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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7-01-13
미디어 한겨레신문

[유홍준 칼럼] 최순우 탄신 100주년, 신영복 서거 1주년


한겨레신문 2017.01.13


1주기 추모전시회에는 신영복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에 쓴 ‘더불어 숲’이라는 작품이 출품되었다. 그 ‘더불어 숲’이라 쓴 네 글자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이는 어쩌면 신영복 선생이 세상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절명구였는지도 모른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연말연시를 ‘송박영신’하느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이 어지러운 국정 혼란이 언제 끝날 것인지 점점 갑갑해진다. 사필귀정이라는 믿음이 있고, 꺼지지 않는 촛불이 있기에 헌법재판소와 특검이 올바른 결론을 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이젠 일상으로 돌아가고도 싶지만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이 마치 양파처럼 새로운 실상들이 나오고 또 나오는 바람에 여기에 매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바람에 장사도 안되고 나라 경제는 어려워지고 외교가 엉망으로 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높은데 내가 몸담고 있는 문화계는 직격탄을 맞아 괴멸 상태에 가깝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어 사람들은 신문 방송만 보고 책도 안 보고 영화도 안 본단다. 그럴진대 미술 전시회에 발길이 닿겠는가.


그래도 나는 지금 열리고 있는 ‘최순우 선생 탄신 100주년전’과 ‘신영복 선생 서거 1주기전’만은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이 글을 쓴다. 이 두 전시회는 우리가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었을 때 열렸다면 더 좋았겠지만 촛불의 정신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촛불시위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아닌가. 신영복 선생은 인간다운 삶을 이야기하신 분이고 최순우 선생은 한국의 미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신 분이다.


신영복 선생의 1주기 추모전이 지난 11일 동산방화랑에서 개막됐다(19일까지). 30년 전,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세상에 나왔을 때 우리들은 벅찬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20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청춘과 중년의 나날들을 파묻고 생의 창조적 열정을 삭여야 했지만 그 철저한 차단에서 오는 아픔과 고독을 깊은 달관으로 승화시켜 진주처럼 빛나는 단상들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었던 것이다.


정양모 신부님은 이 책이 차라리 우리 시대의 축복이라고 했고, 소설가 이호철 선생은 파스칼의 <팡세>, 심지어는 공자의 <논어>에까지 비기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명상록이라고 단언하였다.


출소 이후 신영복 선생은 성공회대에서 교편을 잡고 ‘인문 공부’를 주창하시면서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담론>, <처음처럼> 등 많은 저술을 통해 우리에게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을 옳게 사는 자세에 대해 온화하고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셨다. 아울러 감옥 시절에 장인적 수련과 연찬을 쌓은 글씨는 가히 한글 서예의 신경지를 여는 것으로 고요한 사색과 해맑은 서정을 일으켜 세상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신영복 선생의 글씨체를 나는 ‘어깨동무체’라고 불렀다. ‘여럿이 함께’ ‘길벗 삼천리’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필획의 어울림이 마치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연대감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영복 선생은 평소 연대감과 ‘관계’라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였는데 글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껏 붓을 가누어 조신해 그은 획이 그만 비뚤어 버릴 때 저는 우선 그 부근의 다른 획의 위치나 모양을 바꾸어서 그 실패를 구하려 합니다.”


이번 1주기 추모전시회에는 신영복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에 쓴 ‘더불어 숲’이라는 작품이 출품되었다. 이 마지막 작품은 대작인데다 획에 흔들림이 없어 전혀 절필 같지 않고 오히려 이제까지 당신이 살아온 삶과 사상과 예술이 이 한 작품에 담긴 것 같은 웅혼함이 있다. 그 ‘더불어 숲’이라 쓴 네 글자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이는 어쩌면 신영복 선생이 세상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절명구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는 혜곡 최순우 선생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이라는 흐뭇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2월5일까지). 최순우(1916~84) 선생은 평생을 박물관에서 살다 간 우리 시대의 영원한 박물관장이다. 최순우 선생 또한 우리 시대의 축복이었다. 도자기, 회화, 건축, 불상, 민예품 등 구체적인 유물을 통하여 한국미의 특질, 나아가서는 한국 미학의 방향을 제시한 희대의 대안목으로 한국미술 5천년전, 조선시대 회화전, 한국민예미술전 등 수많은 특별전을 통하여 한국 미술사의 대맥을 잡아준 미술사가이다.


최순우 선생은 미술품을 일반인과 똑같이 감상하는 자세에서 출발하여 거기에서 발견한 미적 가치를 하나씩 논증해 갔다. 뛰어난 미문가로 ‘백자 달항아리’ ‘백자 무릎연적’ 같은 명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데 사실은 그 명칭 자체가 최순우 선생이 찾아내 붙인 이름이고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에게 미를 보는 눈을 길러주고 있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준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나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의상대사이다.”


작년 4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최순우 선생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1층부터 3층까지 아홉 개 전시실에 선생이 아끼고 좋아했던 작품을 글과 함께 소개한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이라는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그중 2층 목칠공예실의 ‘나전칠기 빗접’을 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수다스러운 듯싶어도, 혹은 단순하고 화려한 듯 보여도 소박한 동심의 즐거움을 표현한 점이 한국 민속공예의 장식무늬가 지닌 하나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별 야심이 없이 다루어진 무늬들, 특히 조선시대 나전칠기의 좋은 도안들을 보고 있으면 느긋하고도 희떱고, 희떠우면서도 익살스러움이 한 가닥의 즐거움을 자아내 준다.”


나는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최순우 선생이 보라는 대로 보고, 느끼라고 한 대로 느끼며 한국 미술의 특질을 익혀 왔다. 최순우 선생은 특히 우리 공예를 사랑하셨다. 그래서 그 후학들이 탄신 백주년을 맞이하여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이라는 전시회를 연 것이다. 이 전시회에는 최순우 선생이 사랑했음직한 각종 항아리를 비롯하여 사랑방용품, 규방용품, 주방용품, 제례용품을 망라하면서 주전자, 술병, 옹기, 등잔, 촛대, 상자, 함 등 조선시대 공예품 656점이 대대적으로 출품되었다.


최순우 선생은 일찍이 관요가 아니라 민간 가마에서 만든 민요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민요의 그릇을 무지의 소치, 또는 빈곤의 소치로 돌리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욕심 없고 자연스런 표현이, 잔재주 안 부리는 손길이 그대로 무지 속에 묻혀야만 될 것인가… 나는 믿고 싶다. 도공들이 그릇을 빚어내는 즐거움이 바로 그 아름다움을 보는 마음이라고, 조선의 아름다움은 이미 500년을 살아왔다. 그리고 해묵은 조선의 그릇들은 오늘도 아예 늙을 줄을 모르고 있다.”


최순우 선생은 이처럼 밝은 눈과 뜨거운 가슴으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문화보국의 애국자이셨다. 이 전시회를 지원한 가나문화재단 김형국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최순우 선생의 눈을 거치면 한쪽 구석에 박혀 있던 고물이 고미술품으로 소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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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제목 게재일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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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인터뷰 고(故) 신영복 교수 1988년 가석방 출옥 직후 인터뷰 1988-09-18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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