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론] 공부(工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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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6-01-25
미디어 경북일보_윤정대

공부(工夫)

변화와 창조를 실천하는 과정…변방일수록 창의적 공부가 돼


 윤정대 변호사 2016년 01월 25일 월요일  제19면



얼마 전에 퇴근길에 사무실 근처 책방에 갔다가 진열대 위에 신영복 교수의 '담론(談論)'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게 됐다. 신 교수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의 책을 감명 깊게 읽었었고 또한 어디선가 '담론(談論)'에 대한 추천 글을 읽은 기억도 나서 책을 펼쳐보았다. 앞부분에 공부(工夫)라는 한자에 대한 재미있는 풀이가 눈에 띄었다.


공부의 한자 공(工)은 하늘(一)과 땅(一)을 잇는(?) 것을 뜻하며 부(夫)는 하늘과 땅을 뜻하는 이(二)를 사람(人)이 연결함을 나타내므로 공부(工夫)라는 것은 사람이 천지(天地) 곧 세상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공부는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이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이며 이는 자기에 대한 성찰과 세상에 대한 인식 과정이 된다.


신 교수는 하늘과 땅을 세상으로 보고 별도의 설명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늘은 이상을, 땅은 현실을 뜻한다고 보면 공부라는 것은 사람이 하늘과 땅을 잇는 것이며 이는 이상과 현실을 연결시킨다는 의미도 된다. 공부(工夫)의 부(夫)가 하늘 곧 천(天)을 뚫는(夫) 것으로 공부는 이상과 현실을 연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창조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담론(談論)'은 뒤이어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여행이라고 말한다. 머리는 인식을, 가슴은 인식의 공감과 변화와 창조를, 발은 실천을 뜻한다. 다소 무겁고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공부는 인식과 인식에 따른 변화와 창조를 실천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고 여유가 생기면 무엇을 하는가. 흔히 대부분 평소에는 여기저기 모임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고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주말이면 등산이나 여행을 다니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저녁 무렵 식당은 이 모임 저 모임들로 채워지고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는 관광버스들로 북적거린다. 사람이 사람과 만나고 어울리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대부분 시간을 다 보내면 자기성찰이라는 진지한 시간을 잃게 된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년 남녀는 인터넷과 스마트 폰을 합쳐 하루 평균 4시간 가까이 투입하는 반면 독서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으며 성인 열 명 가운데 세 명은 일 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근래 나는 '천자문 공부'라는 책을 동아일보사에서 펴냈다. 아시다시피 천자문은 1,000개의 한자로 이뤄진 책이다. 천자문을 공부하면서 얻은 소감을 담고 뜻풀이를 정리한 책이다. 그 공부 과정을 통해 자기성찰과 세계인식을 그만두고라도 일과 사람에 지치고 메마르게 된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고 충전할 수 있었다.


신 교수는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진다고 덧붙인다. 이는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무지(無知)의 혁명'과 같은 맥락이다. 하라리는 현대과학은 기존의 지식과는 달리 인간의 무지를 인정한 덕분에 개방적이며 탐구적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기존의 지식으로 덮여 있는 중심부와는 달리 변방은 무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돌아가신 신영복 교수는 변방에 있는 우리에게 '공부하기에 딱 좋다'고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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