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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07-10-04
미디어 한겨레 매거진 ESC_탁현민대담
“가벼움에 내용이 없으면 지루함이 됩니다”
[매거진 Esc] 월간기획
딴따라 출신 탁현민씨와 그의 10년지기 스승 신영복 교수와 젊은 대화
 
한겨레  
 
» 탁현민씨와 그의 10년지기 스승 신영복 교수와 젊은 대화

 

 

 

“신영복 선생님과 대담 한번 하면 어떨까요?”

9월 중순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표현·대화에 관한 칼럼 ‘탁현민의 말 달리자’ 연재를 시작한 탁현민씨의 전화였다. 대화에 관한 칼럼을 시작했으니 소통과 관계, 대화에 늘 관심이 많은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와 색다른 대화를 나눠보겠다는 것이 탁현민씨의 제안이었다. 신 교수와 친분이 두터운 그는 “지금까지 신영복 선생님이 했던 진지한 대화보다 좀더 경쾌하고 수다스러운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며 “어느 때보다도 대화와 말이 유효하지만 동시에 대화와 소통이 그만큼 어려운 시대인 요즘, 신 선생님의 관계론·연대론을 비롯해 성찰과 인식으로 소통의 길을 여는 방법을 묻고 싶다”고 했다. 대답은 물론 “좋습니다!” 그렇게 이번 대담이 시작됐다.

9월28일 오후, 홍대 앞 한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에서 신영복 교수와 탁현민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앞에 놓고 커피전문점 야외 테라스에 앉아 근황을 물어보며 대화를 시작했다. 테이블마다 앉아서 신나게 얘기하는 젊은 사람들과 홍대 앞 거리를 바쁘게 오가면서 옆에 걸어가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 가운데 자리한 신 교수는 “매년 강의 때문에 1학년 학생들을 만난다”며 “사회에 관한 문제의식 면에서는 조금씩 옅어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3∼4월 신입생들이 캠퍼스를 가득 메우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간단한 얘기를 나누고 홍대 앞 놀이터 쪽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홍대 앞에 자주 오지는 않지만 이곳의 활기가 좋다는 신 교수와 홍대 앞에 거의 살다시피 하는 탁현민씨의 본격적인 대화는 여기서 아이스티와 사과당근주스를 앞에 놓고 시작됐다.

 


아침에 소크라테스를 읽으셨다구요?

탁현민 : 선생님, 제일 최근에 하신 대담은 어떤 분과 하신 건가요?

신영복 : 한홍구 선생과 했을 거예요. 그 전에는 정운영 논설위원과 했고. 그러다 보니 대담 성격이 조금 무거웠지요. 그런데 오늘은 사진부터 시작해서 홍대 앞에서의 대담이라 한결 가벼운 마음입니다.

탁 : 그러니까 정운영, 한홍구, 탁현민이라는 말씀이시죠.(웃음) 대담 상대자로서 너무 뿌듯하고 행복해요. 선생님이 보시는 이 홍대 앞 공간은 어떤 느낌이세요?

신 : 지금 시간대가 홍대 앞이 살아나는 시간대가 아니어서 진면목을 만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이 많아서 내 일상적인 공간과는 확실히 달라요.

탁 : 사실 홍대 앞을 대담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언제부턴가 20∼30대 세대의 문화공간이라는 게 압구정과 청담동을 중심으로 한 소비주의적인 공간이 만들어졌고, 거기에 대한 대안 같은 의미로 홍대 앞이라는 공간이 포지셔닝되었기 때문입니다. 압구정, 청담이 소비가 최고의 미덕인 곳이라면 이곳에서는 많이 달라진긴 했지만 아직은 자생적인 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편이죠. 소비와 창조 이 극단의 젊은이들의 문화나 세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 : 내게는 강남과 청담동, 그리고 홍대 앞 문화의 큰 차이가 잘 느껴지지는 않아요. 대신 우리 사회의 급속한 변화는 분명히 느끼죠. 이런 공간에서는 젊은이들의 생각이나 정서 같은 것들을 읽을 수 있으니까. 홍대 앞은 가끔은 와서 참여해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홍대 앞의 변화 그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해서 거부하는 태도는 잘못됐다고 생각하죠.

탁 : 그동안 선생님께서는 관계나 소통, 대화의 필요성과 회복을 강의나 책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말씀해 오셨어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관계, 소통, 대화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계세요?

신 : 오늘날 대화는 굉장히 많아졌어요. 속도도 빨라졌고 댓글이나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 넓이도 확장됐죠. 우리는 굉장히 많은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문화에 살고 있어요. 그런데 ‘과연 진정한 대화인가’에 대한 회의를 갖게 돼요. 오늘 아침에 소크라테스를 읽었어요. 소크라테스가 흔히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하잖아요. 너 자신을 알라는 게 대화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었어요. 광범위한 대화, 급속한 대화 속에 있지만 대화와 소통이 부재하다는 막연한 느낌은 자기와의 대화가 없고 다른 사람을 향한 대화만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대화의 기제가 있음에도 인간적인 대화가 없는 것은 아닌지 아침에 소크라테스를 읽으면서 생각했어요.

 

젊은이들의 개방성과 저항성을 보는 눈

 

탁 : 아침에 소크라테스라니, 역시 선생님 대단하세요. 저는 아침에 못 일어났는데.(웃음) 대화 자체가 굉장히 많아졌다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그런데 요즘 보면 두 종류의 책이 유난히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연애 쪽 기술을 다루는 책들, 또 말의 기술이나 대화법을 다루는 책들이요. 그런데 연애의 기술을 다룬 책들이 쏟아지는 이유가 본질적으로 사랑을 잃고 사는 시대의 방증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말이나 대화의 기술에 관한 책들이 쏟아지는 이유도 결국 소통의 답답함이나 대화가 부족한 시대의 요구 때문은 아닐까요?

신 : 개그나 가벼운 대화 같은 것들이 뭔가 보이지 않는 억압으로부터의 탈출과 관련이 있다고 봐요. 지금 사회의 억압·지배구조는 과거의 물리적인 지배구조와는 다르죠. 개인이 억압구조를 느끼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해요. 가벼운 대화가 대화라기보다는 억압구조에서 탈출하려는 개인의 굉장히, 뭐랄까 자기에게 다가오는 무게에 대한 저항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시장화죠. 시장은 단 하나의 가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잖아요. 화폐가치와 그에 따른 이해관계죠. 이해관계를 중심에 놓은 대화는 충돌일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서 오는 피곤함에서 탈출하려는 게 가벼운 기교라든지 표면에 천착하는 대화죠. 진정성이나 내면의 사색을 담는 대화와 이어지기는 어려워지는 거예요.

탁 : 저도 젊지만 저보다 젊은 세대를 보면 표현과 행동이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을 받아요.

» 신영복 교수
선택해서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거나 일찍 꿈을 이루려고 사회에 뛰어드는 친구들도 많아졌고 그런 행동과 결단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자본의 억압이 심화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거기에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지 않나요?

신 : 예전에는 자본뿐 아니라 훨씬 더 큰 전근대적인 억압구조가 많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탈출을 시도하지조차 않았어요. 지금처럼 어떤 형태의 억압에 대해서든 벗어나려는 것은 대단한 개방성과 저항성으로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개방성과 저항성은 하나의 긍정적인 현상이라기보다 ‘안티’에 가까워요. 이러한 개방성과 저항성을 어떻게 제3의 가치로 만들어나갈 것인가가 과제이죠. 과거 전근대적인 시대의 젊은이들보다 지금 젊은이들이 탈출에 있어서 진일보했지만 그것만으로 의미 있는 것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예요. 거기에 정체성도 담아내야 하지 않을까요?

 

“언어를 과거 방식에 묶어놓고 습득하라는 요구는 무리라고 생각해요. 외국어나 영어도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게 흐름이라고 봐요. 옛말을 고집하는 건 또 하나의 교조주의죠. 줄임말 같은 디지털 언어도 지금은 실체와 표현의 괴리감 때문에 경악하는지 모르겠지만, 젊은이들끼리 하나의 약속이니까 지금은 생소하지만 곧 익숙해질 것으로 보지요.”_신영복

 

<무한도전>, 그 관념적인 해방의 느낌

 

신영복 교수와 탁현민씨의 대화는 10년을 알고 지내온 사제지간답게 느리지만 정확한 박자에 맞춰 흘러갔다. 빈티지와 앤티크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의자와 신영복 교수는 제법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카페 안에서 잔잔히 울려퍼지는 음악도 이 둘의 대화를 방해하지 못했다. 신 교수의 아이스티가 삼분의 일 정도, 탁현민씨의 사과당근주스가 반 정도 비었고 대화는 조금씩 더 넓어졌다.

 

탁 : 요즘 젊은 세대가 대화와 소통에 영향을 받는 게 미디어예요. 혹시 선생님도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신 : 티브이에서 하는 것 말이죠? 지나가다가 몇번 멈춰서 본 적이 있어요.

탁 : 보면 어떠세요?

신 : 그 시간만큼은 부담이 없어져요.(웃음) 어디로부터인가 놓여나는 느낌, 많은 시청자들이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억압구조로부터의 관념적인 해방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해요.

탁 : 최근 그런 예능 프로그램의 대화를 보면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폄하하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이뤄지는 경향이 있어요. 상당히 가학적이죠.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면서 재미를 만들어내는 구조인데 혹시 우리가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도 그런 경향으로 몰려가는 것은 아닐까요?

신 : 다른 사람을 폄하하고 곤욕을 치르게 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은 사실 오래된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도소에서 재소자가 교도관한테서 지독하게 얻어터지고 돌아오면 그걸 맞이하는 똑같은 처지의 재소자들도 참담한 심정을 갖게 돼요. 거기서 어떻게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느냐 하면, 다른 재소자 친구가 교도관의 역할을 하고 그 상황을 재현해 다시 한번 그 상황에 놓는 거죠.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하는 티브이를 보면서도 그 순간에는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그러한 티브이 프로그램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억압구조가 있다는 것의 방증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사회적 권위에 대한 저항성은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도 같아요.

탁 : 이전 시대가 텍스트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이미지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머리 모양이나 패션과 같이 구태여 입을 벌려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의 외모나 분위기만으로도 일정 부분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말이나 대화의 총량이 줄어드는 건 아닐까요?

 

소비하는 기쁨과 깨닫는 기쁨 사이

 

신 : 자기와의 대화나 진정성이 담겨 있는 대화는 없어진 반면에 오히려 언어 이외의 소통 기제는 다양해졌어요. 언어는 개념적 사고예요. 사물을 단순하게 바라보고 단순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폭력적 기제라고도 볼 수 있죠. 거기에 비하면 패션이나 이미지, 디자인이 굉장히 풍부한 소통 기제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앞으로 이런 기제가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겠죠. 언어적 소통의 소멸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거대담론이 소멸한다는 것이에요. 사회의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고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거대담론이 소멸해나간다는 거죠. 감각적이고 이미지 중심의 대화나 소통은 사회의 기본 구조를 바꿔가려는 거대담론이 해체된 이후의 포로들의 언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근본 담론은 없어지고 파편적인 대화만 있으면 사회의 기본 구조가 바뀔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드는 거죠. 그래도 개방적이고 다양한 의사소통 구조의 발전과 공유는 그 속에 담기는 콘텐츠나 진정성의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유력한 기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탁 : 그래서 그런지 소비적이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어떤 소진감 같은 것이 느껴져요. 개인과 개인 사이의 대화에서도 누적된 피로감이 있는 것 같구요. 대화와 소통이 현저하게 막힌 이유는 20대 80의 사회도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대화와 소통은 어떤 의미에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비슷한 수준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요? 얼추 비슷한 생각과 환경을 가지고 있어야 공감대가 형성되는데 요즘은 수준의 양극화가 뚜렷하다보니 심지어 그 양 극단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까지도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저는 농담 삼아 ‘연봉 1억 이상인 사람은 연봉 1천만원 미만인 사람과 법이라도 만들어서 결혼시켜야 한다’고도 하죠.(웃음)

신 : 20대 80이 문제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전인격화 한다는 것이죠. 전인격적으로 20이고, 전인격적으로 80으로 전락되는 거죠. 명품화는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하나의 추세에요. 20의 명품화와 80의 대중화는 상품미학을 수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죠. 인간의 아름다움은 상품의 아름다움과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미적 정서를 획일화하죠. 그러한 상품미학 구조를 부숴버리기가 쉽지 않죠. 그런 점에서 단편적인 대화를 한번쯤 성찰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 상품성을 깨닫자는 것이지요. 인간적 정체성이 담겨 있는 대화를 회복해야 합니다.

탁 : 칼럼 연재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대화에 대한 필요성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어요.

신 : 저는 그런 필요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소모적인 대화에 익숙해져 있고 중요한 주제를 기피하는 대화를 주로 하는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많은 걸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도 기쁘긴 하지만 뭔가를 깨닫는 것이 진짜 기뻐요.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인성을 고양하는 거예요. 좋은 사람이 된다는 얘기죠.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인간적인 이해를 하고, 그래서 좋은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가치입니다. 대화가 바로 그 부분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죠. 나 자신을 깨닫게 하고 인간관계를 배려하게 하고 우리가 발 딛는 구조나 역사를 성찰하게 하는 그런 진정성을 담아야 합니다. 소모적인 대화는 아픈 사람에게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진통제예요. 진통제는 조금 더 견디게 할 뿐이지 처방은 아니죠.

 

“선생님한테 얼리어답터 기질이 있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르죠. 선생님은 그림도 포토샵으로 그리시죠. 인터넷 커뮤니티도 1997∼1998년 그때 일찍부터 만들어서 활동하셨구요. 90년대 초중반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 중에 기억나는 게 ‘인터넷이 많은 정보를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쓰레기장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였죠.”_탁현민

 

 


 

» 탁현민씨
홍대 앞이라는 ‘자기 공간’으로 신 교수를 초대해 대담의 키를 먼저 잡았던 탁현민씨는 대담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주도권 아닌 주도권을 신 교수에게 빼앗기는 듯했다. 강함과 부드러움, 균형감각을 동시에 지닌 신 교수 앞에 내공의 무릎을 꿇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자 탁현민씨는 곧 비장의 카드로 자신의 전공 분야인 젊은 소재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뭐, 사제지간에 주도권이 뭐가 중요한가? ‘오고 가는 대화 속에 싹트는 사제의 정’이라는 말이 있다고, 대담이 중반을 넘기면서 신 교수의 말을 경청하던 탁현민씨의 눈빛은 점점 더 또렷해졌고 신 교수 역시 몸을 테이블로 바짝 당겼다.

 

탁 : 사람들이 선생님에 대해 잘 모르는 점 중 하나는 선생님이 ‘얼리어답터의 기질이 있으시다’라는 거지요. 선생님은 그림도 포토샵으로 그리시죠. 인터넷 커뮤니티도 1997∼1998년 그때 일찍부터 만들어서 활동하셨구요. 90년대 초중반 인터넷에는 무한한 정보가 있다는 개념이 막 생길 그 당시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 중에 ‘인터넷이 많은 정보를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쓰레기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기억나요.

신 : 포토샵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부터인데, 그때 해외 기행하면서 화구를 가져갈 수 없어서 컴퓨터로 원고도 쓰고 그림도 그렸어요. 감옥에 있을 때 컴퓨터에 관한 기본적인 책은 2권 정도 읽고 나왔어요. 채팅은 안 해도 이메일은 해요. 인터넷은 검색 위주로 하고요. 정보는 얻거나 쌓아둔다고 하잖아요. 대화에서 담아야 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식, 지혜는 얻는 게 아니에요. 지혜는 자기가 깨닫는 거예요. 얻는 것, 쌓아두는 것은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있죠. 정보, 지식, 지혜로 구분한다면 지금의 대화는 정보 수준의 대화예요. 지혜나 지식은 인간관계 속에서 얻든지, 스스로 깨닫는 것이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환경은 인간관계 속에서 지혜나 지식을 얻을 만한 환경이 아니죠. 도시에서 공간공동체나 혈연공동체가 없어진 지는 오래지요. 도시에서 인간적인 대화나 공통의 주제를 찾아낸다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죠. 자본의 말단 구조에 달려 있는 칩같이 반짝반짝 하는 게 우리 대화의 실상이라고 봐야지요.

탁 : <상상플러스-세대공감 올드앤뉴>라는 프로그램 보신 적 있으세요?

신 : 봤어요. 본 적 있는데 20대뿐 아니라 나도 모르는 말들이 있던데요.(웃음)

탁 : 그 프로그램에서는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대한민국 누구나 자유롭게 대화하는 그날까지’ 사실 소통을 가로막거나 대화를 방해하는 것 중에 문장이나 말 자체도 있는 것 같아요. 말의 변화, 언어의 변화가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가 된다고 보세요?

 

절제된 언어가 더 많은 소통을 가능케 한다

 

신 : 언어는 약속된 기호이자 소통의 수단이에요. 그걸 과거 삶의 방식에 묶어놓고 그 언어를 그대로 습득하라는 요구는 무리라고 생각해요. 삶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변화해가는 거고, 외국어나 영어도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것이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옛말을 고집하는 것은 또 하나의 교조주의죠. 줄임말 같은 디지털 언어도 지금은 실체와 표현의 괴리감 때문에 경악하는지 모르겠지만, 젊은이들끼리 하나의 약속이니까 지금은 생소하지만 곧 익숙해질 것으로 보지요.

탁 : 요즘의 경향은 마치 누가 더 가벼워질 수 있느냐를 놓고 경쟁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누가 얼마나 더 직관적·감각적이 되느냐가 옵션으로 따라 붙습니다. 이런 것이 대화와 소통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신 : 가벼워진다는 것은 관객화되어 간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 주체성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이 한 사람의 관객으로 만족하고 체념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거죠. 얼마든지 더 가벼워질 수 있을 거예요. 관객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소비자의 위치에 놓여져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가벼움은 사람들을 분해시켜요. 힘든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벼움을 원하고 그쪽으로 도피하고 싶은 거지만, 가벼움 속에 오래 있으면 자기 자신도 분해되지 않을까요? 역경에 대처하고 그것을 통하여 인간적인 내용을 담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가벼움조차도 지겨운 게 되어버릴 거예요.

탁 : 제 칼럼 제목이 ‘말 달리자’인 것처럼 결국 말은 잘 달려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잘 달리는 데 기술적인 것들, 현란한 기교는 별로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혜와 지식을 교류하면서 대화하는 방법이 있다면 뭘까요?

신 : 저는 글을 별로 많이 쓰지 않는 사람이에요. 쓰더라도 힘들게 쓰는 사람이죠. 아까 언어는 사물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폭력이라고 했었죠. 현란한 언어보다는 절제된 언어가 훨씬 더 많은 소통을 가능케 한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많은 소통 기제가 있음에도 대화와 소통의 부재를 우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글도 절제하고 침묵하고 여백을 많이 남겨놓는 것이 독자와의 대화를 더 잘할 수 있도록 해주죠.

 

경악할 만한 청중과 만났던 사연

 

탁 : 그러고 보니 사람들마다 자기만의 속도가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느리게 가고, 어떤 사람은 빠르게 가고. 각자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절제와 침묵 여백인 것 같은데 선생님의 속도는(잠시 고민하다가) 선생님은 상대방에 맞춰주시는 편인 것 같아요.

신 : 그런가?(웃음) 자기 속도대로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말과 생각의 속도를 맞추지 않으면 생각했던 것을 담지 못하고 빈 차로 가는 수도 있어요. 강연 때는 물론 다르게 해요. 그때마다 다르지만 가장 편한 방식을 선택하죠. 한번은 경악할 만한 청중을 만난 적이 있어요. 무슨 대표 자격으로 갔었는데 청중들이 모두 의자에 등을 제끼고 앉아 어떻게 하나 보자는 식으로 거리를 두더라구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굉장히 어눌하고 곧 실수할 것 같이, 아는 단어도 생각이 안 나는 것처럼 주저했더니 그 사람들이 나 대신 그 단어를 생각해주더라구요.(웃음) 청중들이 나를 걱정해주게 한 거죠. 그렇게 간격을 없애려고 고생했던 경험도 있어요.

탁 : 저는 강의할 때 단 1분이라도 비어 있는 시간을 못 견디겠어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카리스마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나봐요. 3시간 강의면 6시간 동안 떠들 준비를 해가요.

신 : 그러면 안 돼요. 서로 고민하는 시간이 있고 잠시 멈추는 경우도 있어야 해요. 또 학생들과 한동안 서로 차질을 빚다가 어렵게 어렵게 어느 순간 공감에 도달할 때 그때 느끼는 환희가 있지요. 소통은 그런 희열로 느끼는 거니까요. 나는 강의를 너무 많이 준비하면 실패하더라구요. 흐름을 놓쳐요. 준비한 거 다 얘기하려고 돌아가게 되니까요. 일단 공감이 형성되면 그 리듬으로 가야 됩니다. 때로는 비워놓고 가도 된다고 생각해요. 또 자기 말에 취해서 얘기하는 것도 경계해야 해요.

탁 : ‘신영복 선생님이 말하는 대화의 기법’ 정도로 정리가 되는데요?(웃음)

신 : 얘기가 기법으로 가는 것 같은데, 나는 감옥에 오래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적나라하게 만났잖아요. 결론은 뭐냐면 ‘그 사람의 생각은 자기 삶의 결론으로 갖고 있구나’ 하는 거에요. 삶의 결론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얘기를 하면 그 사람은 나하고는 전혀 다른 삶의 궤적 속에 내 얘기를 가져가서 앉힌다구요. 맷돌을 예로 들면, 학생들은 맷돌의 연상세계가 청진동 빈대떡집밖에 없잖아요. 내 맷돌은 외갓집 장독대 위 맷돌이거든. 내가 맷돌에서 시작해서 나팔꽃으로 갔다가 돌담장으로 옮아가면 학생들은 청진동에서 어디로 가느냐구요. 사람들이 자기 경험 속에 내 얘기를 앉힐 수 있는 시간을 주거나, 자기의 경험을 포기하고 내 그림 속으로 들어오게 하거나 해야죠.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대화가 가능한 거예요.

 

따뜻하고 진정이 담긴 대화를 해보자

 

탁 : 아까 대화는 서로 비슷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소통이 원활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오늘 선생님과 저처럼 소위 ‘급’도 안 되는 사람과의 대화가 선생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신 : 홍대 앞에 우리 사회의 일정한 변화의 모습이 있고, 탁 선생이 갖고 있는, 연륜은 짧지만 다이나믹한 커리어가 있잖아요. 다이나믹한 삶이 어떤 충돌을 경험했고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를 많이 배운 느낌이 들어요. 내가 했던 얘기에 대해 나 자신이 평가한다면 조금 고루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전체적으로는 새로운 젊은 사람들의 정서와 생각의 변화에 대해 유익한 대화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탁 : 대화와 소통이 막혀 답답해하는 친구들이 논리적이거나 정형화된 문장이나 정리된 말로 그 얘기를 끄집어내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하고 싶었던 얘기도 결국 제가 오늘 한 얘기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신 : 그러리라고 봐요. 그런 얘기를 할 공간과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따뜻하고 인간적인 대화에 대한 갈증은 있을 테니까요.

탁 : 그럼요 초등학생부터 할머니까지 우리는 모두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친구를 원하는 게 사실이잖아요.

신 : 따뜻하고 진정성이 담겨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탁현민과 이구동성으로) 오늘 대화를 마치겠습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1941년 경남 밀양 출생, 1963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20일 복역. 주요 저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 <나무야 나무야> <강의> 등.

 

*탁현민 공연연출가, 한양대 문화콘텐츠전공 겸임교수. 1973년 서울 출생, 1999년 성공회대 졸업, 공연기획·연출, 글쓰기, 코러스, 백댄서, 과일 장사, 비디오아트 등을 순서 없이 해왔으며 여전히 하고 있음. 주요 저작 <남자 마음 설명서> <수다> <무대 밖 무대 이야기> <뚜껑 열리는 라이브콘서트 만들기> 등.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 탁현민씨와 그의 10년지기 스승 신영복 교수와 젊은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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