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론] 20년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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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6-02-19
미디어 경북매일신문_김현욱

20년 20일


김현욱 시인  경북매일신문 2016.02.19



2003년에 개봉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를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오대수는 누군가에 납치돼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감금됩니다. 누가 왜 자신을 가뒀는지 몰랐던 오대수는 오로지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그 고통을 견뎌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15년간 갇힌다면? 그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여러분은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여기 `20년 20일`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1월 15일 암 투병 끝에 향년 75세의 나이로 별세한 고(故) 신영복 교수가 바로 그 분입니다.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습니다.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풀려납니다. `20년 20일`은 신영복 교수가 감옥에서 보낸 시간입니다. 


감옥에서 책을 읽는 것이 자유롭지 못할 때 한 권으로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당연히 동양고전을 선택하게 됩니다. `시경`, `주역`, 이 난해한 고전을 감옥이 아니었다면, 또 유년시절의 정서가 없었더라면 읽었을 리가 없습니다. 출소 후에 감옥에서 읽은 고전을 교재로 하여 고전 강독 강의를 하게 됩니다. 그 강의가 녹취돼 `강의`라는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신영복 교수가 선택한 것은 `동양고전` 읽기였습니다. 그로부터 준엄한 자기 성찰과 사색의 보고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국토와 역사, 새로운 문명에 대한 혜안의 메시지를 담은 `나무야 나무야`, 자본주의 체제의 물질 낭비와 인간의 소외, 황폐화된 인간관계를 `관계론`으로 성찰한 동양고전`강의`, `더불어 숲`, `신영복의 엽서`, `처음처럼`과 같은 주옥같은 저서들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희망의 언어가 됩니다.


제목 그대로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강의가 된 `담론`(2015·돌베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추상력과 상상력의 조화입니다. 추상은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압축하는 것이고, 상상력은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읽어 내는 것입니다. 문사철이 바로 개념과 논리로 압축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 사소한 문제 속에 담겨 있는 엄청난 의미를 읽어 내는 것이 상상력입니다. 세상에 사소한 것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이 두 가지 능력, 즉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의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 신영복 교수는 그러한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품성`의 문제라고 말입니다.


동양학자 조용헌에 따르면 운명을 바꾸는 방법 중에 `독서`와 `명상`이 있다고 합니다. 운이 나쁠 때는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독서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아울러, 하루 1시간씩 명상이나 참선을 권합니다. 


고 신영복 교수의 `20년 20일`은 `독서와 명상`을 통해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다른 인내와 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속에 핀 `석과불식`의 아름다운 메시지는 우리 곁에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2016년을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도 중순입니다. `독서`와 `명상`으로 올해를 가꾸어 나가기에 늦지 않았습니다. 


고 신영복 교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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