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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3-4천 권의 서적을 꽂아두고, 양식은 1년쯤 버틸 수 있으며, 원포에 뽕과 마, 채소와 과실, 각종 화훼와 약초를 심되, 반듯하고 쪽 고르게 심어 무성하게 기르며 기뻐할 만할 것이다.

마루에 오르고 방에 들면 거문고 하나와 투호 하나가 놓여 있다. 붓과 벼루와 책상 및 도서의 모습이 고아하고 깨끗하여 기뻐할 만하다. 때로 손님이 찾아오면 능히 닭을 잡고 회를 쳐서 막걸리에 맛난 채소로 기쁘게 한 끼 배불리 먹고, 서로 고금의 일을 이야기 한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폐족이라 해도 또한 장차 안목 있는 사람이 부러워 사모할 것이다.…”『다산선생 지식경영법』, 541쪽.

다산의 책을 읽다가 그가 꾸었던 소박한 꿈을 만났다. 어쩌면 내가 살고 싶은 삶하고 똑 같은지 책 읽는 기쁨이란 바로 존경의 대상으로만 박제되었던 인물에서 내가 갈구하는 소망과, 삶의 방식 즉 '인간'을 발견할 때 얻는 공감 같은 것이다.  

목요일 하루 쉬고 일주일 내내 출근하여 지하철 역 매표실에서 틈틈히 책을 읽고, 또 퇴근해서 이렇게 연구실에 와 있다. 아마 밤 11시 40분에 일어나 밤공기를 가르는 자전거로 집으로 향할 것이다. 1주일에 하루인 휴일을 수업 듣는 날로 정해서 살아온 생활이 10년 이다. 당분간은 이런 생활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뭐, 나의 생활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싶은 회의 같은 것이 밀려와서 그저 푸념하는 셈 치고 늘어놓는 것일 뿐이니 여러분들이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여하간 그렇게 보내는 사이에 더불어 숲에도, 직장과 고향친구들과도 참으로 많이 멀어졌다. 어머니는 이제 중국여자나 필리핀 여자라도 어떻게 잡아보라고 하면서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아들에 대한 안스러움을 표현하시기에 이르렀다. 내가 이렇게 수도승처럼 사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인가? 주변에게 인간적인 도리를 하지 못하면서 사는 이 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싶다. 나는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이었다. 자유와 행복은 보람과 의미이며, 모든 존재들과의 책임지는 관계 속에서 풍부해지는 어떤 ‘공감능력’같은 것이다. 그렇게 채워진 나의 삶을 기반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제대로 된 앎 속에서 책임지는 자유로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삶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공부가 요즘은 내가 살고자 하던 꿈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어떤 아득함을 느끼게 한다.

내 인생계획을 몇 년 더 연장해야 할 테지만, 마흔 다섯이 되면 도시 생활을 훌훌 털고 내가 나고 살았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아내와 함께 강아지와 닭을 키우며, 채소와 과실을 가꾸는 근육노동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나이듦을 받아들이는 삶. 봄이 되면 모이를 입에 대지 않고 며칠을 굶어가며 알을 품는 암탉의 변화, 병아리가 깨어나면서 그전까지 강아지에게 도망만 다니던 암탉이 모질게 대드는 풍경 속에서 자연의 소중한 이치를 깨닫는 삶을 다시 찾고 싶다. 나는 이발하는 기술을 배우고, 나와 함께 살 사람은 음식 만드는 솜씨를 익혀 동네사람들과 나누며 사는 삶. 그런 삶을 준비하는 것이 지금의 공부인데 너무도 힘들고 외롭고, 또 다시 논문쓰는 과정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에 이르면 능력의 빈곤으로 인한 절망 같은 것을 만나고는 한다. 그럴 때면 또 나는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가장 큰 준비는 외로움과 싸울 수 있어야 하고, 세상의 모든 일들을 자기의 공부 주제에 연결시켜 한시도 끈을 놓지 않는 인내이며, 주변으로부터 인간관계를 잠시 유보해야 하는 모짊이다. 앞으로 이 팍팍한 삶을 살아갈 더불어 숲의 공부할 사람들에게 내가 축하한다는 입에 바른 소리를 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1주일 동안 함께 고생했던 직장동료, 선배들과 막걸리 한 잔을 거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내가 잠시 쓸쓸하기도 하고, 이게 뭔가 싶기도 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다산 선생님은 장경태도 천천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외로워하지 말라고 다독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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