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숲속의소리

2007.08.20 10:01

중국여행

댓글 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8월 6일 오전 10시 15분 인천공항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시간이었다.
치매의 중증을 향해 달리는 나를 위해 그 날을 잊을까봐
승혁님도 우종님도 나에게 문자와 전화를 해 주신 수고와
친절을 잊지 않았다.
떠나는 날은 잊지 않았는데 문제는 시간이었다.
내 딴에는 잊지 않고 완벽하게 여행을 계획한다고 이것저것
챙기느라 시간은 벌써 9시를 향했다.
돌아오는 차를 운전해야 할 딸을 옆에 태우고 시속 170을 놓고 자유로를 달렸다.
너무 빨리 달려 딸년은 멀미를 한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순간은 달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렸다.
사력을 다해 달린 덕분에 집에서 떠난 지 한 시간 만인 10시쯤에 공항에 도착하였다.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대견했다.
하지만 떠날 때 문을 잠그며 잠시 옆에 둔 모자를 잊고 왔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다행히 자동차 안에 딸의 모자가 실려 있어 딸의 모자를 빌렸다.
공항에 들어서니 승혁님을 비롯해 나보다 일찍 오신 분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여러 분들과 인사를 하고 손전화를 로밍하고 나름 분주했다.
항상 일상처럼 핸드백만 들고 떠났는데 이렇게 여행 가방을 들고 떠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설레임과 함께 내가 챙겨야 할 짐이 많다는 것에 난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보딩카드만 들고 면세구역으로 들어가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일본에서 팩스가 왔는데 이상한 서류들과 함께 그 서류를 보면 급히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 달라는 팩스가 들어왔다는 말을 딸이 전한다.
서류를 볼 수 없는 난, 순간 당황하고 난감했다.
잠시 생각하다 우선 그 서류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일단 그 서류들을 아저씨에게 팩스로 보내 주라고 전하고 남친에게 전화를 걸어 팩스를 받으면 내용을 확인 한 후, 나에게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후 남친에게 걸려 온 전화는 조정에 관한 건이라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중국으로 갈 비행기를 일본으로 가는 것으로 바꿔 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내가 하는 일에 왜 이렇게 걸림돌이 많은지에 대해, 스스로 잠시 아주 비감한 기분에 젖어 들며 당황스럽고 정신이 없었다.
일본으로 전화를 넣으니 이런저런 골이 아픈 얘기를 한참 한다.
다행히 지금 당장 일본으로 가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다.
전화를 끊고 겨우 한 숨 돌리는데 내가 의당 손에 쥐고 있어야 할 보딩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딸에게 전화가 오고 이리저리 전화를 하고 전화를 받는, 정신이 없는 통에 손에 들고 있던 보딩카드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마 전화를 받고 걸며 손에 들고 있던 보딩카드가 거추장스러웠던 모양이었다.
분명 내가 그 순간에 몰입하고 집중하여 손에 들고 있던 보딩카드를 던져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혹시나하여 핸드백을 홀랑 뒤집었으나 없었다.
등에 땀이 흘렀다.
어쩔 수 없다.
면세구역 어딘가에 있을 승혁님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알릴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전화를 받은 승혁님도 어이가 없고 난감한가 보다.
하긴 나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으니……
일단 나 있는 곳으로 온다는 승혁님의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낮 익은 이름이 방송을 타고 흘러나온다.
“박 선희님은 안내 데스크로 와 주시길 바랍니다.”
‘만세! 나 방송 탔다!’
안내 데스크로 가는데 급히 올라오는 승혁님과 류지형님과 마주쳤다.
같이 안내 데스크로 찾아가 곱게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내 보딩카드를 찾으며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옆에 있던 지형이가 나에게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이 사실 저희만 알고 있을게요.”
‘이왕 버린 몸, 상관없어.’

겨우 한 숨 돌려 비행기를 탈 출입구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이 허전해 정신을 차려보니 보딩카드를 찾을 때 들고 있던 모자를 안내 데스크에 놓고 온 것이었다.
나도 이젠 내 자신에게 지쳐버렸다.
‘그래 어차피 언젠가 잃어버릴 것, 그냥 놓아두자.’ 그렇게 포기하는데 옆에 있던, 우리의 조장 우종씨가 찾아오자고 한다.
마라톤을 하는 우종씨의 실력으로 공항 보세구역에서 100m 달리기를 하여 모자를 찾았다.
‘소유가 원수여. 아! 무소유의 자유스러움이여!’


중국의 남방항공인지 북방항공인지는 연착을 기업의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는 듯 보였다.
목 빠지게 기다린 덕분에 서안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목이 마른데도 참으며 중국의 시원한 맥주 칭따오를 마시리라, 는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미지근한 표정으로 미지근한 한스 맥주를 미지근하게 마셨다.
옆에 앉은 영섭씨의 똑똑한 아들 용환이와 함께 수다를 떠는데 어느덧 서안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입국 심사대에서 공안요원이 내 여권을 한 참 들여다보더니 기다리란다.
사진과 내가 너무 다른가……
실물이 너무 뽀사시했나……
별로 고치지도 않았구먼, 젠장,
아 미인은 어딜 가나 괴로워~
그래도 사진은 배용준인데 실물은 배기표님이라서(배기표님 죄송) 근 20여분 잡혀 있던 김우종님보다는 낫다는 점이 참작이 되었는지 잠시 세워두더니 들어가란다.

그렇게 중국으로  들어와 장안 입성 기념사진을 찍고 함양에 있는 공항 주위에 있는 크기가 산으로 보이는 무덤들을 보며  시안성을 향해 달렸다.
시안성을 잠시 둘러 본 후, 저녁을 먹고 차창으로 중국의 거리를 보며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해 근 한 시간에 걸려 방 배정을 받았다.
호텔도 만만디인가……
방으로 돌아와 퉁퉁 부은 내 발에서 신발을 빼내었다.
출발하기 전 날, 애써 농사를 지은 고추들이 비바람에 쓰러져, 쓰러진 고추대를 세우느라 남친과 함께 고추대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릴 때까지 땀을 뻘뻘 흘렸었다.
남친은 내일 중국 가는데 힘들겠다며 그만하라고 걱정을 하며 만류하는데 쓰러진 고추대를 차마 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 여파와 여행에 대한 피로감 때문인지 내 발과 손은 무섭게 부어있었다.

숙소에 짐을 챙겨넣기 위해 여행 가방을 풀었다.
그런데 아니다 다를까, 저 번에 유럽 여행에서 속옷을 가져가지 않아 온 유럽을
노팬티로 돌아다닌 경험이 있던 나는, 이번에는 옷들과 속옷은 바리바리 챙긴 대신 정작 얼굴에 찍어 바를 분장 도구를 잊고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다.
내장준비는 철저히 했는데 이번엔 외장준비를 잊은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덕분에 다음 달에 결혼 하는, 나와 한 방을 쓰게 된 예쁜 세아씨 화장품을 빌려 바르게 되었다.
결혼하는 사람 화장품을 사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빼앗아 쓰게 되었으니…
덕분에 새색시가 될 세아씨의 화장품을 바르는 동안, 마치 내가 새색시가 된 듯 기분은 내내 좋았다.

첫 날 저녁이 되자 우리의 풋풋한 젊음들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야시장을 보러 간다는 것이다.
야시장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 나라를 알려면 가장 서민적인 곳을 보아야한다.
하지만 퉁퉁 부은 내 발이 너무 불쌍했다.
“선배, 괜찮으면 같이 가요.”
예쁜 세아씨와 혜영씨, 젊고 귀여운 그녀들의 말은 유혹적이었다.
“나도 가고 싶은데, 어제 하루 종일 고추를 세우느라 피곤하고 온 몸이 퉁퉁 부어서……”
내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하고 조용해졌다.
“뭐지? 왜 이러지?”
갑자기 조용해진 이유를 모른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니야!!! 고춧대를 세웠다고!! 고춧대!!! 왜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박명아스럽게 받아들이지!!  으~ 내가 몬 살아!!!”

야시장은 사람들이 사는 풍경이었다.
윗통을 홀딱 벗고 음식과 술을 마시는 풍경은 생소했으나
체면에 구애받지 않는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정겨웠다.
시간을 갖고 그들의 생활을 엿보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냄새였다.
보기와 달리 먹는 것과 냄새에 까다로운 나는 지글지글 구워내는 중국의 음식 냄새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고백하지만 사실 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
여행 기간에 한국 음식인, 돼지고기 삼겹살을 먹는다고 했을 때, 난 절망했다.
하지만 독한 중국 술 덕분에 정신없이 몇 점을 집어 먹었다.
아니다,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 중국술을 먹었나??
어쨌든 그렇게 독한 50도의 중국술을 퍼 마시고 술에 취한 박명아는 겁도 없이 옆에 앉은 신선생님께 감히 술주정을 한 것 같다.
뭔가를 쓸데없는 말을 한참 했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 제가 원래 미친년이니 용서해주세요."
하지만 너그러우신 신선생님께서는 벌써 용서를 해 주셨다는 것을 난 안다.

보기와 달리 비위에 약한 마적단 딸은 약한 비위를 탓하며 중국의 진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야시장의 음주를 포기하고 과일만 사서 먼저 숙소로 돌아왔다.
언어가 안 된 우리들을 위해 유창하게 중국어를 구사하는 동영님과 중국에서 10개월 공부를 했다는 세아씨, 그리고 영어도 잘 알고 중국어도 잘 알고 모든 것을 잘 알지만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의 결혼은 언제 할지 알지 못하고 있는, 팔방미남 승혁님이 우리들을 위해 힘든 중국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도 어디로 가자는 말도 못하는 벙어리들이었다.
중국 여행 내내 그런 벙어리들의 입이 되어 준 세 분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중국 서안에 대한 학습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내세를 믿던 진시황이 죽은 후 자신을 위해 현세의 생활을 그대로 진흙으로 모형을 만들어 놓은, 수많은 군사들 얼굴 하나하나의 표정이 전부 다른, 병마용 갱도 아니었고 삼 천 궁녀를 거느렸다는, 진시황 사후에 축소시켜 지었다는, 그래도 나의 눈에는 너무나 큰 아방궁도 아니었다.
나의 뇌리에 날카로운 충격을 준 것은 비림이었다.
처음에 비림을 비빔밥으로 잘못 들을 정도의 무식한 내가 몇 천 년을 내려온 수 많은 비석들의 숲을 보고 감동보다는 옷깃을 여밀 정도로 겸허해졌다.
며느리인 양귀비를 취한 현종의 글씨와 왕희지의 글씨, 돌 위에 새겨놓아 글자 하나라도 잘못 배우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선조들의 의지로 새겨진, 그 시대의 교육의 지침인 사서삼경,그러한 그들의 의지를 보고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황하 문명만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새삼 글의 위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다.

중국화폐, 위안화.
100원이 우리나라 돈으로 13,000원 정도이다.
그 것을 보고 아직도 중국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라 경제에 가장 기본이 되는 화폐.
그 화폐의 가치가 아직은 그렇게 소박하다는 증거는 아직도 발전 가능성이 많다는 내  짧은 경제 생각이 옳은 것일까?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1억 5천만의 인구수를 가진 중국.
선진국은 아니지만 세계에서 무시를 못하는 대국.
그 거대한 중국이 우리나라 화폐가치와 같은 130배로 발전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직도 무한한 기회와 가능성이 많은 나라, 중국, 나도 중국에 가서 장사나 해 돈이나 벌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 같이 얼핏 본 중국을 보고, 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중국으로 간다. 기회의 나라에 가서 돈을 벌어보자, 는 생각으로, 하지만 그 사람들이 중국에 가서 그들의 생각대로 성공해서 돈을 벌었다는 말은 나는 아직까지 들어 본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언어 때문만 일까……
언어를 배우지 못하고 부자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어가 되고 모든 사정에 밝은, 그 곳에 사는 조선족들에게 의지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흔히 들리는 말처럼 조선족이 언어를 모르고 그 곳 물정에 어두운, 철부지 꿈에 부푼 우리나라 사람들을 이용해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고 한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일까……
흔히들 열심히 배우면 중국어는 1년 정도면 의사소통이 된다고들 말한다.
간단한 의사는 소통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다.
단지 언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언어 속에 녹아 있는 문화까지 이해를 하려면 10년은 머리털 빠져가며 공부하고 중국에 미쳐야한다.
그래야 겨우 눈을 뜰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나라의 언어라도 만만하고 녹녹한 언어는 없다.
그렇다면 중국으로 가 사업을 하거나 장사를 하려면 적어도 10년은 중국에 미쳐야하고 머리털 빠지도록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전 준비를 적어도 10년은 하고 가야 한다는 말이다.
분수를 잘 아는(수학의 분수가 아님) 나는, 중국에서 돈을 벌지 않기로, 그래서 그냥 한국에서 한국어로 만족하며 살기로 했다.

그 다음에 들린 곳이 장개석이 잡힌, 온천이 나오는 여산과 양귀비를 위해 현종이 목욕탕을 지어준, 물이 귀한 시안에서, 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도록 설계된, 그 시대의
목욕탕들을 보았다.
마당 한 쪽에는 양귀비로 추정되는, 풍만함이 지나친 여인상이 세워져 있었다.
양귀비가 이 시대의 태어났다면 다이어트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저렇게 뚱뚱한 몸으로 한 나라의 왕비가 되는 장사를 했다니……
양귀비 목욕탕 옆에 있던, 장개석이 묵었던 숙소와 사무실, 장개석이 잠옷 바람으로 사력을 다해 달아났으나 돌 사이에 숨어있다 잡혔다는 여산,
그런데 놀란 것은 사무실에 걸려 있던 장개석의 사진을 본 순간이었다.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보았는데……
그렇다,
장개석이 세운 황푸 군관 학교를 나온 아버지가 장개석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였다.
그 빳빳한 흑백 사진 종이로 우리 형제들은 딱지를 만들어 놀곤 했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은 기억이 있다.
장개석의 사무실을 보는 내내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내 나름의 생각들을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 홀로 높은 정자로 올라 생각에 골똘해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이 멋있었는지 인물님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정태운님이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역시 사람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해. 흠흠……’

황하시대의 유인원부터 청나라까지의 발전 역사를 볼 수 있던 서안 박물관.
중국 불교 전파의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현장법사의 인도를 가고 오는 여정을 그려
놓은 사원.
이슬람 종교를 믿는, 소수민족인 회교도들의 문화를 이해하며 포용했던 중국인들의 너그러움, 그래서 지금까지 소수민족인 회교도의 전통을 가지고 살 수 있는 회교도들의 거리와 사원,
알라 신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는 이념으로 신과의 메신저 역활인 사제가 없다는
이슬람교.
매력적이었다.
서안에서 시작해 영국까지 간 그들의 의지, 실크로드의 출발지를 보고,
비림에서 느꼈던 비슷한 감동을 다시 느꼈다.

그렇게 더운 서안 여행을 끝내고 드디어 떠나는 날이 왔다.
떠나기 전에 공항에서 우리를 위해 중국에서 내내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조선족 처녀 김복자씨에게 신선생님께서 남은 위안화를 건네주라며 내어주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역시 선생님은 다르시구나.
난 한 푼이라도 남은 돈은 면세점에서 무언가 사리라는 일념으로
행여나 잃어버릴까봐 주머니에 꼭꼭 꼬불쳐 두고 있었는데……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안 살 내가 아니다.
난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능력으로, 자질로, 될 수 없으면 깨끗이 포기하고 인정하는 게 사는데 편하다.
그래서 난 애쓰지 않고, 애초에 내 주제 만큼 살기로 작정하지 않았던가.
돈이 남지 않도록 1위안까지 탈탈 털어 나쁜 머리를 짜내어 사는데 집중했다.
그 게 솔직한 내 모습이고 나였다.
그렇게 내 주머니는 내 방식대로 자유스럽고 홀가분해졌다.

여행이 끝나니 돌아가기가 아쉽다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하지만 난 아쉽지 않았다.
돌아가야 할 때다.
돌아가고 싶었다.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
내가 가야 할 곳으로.
더운 서안에서 공부는, 이번에는 그 것으로 충분했다.
머뭇거리지 않고 미련없이 떠날 때를 알고 깨끗하게 떠나는 사람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번 중국 공부는 여기까지만!
열심히 공부한 그대! 떠나라! 미련없이!'

짐을 다 부치고 출국하기 위해  몸수색을 받는데 손에 든 중국 술 2병이 걸렸다.
액체는 안 된다고 짐으로 부치라고 한다.
‘잉, 술이 액체인가??’
액체는 화장품인 줄 알고 화장품에만 신경 써, 손가락만한 작은 립 글로즈만 짐으로 부치고 정작 손에 든, 립 글로즈보다 백배나 더 큰 액체인 술 2병은 덜렁덜렁 손에 들고 보세구역으로 들어 온 것이다.
‘아 나는 얼마나 바보 같고 얼마나 단순한가! 이런 나를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하겠는가, 이런 내가 너무 사랑스럽다.’

말이 통하지 않은 벙어리인 내가, 통역하는 사람을 대동하고 술 2병을 짐으로 부치기 위해 이유를 설명하고 다시 나가 내 짐을 찾는 일은, 통역하는 사람을 힘들게 만들고 여러 사람들을 걱정시키는 일이었다.
별로 비싸지도 않은 술 2병을 위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리 30명을 위해 5일 내내 통역하고 챙기는 사람들의 얼굴은 이미 말이 아니었다.
여행재해의 얼굴들이었다.
고생은 넘치도록 충분히 시켰다.
양심상 더 시킬 수가 없었다.
한국을 떠날 때부터 보딩 카드까지 잊어버려 승혁님을 곤혹을 치르게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조국을 빼앗겼던 시절, 청춘을 중국에서 보내며 아버지가 신세를 진, 중국이라는 나라에 그 딸이 술 2병을 선사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세구역으로 들어와 중국술을 다시 샀다.
물건을 모르면 값을 비싸게 주는 것이 좋다고 가장 비싼 술로,
살 것도 다 사고, 떠날 만반의 마음의 준비가 다 끝내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빨리 가고 싶었다.
하지만 기다려야했다.
만만디 정신으로 인내를 가지고 계속 기다린다는 것은 내겐 참 어렵고 지루했다.
동영님에게 물었다.
“오늘 중으로 한국으로 갈 수는 있을까요?”
똑똑하고 사람 좋은 동영님은 시원한 대답과 함께 웃는다.
“그럼요!”
사윗감으로 탐나는 청년이다.
중국에서 유창하게 중국어를 구살 할 땐 또 얼마나 멋있었던가.
‘으 내가 이년을 정말……’
그럴수록 압력 밥솥을 들고 튄 딸년이 원망스러웠다.

동영님 말대로 드디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내 옆에 앉는 승혁님은, 여행 내내 운영위원이자 통역관으로 신경 쓴 여파가 때문인지 비행기를 타자마자 실신 상태로 들어갔다.
비행기가 정상 궤도를 찾으며 순조로운 비행을 하자 언제나 그렇듯 식사가 나왔다.
중국 비행기에는 한국 여승무원도 있었지만 내게 서빙을 하는 승무원은 중국 여승무원이었다.
“치킨 엔 포크”
음식 카트를 내 앞에 끌고 온 중국 여승무원이 예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물었다.
‘뭐여? 치킨을 먹는데 포크가 필요하냐고? 당연히 필요하지, 그걸 말이라고 물어? 너희들은 기내에서 손가락으로 밥과 치킨을 먹냐? 내 참 기가 막혀서!"
내가 그런 표정으로 멀뚱히 여승무원을 쳐다았더니 여승무원은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똑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지금 이 승무원이 뭐라고 하는 거예요? 기가 막히네. 지금 자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좀 일어나 봐요. 지금 치킨을 먹는데 포크가 필요하냐고 묻는데 이 사람들은 포크 없이 밥과 치킨을 먹나봐요, 큰일났어. 어서 일어나 봐요."
옆에 있던 실신 지경인 승혁님을 황급히 깨웠다.
승혁님은 내 말에 부스스 눈을 뜨더니 승무원에게 무슨 말이냐고 중국어로 물었다.
“치킨 엔 포크.”
승무원은 똑 같은 말을 승혁님에게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저 봐, 치킨과 밥을 먹는데 포크가 필요하냐고 묻다니? 말이 돼? 중국 사람들은 포크 없이 손가락으로 밥과 치킨을 먹나? 역시 때놈들이여!”
“그 게 아니라 치킨하고 돼지고기 중에서 뭐를 먹겠냐는 말인데요.”
“잉? 그럼 포크가 돼지고기에요?”
“네.”
“참내! 돼지는 피그 아닌가? 그런데 왠 포크여? 아~헷갈려 젠장! 역시 중국말은 어려워!”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포크가 아닌 치킨을 먹고 비행기에서 내려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나의 아이들과 남친이 마중 나와 있었다.
‘돌아 올 이유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돌아 올 때 남친과 아이들에게 치킨과 포크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더니 남친은 즐겁게 웃고
딸은 시무룩해 한다.
“엄만 너무해.”
“뭐가 너무해? 엄마 때는 영어 교과서에 돼지고기란 단어 안 나왔어. 난 과외 하지 않고
교과서에 충실하게 모범적으로 공부한 사람이야.”

그렇게 이번 여름 나의 중국서안 학습여행은 치킨과 포크를 배우는 유익한 여행이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945 중국의 붉은별 3 김동영 2008.03.17
» 중국여행 8 박명아 2007.08.20
2943 중국수교 15주년... 김동영 2007.08.25
2942 중국동포 2 신복희 2003.11.26
2941 중국 여행 함께 가실 분을 찾습니다. 6 신정숙 2008.09.03
2940 줄탁동시, 3월 달력에서 1 안중찬 2008.03.01
2939 죽음에 대한 상념 박 명아 2006.10.21
2938 죽도록 즐기기, from 1Q85, 멋진 신세계를 논하다. 4 안중찬 2009.08.29
2937 주역읽기 첫 모임이 2월 8일에 있습니다. 1 심은하 2006.02.03
2936 주역읽기 모임이 이번 주 일요일(5/28)에 있습니다. 고전읽기 2006.05.24
2935 주역읽기 모임이 3월 5일 성공회대에서 있습니다. 2 심은하 2006.03.03
2934 주역과 장자, 도덕경 추천부탁드립니다 서영웅 2006.08.21
2933 주심판사도 억울함을 공표했네요... 1 남우 2007.01.17
2932 주식회사 <핸드>를 소개합니다~^^ 2 류지형 2010.08.04
2931 주성춘, 김정은 나무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3 황정일 2012.03.27
2930 주몽의 활님께 3 박명아 2011.07.03
2929 주머니 없는 옷들... 2 이한창 2004.02.18
2928 주말을 보내고 나니... 권종현 2006.09.04
2927 주례 문의드립니다. 7 송인보 2012.05.23
2926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6.10 달리기팀에게) 3 진아 2003.06.16
Board Pagination ‹ Prev 1 ...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 167 Next ›
/ 16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