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200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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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시민행동 홈페이지 |
선생님의 서예이야기
http://www.action.or.kr/?doc=bbs/gnuboard.php&bo_table=sound_talk&page=1&wr_id=6
처음에 제가 감옥에서 제가 서도반 하게 된 것도 아주 일상적인 필요 때문에, 예를 들면 제소자 준수사항을 공장에 써 붙이는 일, 또 지금처럼 겨울이 오면 동상 예방 주의사항을 써 붙이는 일, 이런 것들이 아무래도 내가 하게 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붓글씨 쓴다는 게 금방 알려지게도 되고, 그래서 나중에 서도반이 생기면서 제가 오히려 가르치는 입장에서 제가 쓰기도 하고 그랬는데, 감옥에서의 서도, 저한테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었구요................"
지난번 짧게나마 나누었던 '축구이야기' (다시듣기) 에 이어, 이번에는 글씨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004년 11월 3일, 시민행동 하승창 사무처장이 성공회대 교정에서 인터뷰 한 내용입니다.
지난번에 축구이야기 했을 때, 워낙 좀 짧아서, 좀 더 이야기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제가 몇 말씀 더...
네 그러죠.
축구이야기 할 때도 잠깐 이야기 나왔지만 글씨 쓰시는 거 말이에요. 공차는 게 감옥 안에서 그 사람들과 어울리는 수단이 되셨다고..
네.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가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었다고 이야기했었죠.
선생님 또 유명하신 것 하나가 글씨 써 주시는 건데요, 그것도 아무래도 많은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시다 보니까... 축구가 인간관계를 잘 맺게 해 준 것처럼 글씨도 그런 역할을 해 주었는지요?
붓글씨는 제가 할아버님 사랑방에서부터 습자를 했었구요, 명심보감도 가르치고 붓글씨도 가르치고. 할아버님 친구 분들 중에 글씨 잘 쓰는 분 있으면 일부러 사랑에 청해서 저한테 가르치게 해 주시기도 했구요. 할아버님 돌아가신 게 초등학교 6학년이니까 지금 생각하면 제법 많은 세월을 할아버님 사랑방에 불려 다녔는데 그 당시는 어려서 거의 할아버님 소일이고 나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사실 없었는데...
그 후에 붓글씨에 관심을 갖게 된 게 4.19 이후 대학생활 때였어요. 그 이전까지는 그 당시 젊은 사람들의 의식세계가 그랬지만 대단히 절망적이었거든요. 우리 것에 대한 한없는 패배감 같은 거 가지고 있었구요. 해방 이후 그 빈곤, 전쟁.. 뭐 그런 물밀 듯이 밀려드는 미국적인 문화, 근대화의 박차를 가하는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전혀 못 가졌다가, 419 직후에 대학생들 사이에 그런 분위기 조금 있었어요. 예를 들면 풍물을 배운다든가 농촌, 그때는 계몽운동이라고 했었지만, 그래서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서 나는 우리 것에 대한 관심으로 붓글씨를 대학 다닐 때 좀 썼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상당한 연습을 했기 때문에 게시판에도 붓으로 써 붙이기도 하고.
아 이미 학교 때 그러셨군요.
네. 대학 때. 그리고 서울대학교 한국경제연구소의 목각현판을 제 글씨로 달기도 하구요. 그랬었거든요. 그러다가 감옥에 들어가서 참 많은 세월을 글씨 쓰게 됩니다. 특히 또 아주 좋은 선생님도 거기서 만나게 되구요. 물론 바깥에 계신 분인데 매주 지도하려 오셨어요. 아주 훌륭한 분이신데. 연세도 많으시고. 지금 대전에 계신데, 아흔 둘 이십니다. 우리나라 생존하고 계신 분 중에서는 유일하게 그분 작품이 중국 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아주 대단한 분이세요. 이분하고 인연이 아주 귀한건데, 이 선생님이 근 칠년동안 매주 하루 교도소에 오셔가지고 가르쳐주시고, 당신이 가지고 계신 여러 가지 서도의 필적들 전부 보여주시면서 임서하게 하고 지도하시고, 그런 분. 그래서 참 많은 글씨를 썼는데, 지금 아마 제가 글씨 쓰는 거 중에서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진 게 한글이죠. 한글 글씨가 여기저기 비문에도 나가고 많이 알려졌는데 사실은 전 예 해 행 초 라는 한자 서예를 먼저 했었어요.
아 그래서 제가 학교에 와서 보니까 다른 선생님들 가르치시는데 전부 한문이시더라고요
우선 한문을 다 해야 됩니다. 다 하면 한문은, 한자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뭐 여러 가지 체가 각각 다른 필법이 있는데, 한글은 아주 단조롭습니다. 필법이. 궁체 대개 아시잖아요? 궁체라든가 또는 훈민정음 판본체 그 두 가지 아주 단조로운 필법 밖에 없어서.
저희는 컴퓨터 한글 안에서 보는 정도라서..
네 그런 정돈데. 또 한글이 어려운 것은 한글은 기호잖아요. 한자는 상형이거든요. 상당한 부분이. 그 자체가 그림이긴 한데, 추상화되어 있긴 하지만 한글은 그야말로 기호, 굉장히 각박한 기혼데 이 기호에다가 조형성을 부여할려면 그런 단조로운 식으로서는 무언가 시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기존에 내가 익혔던 한문서예의 다양한 필법을 한글에 도입을 했죠. 그래서 한글을 조형적으로 좀 풍부하게 만들어내고, 한글의 미학도 궁체라는 상당히 귀족적이고 정적인 그런 미학에서부터 서민적인 민중시라든가 민요를 쓸 때도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체를 꾸준히 시도를 하고 있구요.
잘 모를 때, 주로 한글로만 쓰시니까, 한글로 쓰신거를 접하게 되는데, 서체를 보면 정통서예를 하신 분들이 보면 좀 다른 거잖습니까. 그래서 독특하게 선생님만의 필법으로 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잘 모르는데, 느낌이, 글씨다 이런 느낌보다는 그림이다 이런 느낌이 강하거든요.
원래. 네 그렇습니다. 서예도 원래 서는 여라, 같을 여라고 해서 대상을 옮겨온다 그럽니다. 기본적으로 그림이거든요. 한자의 글자가 상형문자잖아요. 그림을 형상을 그대로 그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글씨가 갖고 있는 형식적인 조형성과 그 글씨가 의미하는 개념적인 의미 그것이 통일이 되야 돼요. 예를 들어서 새 조 자를 쓰면 한자로 쓰면 새 그림같이 되어야 해요. 분위기가. 지금 우리가 보는 건 해선데, 거슬러 올라가면 전서 등으로 올라가면 그 자체가 그림이거든요. 그래서 한글에서도 비록 한글이 추상적인 기호이기는 하지만은 그 속에 그래도 서민적인 정서, 그 글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것을 형상화 해 내는 이런 노력도 사실은 해야 된다고 봐요.
제가 서예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면서 이야기하기는 좀 외람 되지만, 한글 궁체, 판본체가 하나의 체로 굳어진 건 좋은데, 거기서 답보하는 건 바람직한 건 아니라고 봐요. 특히 글의 메시지, 서예로서 쓰는 글의 메시지가 유가적인 윤리학 수준에서 답보 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가 훨씬 더 개방적이고 변화되어 있는데도 아주 낡은 그런 메시지만 담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식적이라고 보구요, 마찬가지로 형식도, 궁체나 판본체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고 봐요.
내용과 형식이 다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일제 때는, 일제 하에서는 궁체건 판본체건 어쨌든 한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시대적 의미가 있었다고 보지만, 오늘날 민중적 정서, 민주적인 정서가 광범하게 진전되고 있는 이때도 그러한 형식, 내용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요, 또 그런 답보의 원인의 상당부분이 조선조 말기까지만 하더라도 서예를 하는 사람들이 당대의 가장 선진적인 엘리트들이 했어요. 지식인들이 했거든요. 오히려 화공들보다는 시대의식에서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서예를 했었구요, 그런데 오늘날은 서예를 하는 계층들이 그런 면에서 시대의 변화라든가 이런 것들을 앞서서 성취해내는 능력이 부족한 층에서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만큼 답보하는 면도 많구요. 그런 면에서 서예에 대한 다른 생각, 새로운 시도는 상당히 과감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서예 글씨에 있어서 민중적 의미나 시각 이런 게 담길 수 있다는 거지요? 메시지나 형식 조차도.
네. 그래야 한다고 봐요. 모든 예술이 사회와 그 시대의 과제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 하거든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해본 것도 같아요. 어떤 점에서 선생님 글씨를 그냥 글씨로 받지 않고 생각했던 지점의 사람들이 있었던 게..
네. 정통이 아니다. 그렇지만은 소위 말하는 전통과 창조 간이 같이, 통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저는 한자 서예, 아까 오셔서 보셨죠? 기본적인 행서를 대단히 많이 썼었어요. 오랜 기간을 그걸 쓰고, 그 위에 한글도 궁체와 판본체를 쓰다가, 그것의 미학적 한계 때문에 고민을 늘 하던 차에, 저희 어머님이 옥중에 있는 저한테 편지를 쓰실 때는, 모필글씨로, 그러니까 무릎에 놓고 두루마리에다가 붓글씨를 쓰는 편지를 보내셨어요. 그 글씨를 어느 날 제가 주목하게 되요. 아 우리 어머니는 진짜 서민적인 글씨를 쓰는구나. 궁체와는 전혀 다른, 궁녀가 아니시니까. 그래서 아 이 속에 굉장히 서민적인 그런, 귀족적 미학과는 다른 게 있다는 걸 제가 발견하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기존에 제가 익혔던 한자 서예의 그 풍부한 필획을 한글에 넣어서, 민중적인 서체를 그런대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실제로 판본체나 궁체로는 시조, 별곡, 성경을 쓰면 잘 어울려요. 그러나 그걸 신경림 시라든가 신동엽, 박노해 시라든가 민요를 쓰면 내용과 형식에 차질이 빚어져요. 마치 된장찌개를 유리그릇에 담은 것 같은, 내용과 형식의 차질 때문에 아 이건 민중적인 어떤 한글의 새로운 서체가 필요하다는 고민을 하던 차에 어머님의 모필 글씨를 보게 된 거죠. 그래서 한글, 제가 쓰는.. 유홍준 교수가 뭐 어깨동무체다, 유배체다 뭐 그런 체가.. 그래도 뭔가 우리의 서민적 미학, 이런 것들을 좀 담아보려는 노력이..
유홍준 교수가 이야기한 것 말고는 누군가 무슨 체다 이렇게 이름 붙인 것은 없나요? 선생님 글씨에?
네. 아마 없을 겁니다.
하여튼 저같이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글씨가.. 메시지로의 글씨가 있는 거지만, 이미지로서 다가오는 지점이 참 많았던 거 같아요. 얼마전에 한번 저희에게 쓰셔서 주신 것 중에 '수선하지'라고 하는 한자를 주신 게 있었어요. 제가 참 못 봤었거든요. 선생님 글씨.. 한자로 쓰신 거는. 그때 처음 보고, 아 한자도 쓰시는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서예를 하시니까 당연히 하실 텐데 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을 정도로 익숙지 않았던 거 같은데..
네. 기간으로 보면 한자를 훨씬 많이 쓰고, 지금도 뭐 쓰고 있구요. 우리 학교 교수분들도 지금 서예를 배우고 있는데,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지만, 한글은 나중에 쓰도록. 우선 한자의 필획을 다 익혀야 되요. 물론 한글도 궁체, 판본체부터 먼저 할 거예요. 그 다음에 시도를 해야 되지 않는가..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전통에서 물려받을 것을 다 물려받은 다음에, 그 다음에 창조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옥 안에서도 그러셨지만 축구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셨던 것처럼, 글씨를 쓰시는 시간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을텐데..
네. 그렇습니다. 처음에 제가 감옥에서 제가 서도반 하게 된 것도 아주 일상적인 필요 때문에, 예를 들면 제소자 준수사항을 공장에 써 붙이는 일, 또 지금처럼 겨울이 오면 동상 예방 주의사항을 써 붙이는 일, 이런 것들이 아무래도 내가 하게 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붓글씨 쓴다는 게 금방 알려지게도 되고, 그래서 나중에 서도반이 생기면서 제가 오히려 가르치는 입장에서 제가 쓰기도 하고 그랬는데, 감옥에서의 서도, 저한테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었구요.
특히 저는 아까 한글 서예를 비롯한 그런 서예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의 시대와 사회성, 이런 것도 고민을 하지만 더 나아가서 최근에는 서도의, 서예의 관계론 이란 글이 제가 있거든요. 그 글이 사실은 조선일보 한국의 명문이라는 그런 글로 뽑혔어요. 물론 작고하신 분들이 많고 그게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는데. 그 관계론의 내용은 그렇습니다. 붓글씨를 쓸 때, 첫 획을 그었어요. 그게 잘못 그어졌다고 생각하면, 좀 각도가 생각보다 달라졌거나 또는 굵게 나왔다고 생각하면 그 획을 다시 쓰지는 못해요. 그러면 그 획의 결함을 다음 획으로 보완하게 되요. 그래도 안되면 다음획, 다음 다음획, 마찬가지로 한 글자의 실패는 그 다음 글자가 카바하게 되고, 한 줄, 한 행의 결함은 그 옆에 있는 다른 행이 그걸 카바하게 되고. 이래서 실패와 고치는 것과, 획과 획, 글자와 글자, 행과 행이 서로 도우고 도움받는 관계로 죽 연결되어 나가요. 그래서 글씨 쓸 때는 대단한 긴장이 필요해요. 왜냐면 여기 쓰면서 아래 위 양 옆 다 보게 되요. 그러고 나중에는 흑과 백의 조화도 보게 되죠. 글씨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흑과 백의 비율입니다. 적절한 조화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그리고는 제일 끝에 방서를 써요. 언제 무슨 글을 어디서 썼다, 누가. 그러고 낙관도 찍고요. 이것까지도 전체 균형에 참여해서 서로 아주 내밀한 관계, 획과 획, 글자와 글자, 행과 행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폭의 글을 진정한 서예의 경지라고 그럽니다.
그 대신, 그와는 반대로,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박또박 옆 글자한테 전혀 신세질 것도 없고 도움 줄 것도 없는 이런 글자는 사실은 서도의 본령은 아닙니다. 그 글자들끼리 질서는 잘 잡혀있다고 보죠. 시민적 질서는 잘 잡혀있지만, 이게 서로 정말 도우고 도움 받는 농밀한 어떤 관계성이 없는, 서예의 격조가 아닌걸로 보죠. 그래서 서도를 통해서 우리 시대가 잃고 있는 인간관계의 황폐화, 이런 것들을 간접적으로라도 문제제기하는 면이 없지 않다, 저는 그런 의미까지 담고 싶어하죠.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까 그래서 그림으로 느껴지는 게 있구나, 오히려 그런 느낌이 드네요.
원래 명필, 좋은 글이란 것은 아주 어수룩하지만은 획과 획이 서로 좀 떨어져있더라도 서로 도우고 있는 이런 글들이 서예의 본령이고 또 우리 시대가 자기만 고집하는 개인주의적인 사회적 문화, 또는 자기 혼자만 군림하려는 패권적 문화 이런 것들이 사실은 서도의 관계론에 의해서 얼마든지 그 것의 부정적인 면이 조명될 수 있는 면도 없지 않다고 보죠.
선생님 글씨 쓰시는게, 사실 갖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고 그런데요, 그렇게들 갖고 싶어하게 되는 배경이랄까요, 그런 것도 오늘 말씀 들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있을 거 같아요. 글씨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사회적 의미를 담을 수 있구요..
좀 새로운 거. 진부하지 않은 면도 있구요. 또 지난번 유홍준 교수가 강력하게 개인전을 권하면서, 안할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끝까지 권하는 이유가, 우리나라의 명필은, 유배를 오래 간 사람이 많대요. 허허. 그래서 해야 된다고 뭐 농담이겠지만 그랬는데. 사실은 글씨는 다른 예술 장르하고 구별되는 면이, 다른 예술 작품은 그 작가의 인격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도는 훌륭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면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완용, 대단히 글씨 잘 쓰거든요. 그러나 훨씬 글씨를 못 쓰는 백범 선생의 작품을 원하지 아무도 이완용 글씨를 원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서도라는 예술 장르가 사실은 서양에는 없는 거거든요. 펜맨쉽이나 단어로는 있는데 이런 서도의 예술 장르는 없거든요. 동양에만 있는 건데, 이게 동양적인 특징의 하나, 그 작품과 인간이 통일적으로 평가되는 그런 분야, 이것은 예술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어떤 인간성의 고양과 무관하지 않은 그런 면을 이 서예가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도 글씨만 잘 쓴다고, 자기 글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선호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야 되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요. 우선. 하하.
선생님 말씀하시는 서도의 관계론은 종이 위에 놓여있는 획이나 글자, 또는 행 이런 것뿐만 아니라 쓰는 사람의 관계까지를 봐야 한다는..
네 맞습니다. 작품과 사람의 관계, 그래서 아주 중첩적인 관계성이 있습니다. 조형적인 관계성 뿐만 아니라, 글씨가 그 시대와 사회성도 담아야 되는 시대적인 관련성도 봐야 하구요, 또 그 서도인, 사람과 작품과의 관계도 보아야 하구요.
단순하게 글씨를 아주 반듯하게 잘 쓰는 것만으로 서도를 보아서는 안되는 거군요.
네. 그래서 서도의 예술적 의미가 의외로 굉장히 동양적이기도 하면서 깊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말씀 다 듣고 나니까 선생님 글씨가, 쓰시는 마음이 어떤 마음으로 쓰시는 거고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건지, 선생님 글씨를 이해하는 데에 한층 더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더 잘 될려면 직접 배우기도 하고 써 봐야 하지요.
저도 맨날 와서 보면 야.. 이거 어떻게 하나.. 공만 차러 와가지고... 하하. 오늘 말씀 아주 잘 들었습니다. 붓글씨에 대한 이해 한층 높아졌을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은 뭐 된 거 같지요?
네. 이십분 넘었습니다.
하하. 오늘 많이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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