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2011-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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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오마이뉴스_하승창 |
"진보의 연대, 명망가 중심 뛰어넘어야"
[씽크카페컨퍼런스@대화가 전하는 이야기 2]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11.04.27 13:55l최종 업데이트 2011.04.27 13:55l 하승창(ourchang) 오마이뉴스
더 체인지(The Change)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씽크카페컨퍼런스@대화는 대규모 이벤트로서의 컨퍼런스가 아니라 매년 중요한 사회적 의제를 담아내고, 컨퍼런스를 계기로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컨퍼런스를 지향합니다. 이와 같은 컨퍼런스의 취지를 살리고 또 참여하시는 분들에게도 사전에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하였습니다.
먼저 컨퍼런스에서 기조발표를 해주시는 분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기조발표를 해주시는 분들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15가지 주제 테이블의 호스트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과의 인터뷰도 기획 중입니다. 꼭 컨퍼런스의 발표자나 호스트가 아니더라도 컨퍼런스의 주제에 대해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와 상상력을 제공해주실 만한 분들과의 인터뷰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씽크카페컨퍼런스@대화 기조발표자 가운데 첫 번째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를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지난 4월 13일에 진행됐습니다.
국가경영의 기본적인 방향을 재구성해야
- 사실 요즘 다들 너무 어렵게 살잖아요?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상당히 넓은 것 같은데, 변화가 있더라도 '어떤' 변화여야 한다는 방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의 일본 지진과 쓰나미 충격은 엄청난 사변입니다. 그런데 활성단층이 지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도 활성단층이 있다고 봐요.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엄청난 문제들은 사회적 활성단층의 조짐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거든요.
그래서 이런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거냐?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면 좋지만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으로 봐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가 없는 실정이지요. 그래서 물론 단기적으로는 부문별 정책대응 같은 것들을 치열하게 제기해내고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겠지만, 크게는 국가경영의 기본적인 방향 자체를 다시 한번 재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첫째는 과연 우리나라의 정치적 주체성, 자주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는 경제적 자립구조가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거듭되는 경제위기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이러한 사태는 경제의 자립적 구조가 취약한 데서 오는 거라고 봐요. 대기업 위주의 수출경제, 그쪽의 성장에 국민경제적 파급효과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국민일반의 고용과 복지에 기여하지 못하는 구조이지요.
셋째로는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 바로 전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과 자부심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망적이지요. 문화적 자존심이 최후의 보루이기도 합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재구성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봐요. 정치적 주체성, 경제적 자립성, 문화적인 자부심 이런 것들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근본 문제들이 하나같이 분단과 통일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와 같은 대결분단 상태에서는 남과 북 모두의 정치적 주체성이 관철될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세계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립적 경제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최후의, 최선의 기회가 바로 교류와 협력을 통한 남과 북의 경제협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정착 호혜협력을 통한 돌파가 가능한데도, 그게 막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민족적인 자부심과 자존은 지금과 같은 분단대결 상태에서는 참으로 요원합니다. 바깥으로 나가서 상대방을 비방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우리 민족문화적 자존심은 세울 곳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사회의 부문별 정책적 대응을 치열하게 제기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경영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데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 선생님께선 그런 것들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서 '연대'의 중요성을 늘 강조해오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큰 변화 중 하나가 소셜미디어이지 않습니까? 이런 소셜미디어 같은 기제의 발전이 연대가 이루어지기 쉽게 하는 사회적 조건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소셜미디어의 급속한 발전은 매우 긍적적입니다. 트워터라든가 페이스북과 같은 여러 가지 매체들이 급속하게 확대되면서 종전과는 다른 형식의 사회적 연대 가능성은 굉장히 높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하방연대'라는 개념이나, '숲으로 가는 길', '여럿이 함께'라는 개념으로 연대문제를 오래 전부터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국민적인 개혁 주체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러나 개혁세력의 역량은 대단히 취약하고 개혁에 저항하는 보수적인 세력은 막강한 역사와 지반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역량 대치상태에서, 다시 말해서 열악한 객관적 조건과 취약한 주체역량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연대가 유일한 대응전략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 연대방식이 바로 하방연대라는 것이지요.
하방연대란 노동부문처럼 비교적 앞서 있고 힘 있는 부문운동 역량이 상대적으로 뒤처진 부문운동과 연대하는 방식입니다. 열악한 지위에 있는 다른 사회운동 부문과 연대해나가는 것, 그리고 덜 진보적이고 덜 개혁적인 부문운동과 연대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낮은 곳과 연대하는 것이 하방연대입니다. 마치 강물처럼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것이지요. 바다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최근의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그런 점에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N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소셜미디어가 갖고 있는 엄청난 넓이와 속도는 연대운동의 결정적인 기반이라고 봐요.
다만 한두 가지 지적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이 연대문제를 과거의 공간 공동체, 혈연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과거지향적인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고 봐요. 젊은 사람들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이루어내는 네트워크 공동체는 앞으로 굉장히 유력한 새로운 공동체문화의 기반이 되리라고 봐요.
아주 자유로롭고 '쿨'하면서도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끼리도 순식간에 같이 결집할 수 있는 엄청난 넓이, 속도는 과거에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힘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대한 관념도 지금까지의 농본적이고 복고적인 의식에서부터 급속하게 변화하리라고 봐요. 그런 점에서 연대의 객관적인 환경은 훨씬 앞서 가고 있는데 비하여 우리의 관념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만 소셜미디어 중심의 새로운 연대방식에 우려되는 것은 민주화세대와 N세대 간의 연대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 산업화를 이끌어왔고 경제위기를 몸소 경험한 세대와 그 이후의 새 세대 사이의 골이 깊어진다는 거죠.
그래서 세대 간 연대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세대 단독의 역량결집으로는 부족하거든요. 지금까지 그래도 우리 민족사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온 많은 세대들과의 연대까지도 포괄한다면, 소셜미디어의 급속한 발전과 가능성만을 주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죠. 그래서 이전의 민주화세대, 개혁세대들과 N세대 들의 연대방식에 대해서도 상당한 고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새로운 변화, 새로운 창조성은 변방에서
- 연대를 한다 하더라도 국가 전체의 방향을 재구성해나가는 변화의 주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전히 그런 세력은 잘 안 보인다는 게 지금의 평가이기도 한 것 같은데.
"사람은 전망이 없을 때 정말 좌절하게 되거든요. 개혁의 새로운 주체에 대한 전망성이 지극히 불투명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고민인 게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두 가지 고민해야 될 것은 과거 방식의 명망가 중심, 또는 기존의 집단 중심의 주체 건설은 일단 넘어서야 된다고 봐요. 너무 관념적인 얘긴지 모르지만 새로운 변화, 새로운 창조성은 늘 변방에서 나타납니다.
중심부는 언제나 기득권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영역입니다. 중심부에서는 창조적인 변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인류역사의 전개과정을 보더라도 문명의 중심부는 늘 변방으로, 변방으로 옮아왔어요. 왜 그러냐면 중심부의 저항이 완고할 뿐 아니라 변방은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새로운 것이 태동할 수 있는 창조의 지반이거든요.
하지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연대 연합에 관한 논의는 주로 기존의 집단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바깥에서 이루어져야 된다고 봐요. 바깥이라는 것은 반드시 공간적·물리적인 외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이해관계집단이 자기 영역들을 과감하게 개방하고 제거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봐요.
알랭 바디우는 탈근대 철학자 가운데 주체문제를 고민하는 사상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의 탈근대 담론의 핵심은 주체해체입니다. 그러나 바디우는 주체해체가 가져오는 무정부성, 무장해제에 대한 위험성을 간파하고 있지요. 주체는 기존의 주체를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원래 주체는 후사건적 실천과정에서 형성된다고 주장해요. 후사건. 기존의 진리체계의 바깥에서 사건으로 돌출하고 그 사건에 충실한 실천가들의 꾸준한 노력이 사후적으로 주체를 만들어낸다는 거죠. 지동설은 진리가 아니었잖아요? 지동설도 진리체계 바깥에서 사건으로 돌출했습니다.
1871년 파리코뮌만 하더라도 이전까지는 시민이나 노동자들의 정치역량이라는 것은 어떠한 정치사상가도 상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 이후의 부단한 실천과정에서 소위 말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정치역량이 엄연한 주체로 등장하게 되거든요. 쇤베르크의 12음계 음악도 7음계 외부에서 사건으로 돌출하고 있습니다. 비단 정치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외부와 바깥, 변방과 마이너리티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총선을 앞둔 지금 진보통합 또는 민주개혁 연대연합이 광범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한마디로 그것은 바깥에서 해야 된다고 봐요. 중심을 승계한다거나, 상대적으로 조금 더 기득권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정치역량을 중심으로 결집하려는 움직임은 결국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주체 건설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봐요."
- 선생님이 보시기에 그런 '사건 돌출'이라고 여겨질 만한 현상들이 있나요?
"사회의 어떤 역량들이, 어떤 트랙을 거쳐서 나타날 것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부문의 양적인 변화가 축적되고 그러한 변화가 기존의 틀로서는 더 이상 담을 수 없는 단계에서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지금 상황은 양적인 변화가 집적되고 새로운 변화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그런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도정치권은 물론이고 기존의 사회운동 역량들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도는 대단히 낮죠. 신뢰집단이 없다는 이런 상황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주체의 등장에 대한 긍정적 조건이라고 봐야 합니다. 어떤 계기와 함께 사건으로 돌출하고 그 사건에 대한 충실한 실천집단이 새로운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개연성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있다고 봐요.
다만 그러한 주체는 광장에서 가시적으로 집결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보다는 젊은 세대들이 대거 참여하는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가깝게는 촛불집회가 여러 가지 상상력을 우리들에게 제시했다고 봐요.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주체가 세대를 넘어서서 면면한 개혁역량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시대에 갇혀 있는 문맥을 깨트려야
- 새로운 대안적 주체의 형성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이신데, 우리가 거기에 맞추어 어떤 변화를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 인식의 틀이라든가 우리의 정서를 바꾸어야 되요. 사람이란 게 자기경험에 갇히기 쉽지요. 우리가 우리 자주 듣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수사는 한마디로 자기경험지상주의죠. 좁은 틀에 갇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의 개인적인 경험, 또 우리 시대가 갇혀 있는 문맥, 이걸 깨트리는 게 필요합니다.
그게 아주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문맥에 갇혀 있는 것을 일단 승인해야 되요. 예를 들어서 메자로스 같은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에는 오직 하나의 계급밖에 없다. 노동자들도 부자가 못 된 계급이고. 똑같은 욕망을 가진 동일한 계급밖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비인간적이고 부조리한 자본주의 구조가 지속성을 갖는 것'이라고 얘기하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갇혀 있는 욕망구조, 이것 자체를 깨트려야 돼요.
최근의 에너지문제라든가, 구제역파동, 원전사고 등을 겪으면서 우리의 삶 자체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우리가 갇혀 있는 문맥을 깨트리는 '탈문맥'이 먼저이지만, 그것을 개인의 윤리적인 결단이나 소위 '도덕재무장운동' 같은 수준의 운동으로 할 수 있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런 운동은 역사적으로 항상 실패했던 개량주의 운동에 지나지 않지요.
우리들이 갇혀 있는 완고한 욕망구조를 깨트리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가 중하위권에 매달려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국제질서로부터 '기어오프' 하는 용단과 병행되어야 한다고 봐요. 거기에 매달려 있는 한 우리는 작은 톱니바퀴가 큰 톱니바퀴에 물려 있듯이 굉장한 속도로 돌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 사활이 걸린 치열한 경쟁이 부패를 양산하고 절망과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기어오프. 물론 필요하지만 세계경제 질서에 물려 있는 기어를 당장 오프할 수는 없죠. 왜냐하면 경제가 올스톱 할 거니까요. GDP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율이 80%를 넘는 경제구조입니다. 그래서 그걸 중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다단계 기어로 접속하게 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우리가 경제적 자립의 토대를 만들어나가는 노력들을 지금부터 해야 된다고 보죠.
그런 노력들과 함께 우리들이 갇혀 있는 문맥이나 개인적인 욕망에 대한 반성이 동반되고, 욕망이나 경쟁에 치열하게 나서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는 사회적 안전망 같은 게 만들어지면 긴장도를 상당한 정도 낮출 수 있다고 보죠."
- 제가 선생님을 뵈면 여러 사람을 만나지 않고 늘 소박하게 만나신다는 느낌 받았었거든요. 근데 2009년에는 대규모 강연을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전국 단위로 일종의 순회강연을 한 셈이죠."
- 사실 그 전에는 그런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신 일이 별로 없는데, 갑자기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건지요?
"제가 참 많은 단체들로부터 특강 요청들을 받는데, 일일이 개별 단위의 요청에 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시민단체 활동하는 분들이 의논을 해서 지역별로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합동으로 초청하는 형식으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광역 지역별로 큰 규모의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참 좋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요, 또 지금까지 같은 지역에서도 각자 활동했던 시민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이 서로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었다고 봐요. 그래서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금년에도 아마 우리 '더 숲 트리오' 교수단하고 시민운동단체들하고 합해서 그런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 오늘 말씀 나눈 것 중에서 우리가 상상들을 해나갈 때 지녀야 할 열쇠말, 키워드가 될 만한 것을 마지막으로 정리해주시죠.
"'강물처럼'이 어떨까요. 시내가 강을 만나면 이미 시내가 아니라 강물이 되지요. 그것이 곧 변화 그 자체잖아요. 그리고 '강물은 다투지 않는다'고 노자가 이야기합니다. 장벽을 만나면 돌아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다 채운 다음, 차곡차곡 채운 다음 뒷물을 기다려서 나아가고, 절대로 기회주의나 모험주의적인 작풍을 보이는 적이 없고 아주 과학적인 실천으로 진행하고 결국은 가장 큰 바다를 이루어냅니다.
그게 우리가 얘기하는 하방연대의 전형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를 바꾸어내는 역량을 결집시키는 키워드로, '강물처럼'이라는 말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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