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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7-01-16
미디어 오마이뉴스 손응현

청년 신영복과의 만남, 그리고 그 뒤

 

[1주기]'청구회추억'을 추억하다


17.01.15 17:21l최종 업데이트 17.01.16 09:02l 손응현(newsson)

 

*오늘(15)은 신영복 선생의 1주기다. 영복 선생의 에세이 <청구회 추억>을 추억해 본다. 난 청구회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 기자 말

 

1968. 그 해 여름. 서울 성동구(당시) 문화동 산17번지. 산동네 골목골목은 동네 놀이터이자 사랑방이다. 골목길 드문드문 펼쳐진 돗자리나 평상은 꾸역꾸역 하루 삶을 이어가는 동네 아줌마들의 해방공간이다. 지난밤, 앞집 옆집 뒷집 소소한 일상이 숨김없이 까발려진다. 같이 웃고, 울면서 궁핍한 살림을 서로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힘이 된다. 말이 이웃이지 한 가족이자 식구다. 그 땐 그랬다.

 

평소 동네 아이들, 아줌마, 지나는 행상들로 늘 시끌벅적하던 골목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남한 최대 간첩단 통일혁명당(통혁당) 일망타진'. '테레비'가 귀한 시절, '금성 라듸오'와 신문에서 쏟아지는 '뉘우스'에 온 골목이 발칵 뒤집혔다. 그것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신영복, 그 육사 교관이 무시무시한 간첩 수괴라니."

"처음부터 좀 이상했어, 서울대 나오구 교수였다는 그가 뭐가 아쉬워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그리 살갑게 대했겠냐구. .. "

 

()용대형, ()덕원이형은 ()대식이형집 좁은 골방에 숨죽이고 마주 앉았다. 알 수 없는 엄청난 죄를 지은 듯 파랗게 질린 얼굴들이다. 멀뚱멀뚱 서로 얼굴만 쳐다보던 형들은 결국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1966년 봄, 신영복 선생과의 서오릉 진달래꽃 만남 뒤 2년여. 그동안 형들은 달라지고 있었다. 기껏 딱지치기, '다마'치기, 만화 빌려보기에서 위인전을 읽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에 동네 골목청소를 하는가 하면 뭔가 칭찬받은 만한 '착한 일'을 찾았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 신 선생을 만나고 온 날이면, 그와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자랑스레 동네골목골목에 퍼트렸다. 지금까지 형들의 '영웅'이었던 월남파병 '맹호부대 용사들'이나 프로레슬러 김일, 장영철이 이젠 '육군사관학교 교관 신영복 장교'로 바뀌었다.

 

그 해 1, 신영복 선생은 형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러나, 형들은 약속 장소였던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신 선생은 이때 일을 '청구회의 추억'(돌베개)에서 이렇게 기억했다.

 

"청구회 꼬마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여 간소한 회식을 갖자고 제의하여 이들의 승락을 받았다. 그러나 동대문 체육관 앞에는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이들의 초대를 위하여 어머니에게 이들의 면면을 말씀드려 회식준비에 각별한 애정을 느끼겠끔 미리 터를 닦아놓기까지 하였던 터였다.

 

나는 지금도 그때 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까닭을 정확히 모르고 있다. 사실은 그들이 나오지 않은 이유 자체가 심히 모호한 것이기도 하였다."

 

통혁당 사건 뒤. 동네 어른들은 이곳저곳서 수근댔다.

 

"아이들이 신영복 집 초대 약속 가지 않은건 천만다행이다. 만날 장충체육관 앞에서 만나다 자기 집에 가자고 했던 게 알고 보니 아이들을 그날 이북으로 끌고가려했던 거야."

 

형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형들이 왜 그 날, 손꼽아 기다렸던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 그 땐, 잘 몰랐다. 다만, 세월이 한 참 흐른뒤에야 미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 해 1, 북한은 청와대를 깨부수겠다며 김신조를 비롯 무장공비 31명을 남파했다. 일명 '1.21 사태'. 그 이틀 뒤엔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동해상에서 북한에 나포된다. 이즈음 대한민국은 '반공방첩'이 국시인양 철저한 '반공국가'로 굳혀진다. 향토예비군이 창설되고, 고등학교와 대학에 '교련'이 필수과목으로 등장했다.

 

'통혁당'사건은 그 와중이다. 신 선생은 중앙정보부에서 '청구회'가 불순단체로 엮여 취조를 당했다고 책에서 밝혔다. 이는 신 선생이 체포되기 전 이미, '청구회'에 대한 정보부의 이런저런 조사가 이뤄졌으며, 동네 어른들에게도 감지 됐을 가능성이 컸다.

 

산동네 골목은, 다시 평소 일상으로 돌아왔다. 형들은 그 해 여름 이후, 점점 말 없는 아이들로 변해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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