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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새벽은 어둠이다. 어린 우리 형제들에게 새벽은 너무나 깊은 밤중이었다. 새벽잠에 빠져 단꿈을 꾸고 있는 우리들은 엄마는 겨울만 되면 어김없이 두들겨 깨웠다. 새벽이 환한 여름이 되면 유원지 장사로 바쁜 엄마는 새벽부터 장사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쳐 우리들을 깨울 시간이 없어 우리들은 마음껏 늦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형제들은 여러모로 겨울이 싫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엄마는 아직도 잠이 뚝뚝 묻어있는 우리들을 새벽부터 회초리로 두들겨 깨워 상 앞에 앉히곤 천자문을 읽고 쓰게 했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룰 황, 집우 집주, 넓을 현 거칠 황…… 천자문 밑에 나와 있는 해석을 보면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라는 해석이 씌어져있었다. 세상의 이치가 나와 있는 것이 천자문이라고 우리에게 무조건 외우고 쓰라고, 추운 새벽부터 잠이 덜 깬 우리형제들을 회초리로 위협하고 있는 엄마에게 난 물었다.
“엄마, 땅은 누렇다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하늘이 푸르지, 왜 검어?”
그러면 엄마는,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른 것이 세상의 이치다, 옛 어른들의 말씀이다, 어서 읽고 쓰기나 해, 라며 나의 질문을 잘라버리셨다.
‘옛 어른들은 깜깜한 새벽에 천자문을 만들었나, 왜 푸른 하늘은 보지 않고 검은 하늘만 본 것일까, 세상의 이치를 담은 천자문이 엉터리구나,’
그렇게 생각한 후로 엄마가 아무리 천자문을 외우라고 닦달해도 난 엄마의 눈을 피해 건성건성 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천지는 검고 누루며 우주는 넓고 거칠다는 표현을 쓴 것은 옛 어른들의 세상을 사는 것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자각한 인생관이 아니었을까, 나름 생각해본다.

추운 겨울 새벽에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잠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억지로 부비며 천자문을 읽고 써야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일찍 일어나라, 공부를 하라, 는  소리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아도 나의 아이들은 알아서 공부를 해주었다. 큰 딸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나의 권유대로 순수미술이 아닌 상업 미술을 순순히 선택해 주었다. 그런 딸이 고3 때, 집안에 일어난 우환의 영향을 받아 잠시 휘청거리더니 한 해 재수를 하게 되었고 이듬해 지방의 전문대를 가게 되었다. 기대를 걸었던 딸이 재수까지 하여 결국은 지방대에 가게 된 것에 대해 딸에게 표시하지도 못한 체 엄마가 홀로 얼마나 아파했는지를 옆에서 본 아들이 코피를 쏟아가며 공부를 하더니 전교 1등을 했다.
“엄마, 나 전교 1등 했어! 누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엄마를 기쁘게 해줘야겠다는 오직 그 생각으로만 공부했어.”
"우리 아들 장하다."
그런 아들이 시험이 끝나자마자 쓰러져 일주일을 앓았다.

올해 딸이 졸업을 하고 인터넷에서 60학점을 올 A로 성적을 받았다. 그렇게 4년제 대학졸업 자격을 얻어 서울에 소재한 여대 대학원 시각디자인과에 2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합격 통지를 받은 날, 남이 보면 장원급제라고 한 것처럼 딸과 나는 얼싸안고 기뻐했다.
"우리 딸 장해!"
아들은 누나의 합격 소식을 듣더니
“엄마, 나와 축하주 한 잔 할까?”
“너 술 마실 줄 알아?”
평소 식구들이 모이거나 아니면 내가 가끔 맥주를 한 잔 마시며 농담처럼 너도 한 잔 할래? 라고 말해도 기겁을 하고 내빼던 녀석의 입에서 축하주 한 잔 하자는 말에 난 너무 놀랐다.
“응, 저 번에 친구와 한 번 마신 적 있어?”
“언제?”
“엄마가 입에서 술 냄새 난다고 혹 술 마신 것 아니냐고 할 때.”
“아~너 샤워하다 목욕탕에서 잠들어 엄마가 깨웠을 때 말야?”
“응.”
“역시 그랬구나. 근데 왜 술 마셨어?”
“심화학습 끝나고 친구가 재홍아, 너 술 마실 줄 아니? 너와 얘기를 하고 싶은데 맨 정신으로는 못하겠다, 고 말해서 술은 마실 줄 모르지만 네가 술을 마셔야 얘기를 할 수 있다면 나도 마셔볼게, 하고 말하고 함께 마셨어.”
“어디서?”
“노래방에서.”
“어떤 술?”
“참이슬.”
“안주는?”
“고래 밥하고 새우깡.”
“이놈아 독한 소주에 과자하고 술 마시면 속 다 버려, 다음부턴 고기와 마셔.”
“노래방에서 어떻게 고기와 마셔, 그리고 그럴 돈이 어디 있어. 다 함께 천 원씩 걷어서 마셨는데.”
“그럴 때는 엄마에게 전화해, 엄마가 사줄게.”
“그러면 아이들이 어려워서 못 마시지.”
“술은 어른 앞에서 배워야해.”
“그래서 이렇게 엄마 앞에서 마시잖아.”
“그런데 술 마시고 꼭 해야 할 말이 뭐래?”
“재홍이는 다 좋은데 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과 못하는 아이들을 차별 하냐고……”
“네가 그랬어?”
“응, 내가 생각해봐도 못하는 아이들에겐 좀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어.”
“그래서 뭐라고 했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정말 그랬더라고, 그래서 솔직하게 말해 주어서 고맙다고, 내가 그건 정말 잘못이라고 했어.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도 나름대로 생각은 다 있더라고.”
“당연하지.”
“그런데 엄마, 나 누나가 대학원에 합격해서 너무너무 기뻐. 엄마가 누나 지방에 내려 보내고 얼마나 마음 아파했어. 누나가 그렇게 밤을 새고 공부하더니 결국 붙었구나, 누난 정말 대단해! 자 엄마 건배!”
아들은 눈에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혀있었다.

그런 아들이 고등학교를 의정부로 나가지 않고 지금 다니는 학교로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다니는 학교로 진학하면 3년 동안 전 장학금에 기숙사 제공에 노트북까지 준다는 말에 나와 아들은 노트북에 눈이 멀어 무조건 그 학교로 진학을 감행했다.
아들이 잠시 고민할 때면 난,
“재홍아, 의정부로 나가 용의 꼬리가 되는 것보다 여기서 뱀의 머리가 되어 농어촌 전형혜택도 받고 장학금도 받고 노트북도 받고 기숙사에 들어가서 네가 열심히만 하면 얼마든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어. 너는 선생님들의 기대를 받으며 이 학교의 꿈나무로 공부하는 거야. 얼마나 좋으니? 그러니 무조건 이 학교로 가.”
“엄마 그러면 나 법대 갈까?”
“뭐라고? 제발 그러지마. 이제는 로스쿨까지 생겨 법대생 다 밥 굶게 생겼어. 사법고시에 합격해도 사무실 비용도 못 내는 변호사가 수두룩해. 법대고 뭐고 그냥 공업 디자인 해. 그래야 너 밥 먹고 살 수 있어. 앞으론 컴퓨터가 못하는 것, 예술, 체육, 요리, 기술, 이런 것들을 해야 네 밥벌이를 하며 살 수 있어.”
“엄마는 돈 밖에 몰라. 타락했어.”
“야 이놈아! 네 밥벌이도 못하면 누가 너와 결혼을 하고 앞으로 네 인생이 어떻게 되겠니? 넌 무조건 공업 디자인이야. 네 손에 기술이 있으면 밥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거야. 영원히는 모르겠지만, 너의 세대까지는 공업 디자인은 가능성이 있고, 너만 열심히 하면 취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야. 그러니 잔말 말고 공업디자인으로 해.”
“엄만 역시 타락했어, 타락했어, 그저 밥걱정, 취업 걱정,”
“에그 이 녀석아, 나중에 엄마 말이 맞았다는 날이 올 거다.”
그렇게 아들에게 타락했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아들은 3년 동안 장학금과 기숙사, 노트북을 받고 진학을 하기로 했고, 딸은 시각 디자인 대학원에 합격이 되고, 대학원 학비는 실로 엄청나서 (한 학기에 700만원이니 딸과 함께 둘이 동시에 대학원에 다니면 1년에 3천만 원) 난 비싼 대학원을 공짜로 다니기 위해, 돈에 눈이 어두워, 오늘도 열심히 올 A를 유지하기 위해 눈에 불을 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들의 말대로 타락한 것 맞는 것 같다. 그렇게 돈에 눈이 어두워 학점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아들과 딸은 한 마디씩 한다.
"우리 엄마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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