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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1998-07-05
미디어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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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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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시대를 맞아서 여러가지 새로운 상황들에 부딪히고 있습니다만은 더러 저는 가장 우려되는 것이 결국 이웃에 대한 인간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결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가진 분을 오늘 정범구의 세상읽기 두번째 시간에 모셨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나무야 나무야>으로 이미 많은 분들에게 친숙해진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인데요 최근에 <더불어 숲>이라고 하는 책을 펴냈습니다. 오늘 신영복 교수 모셔서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정범구 안녕하세요. 신영복 교수님. 참 단아하세요. 한 20년간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셨던 분이라고는 잘 안 믿어지는 데요.

신영복 감옥이 더 편했다라고들 친구들이 그래요. 얼굴보니까 고생 안한 것 같다고.

정범구 20년을 원래 무기수로 보내셨다가 20년만에 가석방되셨죠? 그게 88년이니까... 20년을 감옥에서 보내시고 10년을 지금 감옥 밖에서 보내고 계신 건데요. 감옥 안의 20년과 감옥 밖에서의 10년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신영복 제가 나올 때가 잘 아시겠지만 88올림픽의 그 열기속에서 출소를 하고 지금 98년 IMF한파 한 가운데서 이제 10년을 맞게 됐죠. 출소 10년이라는 게 굉장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범구 감옥 밖에서의 10년이라는 게 이제 감옥에서 보낸 20년 세월의 반인데요. 감옥 밖의 세상에는 충분히 익숙해 지셨습니까?

신영복 저는 빨리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생각가지고 있습니다. 근데 그 차이를 흔히는 많이 느끼기도 해요. 그 감옥이라는 건 한 마디로 얘기하면 정보가 거의 제로인 공간이죠. 그래서 그 쪽에서의 생각은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작은 사물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많은 걸 상상해내는 그런 사고를 많이 한 것 같구요. 반대로 밖에는 정보의 홍수, 너무나 많은 정보를 어떻게 할 건가. 오히려 아주 혼란이 되는 정반대의 상황을 겪게 되요. 지금 현재의 생각은 저는 이 방송을 브로드케스팅이라고 그러는데 저는 이 정보의 홍수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내로우캐스팅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아주 좁게 , 그 내로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기 가치관, 자기 삶의 기본원리에 대한 철저한 어떤 고집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생각을 해요.

정범구 아마 많은 젊은세대들에게는 그 사건은 잊었을 겁니다. 통혁당 사건... 그 사건이 어떤 성격의 사건이었는지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십시요.

신영복 저도 사건의 전모를 잘 모르는 사건이기도 하지만은 단 제 경우를 예로 든다면 지금 학생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기도 해요. 우리세대를 소위 학생써클운동의 오리지널세대라고 그래요. 제가 대학 2학년때가 4.19, 3학년때가 5.16 그런 세대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의 우리나라 상황은 그 당시의 젊은 학생으로서의 낭만과 이상을 가진 그런 청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여러가지 분노라던가 열정 이런 것들의 연장선상에서 일단 그 당시에 아주 경직된 정치구조와 함께 그것이 감옥으로 연결되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을 해요.

정범구 그 때 통혁당사건으로 구속되셨을 때가 육군사관학교 교관을 하셨구요. 현역군인의 신분이셨기 때문에 군사재판으로 넘어가셨죠. 군사재판도 물론 민간재판과 형식적으로 다르지만 그 이후에 육군교도소생활을 하셨지요. 그 감옥에서의 느낌이나 생각, 감옥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틈틈히 글로 쓰셔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엮어 내셨는데요. 그 처음 시작이 이미 육군교도소에 계실때이지요?

신영복 네. 그래서 그 때는 제가 사형을 받았을 때는 사형집행까지야 되랴는 생각이 있었지만은 실제로는 사형집행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그래서 사실은 집필도구를 소지할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하루에 두장씩 나누어 주는 휴지, 그 휴지에다가 꼼꼼하게 기억들을 적기 시작했어요. 그게 지금 다행히 남아 있고 친구들이 영인본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만은...

정범구 선생님이 가장 최근에 쓰신 책 얘기부터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제목 자체가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더불어 숲>. 왜 이런 제목을 택하셨습니까?

신영복 그 아래도 한 번 읽어 주세요.

정범구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여기서 나무에게 나무가 말했다의 나무는 사람인가요?

신영복 그렇죠.  기본적으로 사람이고 수많은 나무들은 어떤 헤게모니를 잡고 끌고가기 보다는 그야말고 자연에 뿌리를 내리고 옆의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그런 일반적인 민초에 가까운 나무들, 이런 나무들을 제가 상정을 하구요.

정범구 책 제목은 그렇게 시작을 합니다만 내용을 보면 바깥, 한 23개나라를 다녀오셨죠. 외국에서, 밖에서 바라본 우리의 모습, 현장에서 느끼는 현장의 역사이죠. 그런데 첫 시작을 한 스페인의 항구에서 시작 하셨어요. 콜럼버스가 떠났던 항구라는데. 여기를 첫번째 여행지로 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신영복 콜럼버스가 출항한 항구가 스페인의 우엘바라는 조그만 항구였는데 거긴 지금도 스페인이 당시 신대륙으로 향했던 산타마리아호의 모형이 거기 정박되어 있습니다. 제가 거기 올라가 보기도 했는데.. 그곳을 택한 이유는 20세기, 우리가 20세기를 거의 마감하고 새로운 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이런 시점이긴 합니다만은 저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그 시기에 세계 질서가 지금까지 물론 여러가지 단계는 있겠습니다만은 그대로 일관되게 지속되지 않았는가. 저는 20세기 기본적인 형태가 거기서부터 비롯됐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거기서 시작했죠.

정범구 유럽 세계 지배에서 출발했다는 말씀이신가요? 책에서 있는 내용으로보면 유럽인들은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했지만 그건 유럽인들의 오만이고...

신영복 그래서 저도 도착이라는 말로 고쳤습니다.

정범구 그런데 유럽주도의 이런 세계지배, 다른 말로 하면 이게 약육강식의 논리란 말이요. 그런데 선생은 약육강식의 논리를 거부하시는...

신영복 그래서 더불어 숲이 되자. 그러한 강한 사람들의 도전에 대해서 선량하나 좀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할 건가하는 지혜, 그런 고뇌를 같이 나누자는 뜻도 <더불어 숲>이라는 책에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범구 선생님 말씀을 빌면 경쟁보다는 연대, 경쟁보다는 협동, 이런 지향이신데, 그런데 우리 사회 현실을 보면 말이죠. 자연계뿐만 아니라 인류사회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더 강하게 관철되고 있는게 아닌가요?

신영복 그렇죠. 그래서 20세기를 강철의 세기, 또 철학적으로는 존재론의 세기 모든 존재들이 개인이건 회사건 국가건 자기 존재를 강력한 존재로 만들어 내려는 이런 치열한 경쟁의 고속도로를 달려온 게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들죠. 그래서 이것이 사실은 동양적인, 우리문화적인 전통에서는 상당히 낯선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길을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다가 지금 IMF라는 이런 막바지 상황을 맞이하게 됐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 상황에서 바로 그런 문제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것을 다시 돌이켜보고 어떤 방향을 우리가 모색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해야할 시기라고 저는 믿죠.

정범구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다가 그 종착점이 결국 IMF였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에서 어떤 점들이 잘 못되어 있었던 것일까요?

신영복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는 부분은 일단 거품을 거둬내자. 거품을 거둬내면 저는 작아진다고 생각을 해요. 우선 작게 어딘가 보다 근본적인대로 돌아가자. 그래서 저는 그 <나무야 나무야>에 이어서 숲의 얘기를 쓰는 이유도 결국은 사람으로 돌아가야하지 않는가...

정범구 거품을 거둬내야 작아지고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인데요 거품은 어떤 것입니까?

신영복 거품은 경제에서는 지금 지적하듯이 차입경제, 부채구조 이런 것이 거품일 수 있고 우리가 향유하고 지향하는 문화를 대게는 소비를 통한 문화향유, 이런 것들도 거품이라고 생각이 되구요. 그 다음에 우리가 갖고 있는 물질적인 여러가지 토대에 비해서는 너무 팽창되어 있는 불균형이라고 말 할 정도로 팽창되어 있는 상부문화구조, 이런 것도 일종이 거품이라고 할 수 있구요. 그래서 자기들의 전통과 자기들이 갖고 있는 그런 문화적인 정체성에 맞는 그런 사회의 구조, 문화의 질 이런 것들을 지향하는 것이 거품거둬내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범구 지금 그 말씀을 더 여쭤보자면은 우리사회가 그동안 살아왔던 물적성장으로 달려왔죠. 모든 것이 물신화되는 시대, 그런 성장중심의 사회의 끝에 서 있던 것은 IMF.. 벼랑에 몰렸던 사람들의 모습은 거품이 다 사라지면서 보면 지극히 약하고 경쟁력도 약하고 사회보장도 안 되있고 사람들간의 협동 이런 것도 다 잃은 그런 모습인가요?

신영복 그렇죠.  흔히는 기쁨을 나누기는 쉽고 고난을 나누기는 어렵다고 얘기를 하지만은 실제로 역사상의 많은 고인들이 얘기하시기는 기쁨을 나누기는 어렵고 차라리 아픔이나 어려움을 나누기가 쉽다고 그래요. 그것이 왜 그런가 살펴보니까 기쁨이라는 것은 사실상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 탐닉하는 거에요. 겉으로는 나누는 것 같지만 그게 진정한 나눔이 아니라고 그러구요, 아픔은 마치 우리가 옷을 얇게 입은 것처럼 추위를 더 절실하게 느끼는 상태 그래서 이웃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주목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진정한 나눔은 어려움속에서 얻어질 수 있다. 그런 뜻으로 제가 읽었어요. 그래서 이런 시기에, 아까 제가 사람말씀드리고 거품을 거둬낸 이후에 사람을 발견하고 사람과의 관계에 주목하고 그 속에 어떤 문화, 우리 삶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정범구 그런 입장에서 가장 원시적이면서 우리 원형인 문화를 네팔에서 찾았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사진이나 그런데서 보면 수돗물 한가운데 오물이 있고, 못 사는 것 그러니까 그것이 과연 문화의 원형이 될 수 있는 것인지요?

신영복 저는 문화를 인간의 외부에 쌓는, 그것이 빌딩이건 자동차건 외부에 쌓는 것이 진정한 문화가 아니고 인간의 내부에 쌓는 것. 농작물처럼 쭉 길러가는 것이 문화라고 생각이 되고 문화의 최고 형태가 사람에게서 영그는 그런 꽃이 아닌가 생각이 되요. 그래서 네팔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해요. 참 순박한 분위기, 순박한 사람들의 얼굴. 아 그래서 이 네팔이란 나라에서는 사람들을 아름답게하는 뭔가의 문화전통이 있구나. 참 소박하면서도 부러웠어요. 사람이 아름답고 아주 정직하고 얼굴이 아주 유년시절의 순진무구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굉장한 문화적 원형이 아닌가하는 느낌...

정범구 선생님께서 보실 때는 네팔 사람들, 못살고 가난하지만 오히려 우리처럼 거품이 없는 모습에서 참되고 순박한 인간의 원형을 봤다는 말씀이신데요. 반대로 뒤집어서 한국의 오늘을 사는 우리들 입장에서 그런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가자. 그러면 그런 낮은 소비수준의 문화, 어떻게 보면 불편한 문화, 이런 것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신영복 어렵다고 생각이 되죠. 그 소비이 하반경직성이라고 경제에서 얘기를 하죠. 낮추기가 어렵죠. 끌어올리는 것보다... 그래서 그런 점들이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현실, 우리의 당면한 이 현실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가장 진솔하게 주목하고 그것을 서로 공유해 내고 그래서 점차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새로운 세기와 더불어서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오늘 이렇게 마주 앉아있는 것이죠.

정범구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선생님이 베를린에 가셔서 느낌을 적으셨어요. 그런데 동서독통일이라는 것이 반드시 민족적인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우월했던 서독자본주의가 팽창해가는 과정의 결과라는 것을 우리남북한 관계에도 대입시켜봐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신영복 그렇습니다. 제가 독일가서 브란덴부르크문이 분단의 상징이었는데 지금은 통일의 상징, 아주 거침없이 자동차가 구르는 속에 제가 앉아서 참 부럽기도 하고 참 곤혹스럽기도 했는데요, 그 때 제가 독일에 계셨던 분들하고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제가 가져갔던 자료도 검토하고 그 때 낸 소박한 결론은 독일통일이라는 것은 독일민족의 영광이라던가 정서적인 이런 차원의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인포박스에 전시되어 있는 굉장한 통독이후의 건설현장의 열기라던가 이런 것을 보면 아주 우월한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독일자본이 새로운 어떤 시장, 마케팅, 프론티어를 동독에서 구하고 거기서 결집되는 힘으로 이웃, 나가서는 세계적인 독일자본주의의 위상을 강화해가려는 이런 추동력을 독일자본운동속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방금 우리나라의 통일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저는 다른 제3국가들이 남과 북이 통일됨으로써 이끌어낼 수 있는 우리민족의 잠재력, 이것들을 제3국가의 자본이나 제3국들이 향유하기 보다는 우리의 어떤 민족적인 자본, 우리가 그걸 계승해 내고 개발해내는 그런 강한 주체, 그런 것이 과연 있는가 이런 점에서 좀 우려되는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정범구 바깥에 나가보니까 한국은 없었다. 작았다. 이런 표현을 어디서 하셨는데요. 총체적으로 외국에 나가서 우리나라를 바라보신 것 아닙니까. 거기서 보신 우리모습은 어땠습니까?

신영복 한마디로 얘기하면 한국이 참 작지않은가라는 느낌... 두가지 의미로 얘기할 수 있을 거에요. 물론 우리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제부문이 상당히 많아지기도 했지만은 역시 한국이 세계에서 갖는 위상은 역시 작은 나라일 수 밖에 없다는 점,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문화적인 특수성, 이것이 전달되지를 않아요.

정범구 그런 것이 스물세개 나라를 다니실 때 다 그런 것을 느끼셨습니까? 아니면 ...

신영복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랬어요. 아시아라고 그러면 동양이라고 그럴때는 대게 외국인들은 중국적인 문화, 일본문화 이런 것들로 거의 아시아를 이해하고 있고 한국이 그 틈새에서 한국 고유의 어떤 문화적인 그런 성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작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정범구 문화적인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원인은 그렇지만 말이죠. 우리가 알기로는 우리나라는 세계 제 11위의 경제대국이고 또 OECD에도 가입한 국가고 많은 국민들은 또 월드컵 본선 연속4회 진출 얘기까지하면서 우리가 대단히 국제화되어 있는 나라다라고 안에선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까?

신영복 그런 시각이 외국인들에게는 우리들보다는 적었어요. 오히려 얼마나 그 나라의 문화가 인간적인가라는 그런 기준은 아니지만은 자기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가하는 시각이 상당히 강하지 않았는가 느껴지구요. 우리경우는 우리부터도 우리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상당히 잃었던 시기를 살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구요. 제 경우에도 그런 극도의 패배의식과 좌절감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있었기도 하고 또 그 후에 그런 역사 극복과정마저도 미국적 문화, 혹은 유럽적인 문화를 아주 추종해가는 그러니까 특징을 발견할 수 없는, 대게 사람들의 경우도 자기를 흉내내는 사람들을 그렇게 존경하지 않는 법이잖아요. 그런 면들이 참 아프게도 우리의 현재의 우리가 살아감으로써 우리가 추구하는 여러가지 국가적인 방향에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정범구 그렇다면 말이죠.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셨을 때 참된 문화는 어떤 것일까요?

신영복 한마디로 얘기하기는 어려운데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은 존재론적인 문화, 자기 존재를 강화하는 경쟁력있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이런 문화 대신에 우리 기존의 우리문화적인 전통속에 풍부히 존재하는 관계론, 불교의 연기론, 내가 무슨 존재가 되기보다는 내가 누군가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자양이 될 수도 있다. 함께 뭔가 달성할 수 있고 꼭 목표달성이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길, 그 길에서 만나는 인정과 코스모스와 사람들, 이런 것들 속에서 가치와 행복을 우리가 느낄 수는 없을까. 그런 문화, 목표보다는 과정, 도로의 질주보다는 길의 어떤 다정함,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가장 귀중한 행복은, 기쁨은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다는 자각, 이런 것들로 만들어지는 어떤 문화, 이런 것들을 우리가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은 상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범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최대한 따라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은 역시 오랜 사색이 결과이기 때문에 막연하게만 느낌이 옵니다. 예를 들어서 말이죠 우리 한국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려다볼 때 우리가 우리의 참된 문화를 갖기 위해서는 어떤 점들을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지 ?

신영복 그래서 우선은 사람이 어려움에 직면하면 내가 왜 이런 어려움에 빠졌는가라는 의심을 하게되죠.

정범구 예를 들어 IMF같이 청천벽력을 맞았을 때...

신영복 그걸 우선 가던길을 멈추고 뒤돌아보고 그래서 지금까지의 해방이후, 또 삼공이후 경제정책 과정을 비롯해서 우리가 만들어낸 여러가지 정치 역학적 구조, 문화, 이런 것들을 돌이켜보고 이것이 정말 우리민족의 어떤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고 뭔가 다른 문화를 모방해갔던 과정이 아닌가 하는 아픈 반성이 필요하구요. 그리고 정말 우리가 우리의 어떤 잠재력을 키우기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그래서 더불어 간다면 저는 우선, 이웃과 함께 가는 것, 그리고 우리 겨레가 하나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 이런 과정들을 잘 관리하면서 우리 고유의 새로운 도약은 아니더라도 출발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범구 우리가 해외 나가서 한국의 힘이라는 것을 많은 경우에 이런 데서 찾으려고 했거든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붙어있는 삼성의 간판이라던가 또 한국 자동차가 유럽의 거리를 굴러갈때 우리의 힘이 이렇게 커졌구나라는 데서 우리의 정체성을 느낀다던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수준에서 우리의 정체성이나 문화를 느끼거든요.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을 하시는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형태의 문화를 다른 나라에 보여줄 수 있고 우리 것으로 해야한다는 말씀인지 좀 더 구체적인 현실을 지적해 주시면 좋겠네요.

신영복 외국에도 사실은 도시 중심으로는 그런 문화에 대한 기준이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영국, 독일등 중소도시로 가면 자기들의 문화속에 아주 아름답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게되고 그게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의외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문화라던가 삶의 방식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저는 가지게 되요.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그러한 자기것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구요. 도시의 파급력, 서울의 비중, 서울에 들어와 있는 외국의 문화, 이것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않은가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정범구 우리 것에 대한 애정도 더 우리것을 찾으려는 노력도 다른말고 하면 순박한 농촌을 우리가 척박한 도시생활하면서 잊어가고 있고 우리문화의 원형은 어떻게 보면 이 순박한 농촌에 있는 게 아닌가...

신영복 농본적이면서 상부상조하는 그런 존재론과는 반대편에 서 있는 그런 관계론적인 이웃에 대한 애정, 이웃과의 조화 이런 문화들이 참 많이 있고 지금도 우리들의 심성속에는 상당히 많이 흐르고 있는 그런 문화가 아닌가 생각을 해요.

정범구 IMF시대를 맞아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 중의 하나가 지적을 하셨듯이 급격한 소비수준의 약화와 더 심하게 말하면 자기 존재감의 상실까지입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바로 존재감까지 상실되는 데요. 실재로 많은 이런 사람들이 우리 거리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위안을 주신다거나 새로운 시각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얘기를 들려주신다면 어떤 얘기를 하시겠습니까?

신영복 개인적으로는 참 어려운 그런 환경속에 처해있는 그런분들, 저 자신도 그 감옥이라는 굉장히 어려운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만은 이런 경우에는 저는 그 어려움을 빨리 헤어나겠다는 생각보다는 자기가 이 어려움 속에서 짐을 어떻게 하면 좀 가볍게 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구요. 그 다음에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또 반복되는 말씀입니다만은 인간의 바깥에 쌓는 행복보다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아주 좋은 계기로 이웃의 체온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그런 전기로 만들어내서 자기 삶의 구조를 바꾸는 노력들을 해야하구요. 물론 기본적으로 절대적인 생존수준, 이런 것들은 사회가 나라가 이웃이 같이 풀어 가야 한다는 것은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을 계기로 해서 지금 쭉 말씀드린 것처럼 새로운 삶의 틀, 문화의 내용성을 만들어 가는 그런 계기로 삼자. 사람이 나무도 마찬가진데 어떤 상처가 나면 그 상처가 옹이가 되서 오히려 그 나무를 튼튼하게 세워주는 역할도 하죠. 대나무도 그 마디가 대나무를 곧게 세워주는 힘이 되듯이 이 IMF의 현실이 이 아픔이 우리 사회가 이웃을 발견하는 그런 양심적인 사회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할 수 있는 역설의 확인에 생각을 쏟아야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CLOSING


이웃의 체온을 느끼는 것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 어떻게 보면 우리는 여태까지 앞만 보며 달려오다가 IMF라는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넘어진 것을 계기로해서 우리 이웃을 돌아보고 또는 자신의 돌아온 길도 되돌아보는 그래서 이 IMF라고 하는 위기를 다시 기회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웃과의 사이에서 새로운 문화의 유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신영복 교수가 우리에게 던져 주려는 메시지였던 것 같습니다.


List of Articles
분류 제목 게재일 미디어
기고 개인의 팔자 민족의 팔자 - 한겨레신문 1990.2.22. 1990-02-22 한겨레신문
기고 주소없는 당신에게-한겨레 기획 칼럼 1990.1.4. 1990-01-04 한겨레신문
대담/인터뷰 [인물포커스] 더불어 나누는 사람만이 희망 - 동아일보 2001년 9월 28일 2001-09-28 동아일보_서영아기자
대담/인터뷰 [이 시대의 정신을 만난다] 인고의 휴머니스트 신영복 - 작은이야기 1999. 1. 창간호 1999-01-01 작은이야기_도서출판 이레_문강선기고
대담/인터뷰 [월요인터뷰] 삶의 철학 펴는 신영복 교수 - 중앙일보 1998년 8월 24일 1998-08-24 중앙일보_이경철 차장
대담/인터뷰 '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신영복 - 함께걸음 1998.12 1998-12-01 함께걸음_한혜영기자
대담/인터뷰 '정범구의 세상읽기' 신영복 교수 편 - KBS 1998년 7월 5일 1998-07-05 KBS
대담/인터뷰 수많은 현재, 미완의 역사 - 손잡고더불어. 돌베개. 2017수록 1998-03-01 당대비평3호_홍윤기대담
대담/인터뷰 더 높은 인간성을 향한 불안스럽지만, 확고한 '떨림' - 월간 '말' 1996년 8월호 1996-08-01 월간 '말'
대담/인터뷰 풀잎처럼 어깨 동무해 살고픈, 우리시대 선비 신영복_오숙희 1996-05-01 참여와 연대 격월간지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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