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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06-09-29
미디어 경향신문 '창간60주년 특집 대담' _이대근대담
[경향 60돌] 신영복 교수 “지배구조 고착으로 과도한 대립·갈등 표출”
입력: 2006년 09월 28일 17:39:45
 
〈인터뷰/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

질풍 노도와 같은 한국사회 60년을 온 몸으로 살아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깊은 사색과 성찰은 점점 한국인의 가슴에 파고들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구로구 항동 성공회대 교정에서 신영복 석좌교수와 경향신문 창간 60주년 특집 대담을 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삶의 철학의 진액을 경향신문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대담을 마치고 사진 촬영을 위해 연구실에서 교정으로 나올 때 “교정이 조용하고 정겹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다른 대학과 달리 학생들끼리 서로 다 알고 지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해온 ‘숲’(공동체)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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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얼마 전에 콘서트를 겸한 정년퇴임식이 세간에 화제가 됐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곳 저곳에서 선생님을 모셔서 말씀을 들으려 하는데 선생님이 좀처럼 나서지 않으신다고 하더군요. 가끔은 사회적 발언도 해주셔야지요.

신영복‥내가 말한다고 해서 내 말 들을 사람 아무도 없어요.(웃음)

이대근‥해방공간에서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있을 때 경향신문도 창간됐습니다. 분단, 독재, 쿠데타, 민주화과정은 창간, 폐간, 복간 등 굴곡 많은 경향신문의 역사를 닮았습니다. 경향신문은 그 하나 하나를 지켜보고 기록하며 오늘에 이르렀지요. 격동의 60년, 어떻게 보십니까.

신영복‥경향신문과 격동의 우리 현대사가 60년 같은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에 감회가 깊습니다. 흔히 60년이라 하면 한 개인의 일생에서도 회갑이라 다시 뭔가 시작하는 이포크(신기원)를 의미하죠. 지금 이 시점은 우리가 숨가쁘게 겪어왔던 60년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깊은 성찰과 정리 이후에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사회 팽배한 경제주의적 사고 지금의 위기 불러”-

이대근‥말씀하신 대로 60년은 하나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으로는 회갑이지만 역사의 관점에서 한국사회는 아직 청춘입니다. 아직도 대립과 갈등, 방황과 번민의 시기를 지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좋게 말하면 한국적인 특질이자 장점으로 볼 수도 있겠죠.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구호가 바로 그런 발상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나이 60이지만 여전히 사춘기, 청춘기인 한국사회를 어떻게 보십니까.

신영복‥현재도 과도한 대립과 갈등 구조가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언뜻 보면 그 사회 젊음의 상징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선진 유럽 사회처럼 사회적 이슈가 굉장히 가라앉아 있거나, 동남아 일부 국가처럼 사회 변화 동력을 어디서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침체된 분위기와도 다르죠. 그렇게 한국 사회가 젊고 역동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60년간의 역동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깊이있는 변화를 이루지 못했어요. 그리고 대한민국이 48년 건국됐다고 신생국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국은 굉장히 오랜 갈등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권력구조 핵심 세력은 그 이전 일제시대에도 상층부를 구성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말기에도 상층부였죠. 그래서 한국은 48년에 건국됐다고 볼 수 없습니다. 과열된 대립, 갈등도 단순한 사회 역동성으로 보기만은 어렵고요.

이대근‥역사적 단절이 있었던 것 같지만, 지배 세력은 영속적이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신영복‥지배구조에 근본적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대립, 갈등이 과도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지 않은가 여겨집니다. 60∼70년대 운동적 사고에서는 극적인 변화에 대한 전망을 갖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게 사실은 굉장이 어려운 겁니다. 이제 사회변화는 부단한 개편과정의 연속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러 역사를 통해 보면 사회의 극적 변화란 것은 굉장히 관념적인 얘기예요. 실제로는 꾸준한 개편과정의 연속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대근‥근대화 담론이 무성합니다. 한국의 근대화가 어느 시점에서 시작됐는지, 단선적인 발전개념으로 근대화를 봐야 하는지, 한국은 아직 근대화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거나, 탈근대로 넘어왔다거나 백가쟁명입니다. 전통과 근대, 탈근대가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한국적 현상으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압축적 성장에서 모순이 하나 하나 해결되기보다 중첩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한국의 근대화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신영복‥제가 최근 주관해서 발간한 책에서도 근대성에 대한 성찰을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기획은 굉장히 오랜 역사를 가집니다. 조선조 후기 개화파부터 일제 식민지 시절도 근대화 기간이었다고 하는 분도 많고, 근대성을 진보 개념의 정형으로 놓고 추구하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그 기간이 서구의 근대화보다는 압축적이기 때문에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복잡한 개념이 동원됩니다. 어쨌든 근대화를 우리가 충분히 수용하고 우리 것으로 뿌리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구인들이 근대화에서 자부심을 갖는 부분은 봉건제의 억압구조를 청산했다는 점, 개인 인권을 존중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근대화에는 상당한 합리성이 있어요. 이런 점들은 근대화를 통해서 수용하고 정착시켜야 할 가치라고 생각해요.

다른 한편에서는 근대성에 대한 성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근대화란 건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자본주의 사회가 된다는 뜻입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대내적으로는 독점화, 대외적으로는 패권주의 과정으로 나타났는데 근대사회, 자본주의 사회의 존재론적인 패러다임이 지속 가능한가 하는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이대근‥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전개됐을 때 울산에서 권영목이라는 젊은 노동자가 부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최근 뉴라이트 운동에 동참, 신노동운동연합을 결성해 노사화합의 새로운 노동운동을 전개한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변화가 현실 사회주의권을 방문하고 나서 시작됐다고 하더군요. 감옥에서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통해 배운 것과 다른 현실을 목격하고 생각을 바꾸었다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많은 인사들이 그랬습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란 대사건이 정말 인식의 대전환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그런 성격이었다고 보시나요.

신영복:저도 그런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변혁 운동 측면에서 현실 사회주의 붕괴가 갖는 충격은 굉장히 큰 걸로 이해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 반성해야 할 것은 혁명과 변혁 운동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질서, 모델을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이 대표적이죠. 굉장히 창조적인 상상력이 있어도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보수진영은 이미 있던 사회구조를 토대로 안정적인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변혁 지향적인 사람들의 이론과 실천에서 문제되는 것은 이상주의적 사고입니다. 어떤 이상주의적 모델을 상정하고 이 모델을 우리 현실 속에 실현해내려는 기본적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상적 모델이 사라져버리면 실천의 현장감각마저 없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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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선생님이 감옥에 계셨던 20년은 한국사회가 어두웠던 시간이었습니다. 20년간 바깥 사회가 더 감옥같았고, 감옥에 계신 선생님은 자유롭게 사색을 하셨습니다. 감옥과 비감옥이 전도된 시대였다거나 할까요. ‘갇힌 자의 자유’에 관해 말씀 좀 해주시지요.

-“보수는 하던 주장 또 해도 변혁은 시행착오 필연적”-

신영복‥어떤 단편 소설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감옥 접견 창구에서 접견하던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고 안에 있던 재소자는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지요. 우리 사회 억압의 상황을 잘 나타냈죠. 저는 그(감옥) 속에 있으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가 어디 가질 못하고 한 곳에 못박혀 있었지만 감옥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우리 사회 여러 분야의 분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어둡고 힘들게 사는 사람 속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유력한 관점을 얻었지요. 그래서 전 그 시절을 저의 대학시절이라고 명명합니다. 교도소도 우리 사회 모순구조와 동떨어진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입니다.

이대근‥검열 때문에 조그만 메모, 편지글을 쓰셨지요. 인터넷 시대와 비교하면 고전적인 글쓰기였습니다. 당시는 명실상부한 활자의 전성시대였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는 활자문명의 위기, 신문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책, 신문 등 활자매체를 읽지 않고 영상시대의 빠른 변화에 적응하면서 전통적인 미디어로부터 자꾸 이탈해가고 있습니다. 한때 우리는 세계에서 신문을 많이 읽는 사회였는데 지금은 가장 빠르게 신문 안 읽는 사회가 됐습니다.

신영복‥저야말로 그런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느끼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감옥의 사고방식이란 건 극히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뭔가 풀어내야 해요. 감옥 속 사고는 한마디로 굉장히 이론적인 사고입니다. 정보는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 논리적인 사고로 풀어나가야 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것에 길들여져 있다가 출소 이후 엄청난 정보 홍수라는 상반된 환경에 놓여 혼란스러웠습니다. 결론은 정보 접근이 쉽고 빠른 환경 속에서는 오히려 감옥 속에서 가졌던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전 어떤 생각을 하다 멈춰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으로 건너왔지’하고 되짚는 놀이를 좋아했어요. 소위 생각의 징검다리를 거꾸로 건너가는 놀이였죠. 감옥에서는 논리적인 생각 과정을 밟을 수 있었지요. 그런데 바깥에 나와서는 그게 안됩니다. 두 단계쯤 역추적하다가 잊어버립니다. 논리적인 사고를 안하고 이미지 사고를 해서 그렇습니다. 텔레비전, 영화의 사고는 논리가 아니라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사고는 한 개인, 한 사회의 사상적 구조를 와해시킬 수 있습니다. 복잡하거나 어려운 사고를 기피하는 현상, 문자·개념적 사고에 서툰 환경은 결코 좋은 게 아닙디다.

-“감옥서 누린 사색, 정보 홍수에 뺏겨”-

이대근‥현실과 가상현실의 구분이 어려운 인터넷 세상입니다. 인터넷은 선생님께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신영복‥처음 출소했을 때 잘 아는 후배가 386 컴퓨터를 설치해줬습니다. ‘보석글’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어색했죠. 팬 돌아가는 소리가 거슬리기도 하고요.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 글도 빠른 속도로 쓰고 나중에 재편집하는 방식이 원고지 한 칸 한 칸 메워가던 환경과 굉장히 달라 어색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가진 넓이와 속도는 굉장한 변화라서, 사회변화 운동과 결합하면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문제는 세상이 점차 사이버 공간, 판타지 세계, 소위 허위의식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우리 자본주의의 사회 정서라는 것이 상품미학을 기반으로 하잖아요. 우리 삶은 땅을 딛고 탄탄하게 서 있어야 하는데, 땅에서 발을 떼고 허위의식 위에 놓이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쌍방소통에 의해 수용자 지위를 벗어나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 강력한 속도와 넓이는 긍정적인 사회변혁 무기이기도 하지요. .

이대근‥최근 인문학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인문학은 과잉이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지금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얘기죠. 인문학이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세대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신영복‥저는 인문학 위기를 그동안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과도한 경제주의적인 사고, 가치를 향해서 질주해왔던 과정 속에서 나타난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전 오히려 인문학 내부의 문제라기보다는 현대 자본주의가 금융 자본주의라는 지속성이 의문시되는 과정으로 전환되면서 사활적으로 진행하는 경쟁의 국제질서가 우리 삶의 근본 가치를 거의 간과한 데서 근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점에서 우리에겐 인문학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제 경쟁력을 키우는 게 왜 필요합니까. 궁극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인문학자들의 학제적 노력이 부족했던 점, 고전적인 카테고리에 안주한 점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 위기의 또 다른 원인으로 신자유주의 현대자본주의 질서를 들 수 있습니다.

이대근‥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개혁의 이름으로 급속히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뒤로 물러서 있던 자본이 발언을 하기 시작하고, 전사회에는 시장 숭배가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신영복‥서구 근대화 과정을 보면 처음엔 주로 절대왕정이 시장주의를 뒷받침했습니다. 시장논리가 과거의 봉건적인 규제 논리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유주의가 발전했죠. 이 점에서 시장주의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원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 권력이 오히려 국가 권력을 견제하고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개입하는 식의, 국가 권력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영향을 주는 시기가 되면 시장원리는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또 시장은 근본적으로 민주, 평등의 공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등가(等價)로는 교환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일임하기보다는 생산자와 강자가 자기 이해를 관철하는 불공정성을 규제해야 합니다.

이대근‥우리 사회에 시장주의가 확산되면서 경쟁력이 미덕인 사회가 됐습니다. 경쟁을 강요하면서 강한 자는 선이요, 약한 자는 악이 되어 버렸습니다.

신영복‥경쟁은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쟁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국가의 경제적인 재생산 자체가 지속되지 않을 정도로 경쟁은 절실합니다. 그런데 경쟁이라는 드라이하고 삭막한 논리가 우리 삶에 모두 들어오는 건 문제입니다. 삶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행복이란 것도 사실 소유나 소비에서 오기보다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애정과 신뢰, 사람과의 만남에서 오는 것이 진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까지 시장논리, 경쟁논리에 매몰되는 건 심각한 일입니다.

-“일제보다 긴 美 60년 자생 운동역량 훼손”-

이대근‥한국 현대사 60년을 돌아볼 때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미국입니다. ‘미국 없는 한국’은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미국은 어떤 존재입니까.

신영복‥미국의 영향력은 사회 각 분야에서 완성된 단계입니다. 일본 식민지는 36년인데,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력 행사 기간은 60년입니다. 현재 국내 정치 권력 구도도 미군정 때 재편된 구조를 토대로 하고 있다고 봅니다. 경제구조도 그 당시 수출주도형 구조가 지금까지 지속돼 왔고요. 미국의 영향력이 완성 단계라고 보는 이유는 사회의 엘리트 재생산 구조가 거의 미국 의존형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서 미국 가서 학습하고 다시 돌아와 우리 사회의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오르는 코스를 거칩니다. 요즘은 조기 유학은 물론 아예 거기 가서 애기를 낳기도 하죠. 우리 사회가 미국적 사고에 너무 깊이 포섭돼 있어요.

이대근‥좌우 대결, 세대 격차, 지역 갈등 등 한국사회의 갈등 구조는 복잡합니다. 그 때문에 충분히 타협가능한 이견을 놓고도 죽자 사자 격렬한 대립을 합니다. 한국 사회의 변화는 항상 이렇게 폭력적이고 갈등적이어야 하는가요. 자연스럽고 지속적인 변화, 조용한 혁명을 할 수는 없는 건가요.

신영복‥어느 사회에나 대립과 갈등은 존재합니다만, 표출되는 방식이 감정적이고 극단적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이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저는 이 모든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신뢰하는 신뢰 집단이 없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전 학교에 있지만 대학, 제도 정치권, 언론, 사법, 자본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 대한 일반인들의 신뢰가 낮습니다. 신뢰 집단이 없는 상태에서는 자기와 대립한 사람들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야 자기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위, 바위, 보에서 가위와 바위밖에 없으면 바위를 차지하려고 극단적인 대결을 벌입니다. 보가 중간에 있어야죠. 신뢰집단을 구성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대근‥선생님께선 숲을 많이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그걸 공동체로 해석합니다. 숲에는 작은 나무, 큰 나무가 다 있고, 미운 나무, 고운 나무도 있습니다. 그 하나 하나로는 부족하지만 전체는 아름답지요. 그래서 숲은 다양성, 차이, 관용이 있어야 하나의 아름다운 공동체가 된다는 점을 가르친다고 봅니다. 선생님에게 숲이란 단어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신영복‥개인이 반성해야 할 부분은 머리입니다. 기존 지배 이데올로기를 학습하고 포섭해서 수용하는 형식으로 자기 의식이 결정됩니다. 그 의식을 성찰해서 자기 주체 의식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쿨 헤드’(차가운 머리)를 ‘웜 하트’(따뜻한 가슴)로, 즉 인간적으로 완성해내는 게 필요합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롱기스트 저니(longest journey·장거리 여행)’입니다.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개인은 나무입니다. 전 삶의 현장으로서의 숲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숲은 다양성입니다. 화폐적 가치라는 단일한 가치 중심으로 모든 것을 질적으로 동질화하는 근대성에 대한 성찰의 화두로 숲을 내세웠습니다.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 전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도 공존하는 질서가 진보한 문명의 형태입니다.

또 저의 숲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론’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람시는 완고한 유럽 보수주의 벽 앞에서 아픔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진지를 만들어서 버티자는 얘기에는 도처에 숲을 만들어서 힘도 기르고 그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위로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실천적 의미도 있습니다. 숲은 근대성의 패권적 논리를 성찰하는 문명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인간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키워내는 진지의 운동론적 개념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대근‥‘숲’ 운동을 사색과 학문적 활동에 가두지 말고 사회 운동으로 바꿀 생각은 없으십니까.

신영복‥내가 직접 운동 하기보단 그러한 철학과 방법론에 공감하는 분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경향신문도 아름다운 숲이 됐으면 합니다.

이대근‥최근 선생님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신영복‥최근 1∼2년 사이 성찰성을 화두로 잡고 있습니다. 붓글씨로 돌이킬 성(省)을 쓰기도 합니다. 반성이 한 개인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이라면 성찰이란 자기가 빠져있는 우물 자체를 조감하는 것입니다. 거시적인 반성개념이죠. 해방적 개념으로서의 성찰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육도 결국 개인의 성찰성을 높여주는 것이 궁극 목표 아닐까 합니다. 한 사회의 문화도 성찰성 있는 문화가 돼야 하고, 경쟁이나 질주보다는 성찰하는 문화가 있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리 백승찬·사진 김정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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