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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6-01-22
미디어 법률저널_오시영

오시영의 세상의 창-박근혜 대통령의 길거리서명과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 정신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 / 변호사 / 시인


민법 제1조는 “조리(條理)”를 민법의 법원(法源)으로 규정하고 있다. 성문법으로 정한 바가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마저 없으면 법원에 의하여 민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여기의 법원은 재판하는 사법부 법원이 아니라 “법이 존재하는 형식”을 말한다. 조리, 즉 상식이 최종적으로 민사문제를 해결하는 법으로 작용한다는 선언이다. 이처럼 조리에 근거하여 법관은 “법 창조적 기능”을 수행한다. 즉 법이 없어서 재판을 할 수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민사문제에 대하여 성문법과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하여 법관이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민법은 법관이 법이 없다고 재판을 거부하면 처벌받도록 규정되어 있을 정도이다. 법이 있어야 민사재판뿐만 아니라 모든 재판을 할 수 있는데, 상식이 마지막 법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식은 우리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냥 흘러가는 강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감히 넘어서도 안 되고, 무너져서도 안 되며, 건너뛰어서도 안 되는 엄존하는 무서운 본질이자 명제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활성화입법촉구를 위한 길거리서명에 자진하여 동참하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가 중심이 되어 전개하고 있는 경제활성화입법 국민서명운동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여 서명하였다. 이어서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과 여당 국회의원까지 길거리서명에 나서는 “황당한 진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필자의 눈에는 왠지 낯설다. 아니 낯설다 못해 황당하다. 좋게 말해 황당한 진풍경이지, 이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아니 될 민주주의국가붕괴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스스로 대통령이기를 포기한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야당이던 새누리당(당시 명칭은 한나라당이지만 한나라당이 개명하였을 뿐이기 때문에 새누리당과 같은 당이다. 아무리 이름을 바꿔도 동일성은 그대로 유지된다)의 정치적 반대 등에 직면하여 대통령직 수행이 어려움에 처하자 자신도 모르게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라는 말 한 마디 내뱉어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에 의해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비난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앞장  서서 저 말을 물고 늘어졌다. 무능한 대통령이 스스로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고 했으니 그만 물러나라는 비난과 정치적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으로 저 말을 물고 늘어진 것은 진돗개보다 더 질겼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필자는 본란을 통해 저 말이야말로 “대통령직을 정말 잘 수행하고 싶다는 반의법의 정수”라는 칼럼을 쓴 바 있다. 우리 모두는 열심히 살면 살수록, 어떤 난관이나 장애에 봉착하게 되면 “무엇무엇 때문에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라는 말을 수없이 뇌까린다. 사장 때문에 못해 먹겠고, 종업원 때문에 못해 먹겠고, 남편 때문에 못해 먹겠고, 아내 때문에 못해 먹겠고, 자식 때문에 못해 먹겠고, 부모 때문에 못해 먹겠고. 우리는 수없이 못해 먹겠다고 하면서도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간다. 그게 삶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격언이 나오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입법촉구 가두서명은 2016년, 아니 21세기 최대 블랙 코미디 중의 하나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은 황망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이다. 3권이 분립되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분리되어 있다. 그렇다면 입법부의 입법행위가 지연되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더라도 입법부를 설득하고 여당과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게 바로 행정부의 대표이자,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할 일이다. 그 일을 할 작정이 아니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 원래 민주주의는 이렇게 반대의견이 존재하고, 시끄럽고, 늦는 것이다.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정부와 여당이 자기 생각을 100% 관철하려 할 것이 아니라, 야당의 의견을 어느 정도 들어주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정치인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입법촉구가두서명에 나서는 순간 민주주의국가에서 대통령의 존재는 사라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정말 잘하고 싶다는 반의법의 정수였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활성화입법에 대한 길거리서명”은 정말이지 대통령직을 포기하는 아주 구체적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는 설명한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수 없는 대통령의 충정을 알아달라고. 그렇지만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확신하고 있는 필자의 눈에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일국의 대통령은 기업과 재벌을 위한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과 더불어 함께 가야 할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코앞에 다가왔다고 보이는 세계적 경제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경제활성화법이라는 것이 정부의 입법추진의도이다. 하지만 위 관련법 내용 중에는 재벌의 기업구조조정을 너무 쉽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일부 재벌의 편법상속이나 소수 지분으로 기업지배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반민주적 발상에 근거한 독소조항들이 산재되어 있고, 보통해고라고 불리는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독소조항들이 산재하여 있다. 다시 말해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들이 다수 들어 있기에 야당에서는 경제살리기입법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를 죽이고 근로자를 죽일 뿐이며 일부 소수 재벌 지배구조를 강화해 줄 뿐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첫 걸음에 천리를 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노동자를 설득하고 야당을 설득하여 법안 내용 중 독소조항이라고 평가되는 일부 내용을 수정하거나 완화하는 정치적 타협을 이루어내어 입법이 관철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 길거리서명에 나설 것이 아니라 야당대표를 만나고 노동자대표를 만나 입법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정치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한 설득의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못하다. 정치적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식견과 양보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지혜로움이 부족하다. 그러기에 야당 대표를 만나거나 노동자대표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겁을 낸다. 만나서 설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고위 공직자들을 비롯하여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현재 청와대 시스템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겉으로는 잠잠해 졌지만 여전히 비서관정치가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국민과 더불어 가야 한다. 함께 가야 한다. 어느 한쪽 편이 되어 길거리 가두서명을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해 입법이 필요함을 설득해야 한다. 어떻게 대통령이 국민 일부에게 유리하고, 국민 일부에게 불리한 입법투쟁을 위해 길거리로 나설 수 있는지, 필자는 민주주의 상식, 민법 제1조가 천명한 “조리”에 비추어 볼 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이해될 수 없는 대통령의 행위이고, 극단적 평가를 내리자면 대통령직을 포기하겠다는 선언행위에 버금가는 잘못된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75세의 아까운 나이로 영면하였다. 필자는 오랫동안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하여 더불어 숲, 나무야 나무야, 사람아 아 사람아 등을 읽어 왔다. 필자는 같은 저자가 쓴 여러 책을 잘 읽지 않지만, 신영복 선생의 저서와 법정 스님의 저서는 꾸준히 읽어왔던 것 같다. 신영복 선생의 글을 접하면서 얼마나 많은 감동을 느꼈고, 많은 영감과 사람 사랑, 더불어 사랑, 화해정신을 배웠는지 모른다. 필자도 문단 말석의 시인인지라 글에 대단히 민감하다. 글의 수준과 깊이가 읽는 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아무리 유명한 사람의 글이라고 하더라도 몇 줄 읽다 집어던지곤 한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의 책은 한 번 읽고 버릴 수 없어,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는 한다. 필자에게는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 한 번 감동을 받은 책이나 음악, 영화 같은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듣고 보는 반복습관이 있다. 완전히 내 속에 녹아내릴 때까지, 내 몸속에 체화될 때까지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 신영복 선생의 글이 그랬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선생님이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지인을 통해 전해 듣고 순간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 분의 위대한 스승을 잃었다는 사실에 슬픔이 크다. 

글은 작가의 삶과 일치할 때 생명력이 있다. 아무리 말과 글이 번지르르하더라도 작가의 삶이 말과 글로부터 동떨어져 있으면 결코 감동이 오지 않는다. 오히려 위선자라는 생각에 쓴웃음을 짓게 된다. 한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 철학가가 영면한 사실 앞에서 그가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더불어 숲”과 “나무야 나무야”의 상호대화법은 오랫동안 필자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고, 많은 국민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한 그루 나무에게 말한다, “한 그루 나무야, 한 그루로만 살아갈 수 없으니 우리 함께 더불어 숲을 이루어 살자.”라고. 그리고 숲에게 말한다, “숲아, 숲아,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없이는 숲, 네가 존재할 수 없으니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소중히 여기자.”라고. 이게 신영복 선생의 정신, 나무와 숲이 더불어 상생하는 실천의 삶이다. 

필자는 신영복 선생의 영전에 일반 국민들과 야당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여당 정치인이나 청와대에서도 어느 정도 조문의 뜻을 표하리라 생각했었다. 필자는 신영복 선생 정도의 사상가라면 국가적 재산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최고의 지성인, 최고의 철학자 중의 한 분이라고 평가를 내려도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관대작을 지낸 사람의 죽음만을 평가를 하고 보여주는 조문을 할 것이 아니라, 신영복 선생의 글과 사상을 통해 감명받은 수많은 일반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에서 국민의 마음을 읽고,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첫 걸음을 내딛는 지혜로움이 여당이나 청와대에는 없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신영복 선생은 “나무와 숲의 더불어 삶”을 우리에게 숙제처럼 남겨 놓고 떠났다. 반목과 질시, 분열과 다툼에서 벗어나 나무와 숲이,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강한 자와 약한 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냐고 물으며 영정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더불어를 못 이루고 여전히 분열 속에서 각개전투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과 더불어 정치를 하지 못하고 재벌편이 되어 자신의 책무인 입법부 설득이라는 문제를 내팽개친 채 길거리가두서명이라는 입법부 압박활동에 나섰다. 그러한 서명행위가 스스로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 정도가 아니라 안 하겠다, 내려놓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무서운 사실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눈에는 코미디 중의 코미디이다. 문득 신영복 선생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써 주었다는 휘호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사자성어가 살아 움직인다. 왕옥산과 태형산이 가로 막혀 모든 사람이 만리길을 돌아가야 하는 것을 보다 못한 우공이 나이 아흔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과 함께 산을 깎아 예주와 한수까지 이르는 통로를 뚫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어리석어 보이지만 집념을 가지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모두들 나무에 매달려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루 빨리 여당이나 재벌이라는 한 그루 나무바라보기라는 착시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를 보는 더불어 숲 정신으로 되돌아오기를 소망한다. 신영복 선생의 명복을 뒤늦게나마 빈다. 우공이산처럼 국민을 위해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하는 정치인들이 더불어숲 정신을 배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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