기가 보였다. 자신의 말이라도 들어주어 고맙다는 것인가. 그를 보내놓고, 만 원짜리 한 장 집어주지 못한 게, 김밥 한 줄이라도 사서 챙겨주지 못한 게 참 나도 아직은 멀었다하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한 사람을 일자리에서 '정리'하는 것은 심사숙고하고 또 숙고해야 하는데, 또 다시 들리는 건 구조조정의 새로운 버전인 작은 정부와 기업마인드 타령이다. 진정으로 국민에게 섬기는 정부가 되고자 한다면 여러 식구를 건사하는 사람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인생을 계획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엉뚱한 일에만 정력을 쏟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저마다의 국민이 나라 걱정을 하는 하 수상한 이 시절이 참 씁쓸하다.

소주한잔을 하고 제본하기 위해 들린 부천 가톨릭대 앞 송희 복사집에서 쓰다.
2008년 2월 29일 23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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