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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6-02-08
미디어 미주중앙일보_박경자

[박경자 칼럼]

‘청산에 하늬 바람’ 고 신영복 교수님



1966년,내가 대학 2학년, 숙명여대 청파 언덕을 함께 오르 내리시던 경제학과 교수셨던 선생님, 인자하신 그웃음, 그 지성이 내 젊음의 자랑이었습니다. 먼 발치로 선생님을 바라만 보아도 젊음이 약동하던 그시절, 선생님은 청파언덕에서 만난 그날에도 ‘청산에 하늬 바람 처럼’ 말없이 과묵하신 선생님을 교정에서 뵐때마다 젊음의 꿈이 약동하던 그날을 다시 돌아봅니다.


세상 떠나신 후 다시 선생님의 책 ‘감옥으로부터 사색’을 읽으면서 깨알같은 글씨로 메모 노트한 선생님의 필체는 나 또한 수 많은 가슴 앓이로 내 조국의 독재속에 우리가정의 몸소겪는 수많은 아픔들로 온밤을 소리없이 울었습니다. 국가 반역죄란 누명을 뒤집어 쓰고 사형언도를 받는 1966년 ‘감옥으로부터 사색’에 실린 ‘청구회의 추억’이란 글을 이제는 내조국의 후손들이 알아야합니다. 정보부에서 간첩죄로 문책한 사건 ‘청구회’그 회원들이 초등학교 5, 6학년 어린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1966년 봄철, 서울대학교 문학회 20여명과 서오능에 답청 놀이에 갔을 때였다. 멀리서 5, 6명의 어린이들이 다 헤어진 옷을 입고, 소 달구지나 바퀴 자국에 흡사한 때 꼽지기 코 흘리개의 모습으로 흙때가 묻은 그 모습은 마치 조국의 가난한 춘궁을 그대로 느끼게한 시골 아이들이었다. 그들도 소풍을 나온 것이었다. 나는 이 꼬마들에게 ‘오늘 하루를 함께 하고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그 꼬마들 가까이 가서 “애, 너 이름이 뭐니”하며 한데 어울린다. 산 기슭 진달래가 만발한 언덕을 함께 딩굴며 깊숙이 꼬마들의 세계로 들어갔다. 더러는 전부대 뒤로 숨고 자신을 보이기를 싫어했다.


그들은 문화동 산 기슭 판자촌에서 사는 달동네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오래, 오래 벌어서 왕복 버스권, 일금 10원씩을 준비하고, 점심을 해먹을 쌀, 단무지가 전대에 전부였다. 그날 소풍의 만남 뒤로 그 아이들은 선생님과 한달에 한번은 꼭 만나고 싶다고 했다. 만나서 독서 클럽을 만들고, 책을 사서 나누어주고 연락처를 숙명여대 교수실을 적어주었다. 남달리 똑똑하지 못한 아이들의 옷차림 등을 감안해서 우리 모임 이름을 ‘청구회’로 하자고 동의하고, 매주 마지막 오후 5시 장충 체육관앞에서 만났다. 만나면 호떡집 문화빵, 아이스 케키를 사주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다.


어느날 숙명여대로 편지 한장이 날아왔다. 겉봉에는 문화동 산 1번지, 조대식, 이덕원, 손용대… ‘청구회 용사들’이라 적혀있었다. 한동안 그들을 잊고 살아온 교사로써 일침의 충격이었다. 꼭 한번 선생님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간곡한 사연이었다. 그들의 진솔함에 끌려 그 소년들을 다시 만났다.


‘청구회’는 ‘독서 클럽’으로 ‘왕자와 거지’, ‘로빈훗의 모험’ , ‘집없는 천사’등 많은 책을 읽게하고 독후감을 쓰게했다. 그뒤 선생님이 강의하신 육사 생도들과 어린 청구회 소년들이 함께 소풍을 갔다. 수유리 종점에서 만나 사관 생도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은 꼬마들은 헤어진 옷차림에도 그날 신나게 놀았다. 그뒤 1968년 ‘청구회’ 어린이들을 집으로 초청했는데 이상하게도 한 명도 나타나질 않았다. 혹시 약속 장소를 잘못 알려주었나 의심도 해보았지만 아이들의 모습을 그뒤로 영영 보이질 않았다. 그뒤 정보부에서 출두 명령이 내려 심문을 받고 ‘청구회’의 정체를 말하라는 호령 앞에 말문이 막혀 눈을 감고 말았다.


“그들은 달동네에 가난한 초등학교 7, 8학년입니다”라고 해도 믿지 않았다. 다시 서울 지방 법원 8호 검사실에 불려가서 “이것이 청구회 노래인가?” 검사의 손 사이에는 선생님이 꼬마들을 위해 지어준 노래가 적혀있었다.


겨울은 튼튼한 소나무 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함께 자란다/어깨동무 용사들아/ 동트는 새 아침 태양보다 빛나게/ 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아-


여기서 “주먹 쥐고”라는 것은 국가 반란을 의미하고 폭력과 파괴를 의미한다고 주장했고, 그뒤 군법회에서 ‘청구회’가 잡지사 ‘청맥사’를 상징한다고 추궁해 간첩죄로 사형까지 언도 받아 징역 20년, 감옥을 살았던 기록이 옆서로 세상에 띄운 글 내용이다.


1980년 남편이 외교관 시절 ‘광주 민주화 사건’으로 광주에서 무고한 수많은 시민들이 학살당한 그 때의 현장을 TV로 목격하고 더이상 군부 독재 내 조국에서는 공직에 몸을 담을수 없다며 남편은 사직서를 내고 미국에 살게된 말못할 가슴 아픈 사연이 우리 가정에도 숨어있습니다.


선생님 글과 그림, ‘처음 처럼’을 언제나 제 침대옆에 두고 시 처럼 쓰신 고결한 문체, 그림을 대할 때마다 그 옛날 교정에서 뵙던 젊음이 넘치신 멋진 선생님을 뵌듯합니다. ‘이시대는 부모보다 시대를 더 닮는다’는 말을 오늘 다시 되새겨봅니다. ‘감옥으로부터 사색’에 실린 작은 엽서의 글은 우리 민족의 한시대의 아픔이요, 한 인간의 반듯한 초상이었습니다.


언제나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 처럼/처음으로 새싻을 밟는 새 싻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마치 아침 처럼, 새봄 처럼/ 처음 처럼/ 언제나 새날은 시작하고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끝없는 시작입니다.


교수님 가신 그길에 ‘청산에 하늬 바람’되시어 자유와 평안함 누리소서. 봄 흙내음 그윽한/내조국 외진 산길에/고목에 핀 매화 처럼/그윽한 향기로 꽃이 되어/바람이 되어/부디 이땅 지키소서.


 [애틀랜타 중앙일보]  201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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