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소개]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책 <국내서>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책 <국내서>

한겨레 2015-12-25

광복 70년, 굴곡진 어제에서 오늘을 읽다

2015년. 광복 70년이 되는 해였다. 근현대사 관련 책들이 봇물 터지듯 발간되었고 그 가운데는 역사 속에 스러져간 이들에 대한 사려 깊은 생애사 복원으로 호평받은 책들도 다수였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대학 구조조정, 약자들에 대한 혐오와 퇴행의 시대를 맞아 출판계도 절망과 희망 사이를 비틀거렸다. 다수의 대중 독자들은 불안한 사회 한가운데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위안거리를 찾으러 나섰다. 올해 대형 서점들이 내놓은 베스트셀러 분석 자료들을 종합하면,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가 올 한해 1위를 휩쓸었고 컬러링북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표절 논란으로 한국 문학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책 판매액이 아니라 내용을 보면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새 도서정가제 1년의 효과로 구간보다 신간이 주목받았으며 신진 저술가들의 활약도 빛났다. 이를 종합해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한겨레>책지성팀 기자들이 김명남 번역가, 박현주 에세이스트 겸 번역가, 정혜윤 기독교방송(CBS) 피디와 함께 국내서와 번역서 10권씩을 추려 소개한다. 국내서들 가운데는 역사 인물을 다룬 책들과 21세기 한국 사회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사회과학 분야,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포함되었다. 번역서들은 인류라는 종의 영원한 고민을 탐색하는 책들이 눈에 띄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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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앨리스의 삶을 응시해야 하는 까닭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정병준 지음/돌베개·2만원
현앨리스(1903~56?)의 조선식 이름은 현미옥.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는 한국현대사를 열정과 이상으로 관통했던 여성 혁명가의 궤적을 추적했다. 그 밑불은 “3·1운동의 거대한 에너지”였다. 그는 20년대 초 상하이에서 사회주의로 급선회하던 시대정신에 공명했다. 독립운동에 몸담았다. 뉴욕·하와이에선 노동운동과 만났다. 45년 돌아온 서울은 혁명동지 박헌영과 여운형이 탄압받는 체제였다. 꿈꾼 나라가 아니었다. 그해 말 미군정 검열 방해혐의로 추방됐다. 미국시민권을 접고 평양을 택했다. 북 정권은 그를 간첩으로 몰아 박헌영과 함께 처형했다. 그는 남에선 “북한 스파이”, 북에선 “미국 스파이”, 양립 불능한 두 정체성을 강요당했다. 그 치열했던 삶이 뿜어내는 울림.

허미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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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유학생간첩 사건’ 날조 폭로

 
조국이 버린
사람들
김효순 지음
서해문집·1만7000원
“재일동포 유학생을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하여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가 안기부 명의로 피고인을 불법 연행하여 39일간 강제구금한 상태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고, (…) 국가가 반정부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정권안보 차원에서, (…) 재일동포라는 특수성을 무시하고 오히려 공작정치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2010년 7월15일, 서울고법 형사10부 재판부가 재일동포 이종수(57) 간첩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판결문의 일부다. 유사사건 재심 무죄 판결은 지금까지 20여건. 피해사례는 서승·서준식 형제를 비롯해 100여 건에 이른다. <조국이 버린 사람들>은 무기징역·사형 선고를 남발한, 국가가 저지른 범죄날조 사건의 실체를 종합적으로 밝힌 첫 책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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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여론 조작하는 댓글부대 실체는?

 
댓글부대
장강명 지음
은행나무·1만2000원
기자 출신 작가 장강명은 올해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한국이 싫어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댓글부대> 세 장편을 잇따라 내놓았는데, <댓글부대>는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른 ‘댓글부대’를 다룬 소설이다. 진보적인 인터넷 사이트에 잠입해 악성 댓글을 달면서 여론을 조작하고 해당 사이트를 무력화시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학벌도 변변찮고 직업도 돈도 없는, ‘루저’에 해당하는 젊은이들이 골방에서 저지르는 ‘장난’으로 여론이 왜곡되고 사회의 진로가 바뀌는 상황, 어둠 속에서 이들을 조종하는 권력의 그림자 등이 충격적으로 그려졌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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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대접 받고 있나요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지음
문학과지성사·1만6000원
서평가들 가운데 이 책을 ‘올해의 국내서’ 첫손에 꼽는 이들이 여럿이었다. <사람, 장소, 환대>는 인류학자 김현경의 첫 저서로, 지난 봄 출간된 뒤 극심한 불황을 뚫고 4쇄를 찍으며 대중의 선택을 받았다. 지은이는 사람·장소·환대라는 세가지 핵심 개념으로 ‘사회’를 재정의한다. 사람이 되려면 그 사회 안으로 들어가 타인의 환대 속에 자리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평등하다며 인간의 존엄성을 부르짖으면서도 낙인과 배제가 횡행하는 현대 사회, 신분제로 회귀하는 한국 사회 분석이 참신하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어빙 고프먼과 자크 데리다 등의 이론도 논리를 탄탄히 뒷받침한다. 사회, 공동체, 국가의 문제는 물론이고 매일매일 주고받는 ‘사람 대접’이 무엇인지 돌아보도록 한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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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강의 통해 더 깊어진 신영복의 사유

 
담론
신영복 지음
돌베개·1만8000원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2006년 정년퇴임 이후 지난 겨울학기까지 학생들과 함께 한 ‘인문학 특강’을 중심으로 엮은 책. 27살에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사형수가 된 그가 ‘살아가는 이유’로 꼽은 것은 깨달음과 공부였다. 그는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형식”이라고 했다. 그 궁극적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인 중심부”가 아니라 “변방”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관계론을 중심에 두고, 나와 세계, 아픔과 기쁨, 사실과 진실,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천, 자기 개조와 연대, 변화와 창조에 대해 얘기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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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
4·16세월호 참사기록위 작가기록단 지음,
윤태호·조남준·홍승우 외 그림
창비·1만2000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한 작가기록단이 13명의 부모·형제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부모들이 자식을 잃은 후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그 떨리는 숨소리까지 기록하려 노력했다. 몸부림치면서 겪은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지.”(김순천 작가)
숨진 2학년 4반 김건우 학생 어머니 노선자씨 얘기는 그 바닥모를 상처와 트라우마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렇게 이기적인 세상에 그렇지 않은 아이로 자식을 키우는 것이 이 투쟁의 연속이라고 봐요. (…)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또 다 살기 싫고 죽고 싶고 그래요. 이 나라한테 (…) 너무 화가 나서… 심장이 부들부들 떨리는 날은 아빠가 건우한테 가자고 저를 데리고 나가요. (…) 건우야, 우리 용서하지 말자. 이 개새끼들! 우리 절대 용서하지 말자!”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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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류 포진한 ‘서북청년’ 추적한 역작

 
한국전쟁과 기독교
윤정란 지음
한울·3만4000원
광복 뒤 월남한 개신교계 서북청년(서청)들이 어떻게 남한 사회 주류로 발돋움했는지를 파헤쳤다. 서청은 해방공간 전평 노동운동 파괴, 제주4·3항쟁과 대구봉기 진압까지 ‘좌익 척결’에 앞장섰다. 당시 교수·학생들의 국립대학설립안 반대운동은 역으로 서청이 사회 주류로 성장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그 운동 “소탕”을 위해 무려 6000여 서청 회원이 경성대학과 각 대학에 편입학했다. 영락교회 중심의 서청 개신교 그룹은 한국전쟁기엔 “미국 전쟁 구호물자와 선교자금 독점”으로 세를 키웠다. 박정희 시절엔 서청 장성들이 5·16 주역으로 승승장구했다. 노태우 시절인 89년 6월 당시 국정을 주무르던 국회의장·국무총리· 비서실장이 모두 서청 출신이었다. 오늘날 대형교회 상당수가 서청 출신에 뿌리를 두고 있을 만큼, 한국 개신교의 주류다.

허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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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정시가 이른 한 고갯마루

 
어린 당나귀 곁에서
김사인 지음/창비·8000원
과작이 반드시 개별 작품의 밀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닐 게다. 그러나 등단 28년 만에 세번째가 되는 김사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에는 오래 묵히고 다듬어서 편편이 반짝이며 빛나는 작품들이 그득하다. 서정시의 위기가 운위되는 세태에 김사인의 시들은 여전히 서정의 몫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웅변한다. 인간과 사물의 특징을 따뜻하면서도 섬세하게 포착하는가 하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불교적 정신 세계가 공존하는 것이 또한 이 시집이다.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공부’ 부분)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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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질기게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
조성주 지음
후마니타스·9000원
사울 알린스키의 1971년 저작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읽기 모임에서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이 강의한 내용을 정리했다. 알린스키는,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참조한 조직이론가이자 70~80년대 한국 도시산업선교회 활동의 이론 자원을 제공한 사회운동가다. 조성주는 민주주의 밖의 시민과 노동운동 밖의 노동자를 대변해야 한다며, 첫 세대별 노조 청년유니온을 꾸려 피자 배달 30분제 폐지, 카페 아르바이트생 주휴수당 지급 운동을 펼쳐온 ‘청년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알린스키한테 그가 얻은 교훈이 많지만 특히 이런 것. ‘일상에 뿌리내리고 질기게, 작은 것이라도 이기는 싸움을 한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한번 패배는 모든 것의 종말과 같”기 때문이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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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와 온기 가득한 동네 책방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백창화·김병록 지음
남해의봄날·1만6500원
책을 읽는 일,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역시 ‘새로운 만남’에 대한 갈증일 터이고, 다음으로 시간(여유)이 아닐까. 여기에 ‘친절한 안내자’가 있다면 비단 위에 꽃을 더하는 셈일 것이다. 예전엔 동네 책방이 있었고, 주인장과 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절한 안내를 받았다. <작은 책방…>은 그런 동네 책방이 우리 주변에 아직 숨쉬고 있음을, 그곳에 가면 그런 온기를 다시 느낄 수 있음을 알려준다. 50대 부부인 지은이들은 2011년 충북 괴산의 한 시골마을에서 우여곡절 끝에 책방을 열었다. 책은 그 과정에 대한 기록인데, 동네 책방의 온기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정겹다. 전국의 동네 책방을 순례하면서 대도시에도 책향기 가득한 공간이 여럿임을 함께 보여준다.

안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