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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1992-01-25
미디어 다섯수레

루쉰의 양심

- <루쉰전>번역에 부쳐 -

 


 

책을 배우는 것보다 사람을 배우는 것이 훨씬 쉽다. 쉬울 뿐 아니라 사람 배움에는 가슴에 와닿는 절절함이 있다. 이것은 책에는 없는 것이다.

 

한 그루 나무가 그 골짜기의 물과 바람을 제 몸 속에 담고 있듯이 사람의 삶 속에는 당대 사회와 역사의 자취가 각인되어 있다. 사람 속에 각인되어 있는 이 사회성과 역사성은 책 속에 정리되어 있는 사회적 분석이나 역사적 고증에 비하여 훨씬 더 친근하고 생동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통하여 도달하게 되는 사회·역사적 인식은 쉽고도 풍부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삶 속에 체현되어 있는 경험은 광범한 사회역사적 실상을 고루 담고 있지 못할 때가 많고 그나마 핵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항상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드물기는 하나 그렇지 않은 개인의 일생이 있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루쉰의 삶이 바로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루쉰의 생애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숨 가쁜 중국 근대사의 한복판을 걸어간 삶이었다. 루쉰의 고뇌와 애증(愛憎)은 바로 근대중국의 고뇌와 애증이었으며 루쉰이 남긴 수많은 글들은 당시의 중국을 가장 정직하게 증거하고 있다.

 

루신은 50여 넌의 결코 길지 않은 생애를 통하여 참으로 상상을 초월할 업적을 남겼다. 본서에 소개된 바와 같이 "한 사람이 도대체 조국과 민중을 위하여 얼마나 일할 수 있는가"하는 청년들의 질문은 항상 루쉰의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일생을 전제로 하고 있을 정도이다.

 

개략적인 통계에 의하면, 소설 3권, 산문회고록 1권, 산문시 1권이 도합 35만 자에 이르고 잡문 16권이 도합 약 650여 편에 135만 자에 이른다.

 

중국 고전문학 작품을 수집, 기록, 교열하고 중국 고전문학을 연구한 저작으로 이미 출판된 것이 약 80만 자이고 일부는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것들이다.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고전작가들의 작품, 소련, 불가리아,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핀란드, 네덜란드, 에스파니아 등 십여개국의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번역 소개한 것으로 장편, 중편소설과 동화가 모두 9권, 그 외에 단편소설과 동화가 78편, 희곡이 2권 문예이론 저서가 8권 단편논문이 50편 도합 약 310여 만 자에 이른다.

 

그는 대략 500여 명 가량의 청년들을 친히 접대하였으며 전국 각지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그에게 보내온 2천2백여 명 가량의 청년들(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포함하여)의 편지를 손수 읽어보고 3천5백여 통의 답장을 썼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편지들은 지금 다 수집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수집할 수 있는 것으로는 1천3백여 통(『양지서(兩地書:루쉰과 나중에 그의 부인이 된 쉬꽝핑 사이에 오간 편지만을 묶어 출판한 책』는 계산에 넣지 않았음)밖에 안 되는데 이것만도 약 90여만 자에 달한다.

 

루쉰의 업적과 면모가 다양하였던 만큼 루쉰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생애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최대의 교훈은「전투적 지식인의 초상」이란 말로 집약될 수 있다. 암울한 근대중국의 격동 속에서 적과 동지에 대하여 스스로 모범이 되어 보여준 루쉰의 준엄하고도 확고한 삶의 모습은 사이비 지식인의 위선과 허구를 가차없이 들추어내고 있다. 루쉰의 이러한 전투적 면모는 그의 뛰어난 시와 소설에서도 탁월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특히 그가 잡감(雜感)이라고 이름한 수필 형식의 단문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루쉰의 잡감은 우선 그 형식에 있어서 시(詩)보다는 구체적이고 소설보다는 뛰어난 기동성을 갖는 것이다. 흡사 단검처럼 번쩍이며 적과 동지, 사랑과 증오, 좌절과 희망, 과거와 미래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반봉건·반식민지라는 어둡고 견고한  무쇠방에 갇혀 있는「대륙의 혼」을 일깨우는 그의 수많은 잡감은 그를 한 사람의 문학인으로 이해해온 우리들의 태평함을 매우 부끄럽게 한다.

 

이번에《루쉰전》을 번역하는 동안 집요하게 파고드는 의문은 그처럼 간고(艱苦)한 상황 속에서 그의 자세를 끝까지 가누어준 의지는 과연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한 마디로 그것은 그의「양심」이었다. 그의 삶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의지는 다름 아닌 그의 양심의 응결체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양심은 이웃에 대한 관심이며 애정이다.

 

루쉰의 경우 이것은「더부살이」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흙에 더부살고 이웃에 더부살고 조국과 민중에 더부살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그의 양심의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루쉰의 초인적 업적도 이 양심의 소산이었으며 루쉰의 문학적 천재도 이 양심의 승화이었으며, 불굴의 전투성도 이러한 양심의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양심은 이처럼 루쉰의 모든 고뇌와 달성(達成)의 원천이었다.

 

"우리에게는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권리가 없으며 동시에 타인의 희생을 저지할 권리도 없다…. 이 희생의 선택이라는 문제는 혁명가의 사회참여와도 아무 상관이 없는 개인적인 것이다."라는 글에서 읽을 수 있듯이 루쉰의 양심은 때로는 개인적 결단이 요구되는 고독한 것이기도 하였지만 양심은 처음부터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그 본질로 하여 "꽃이나 나무보다 흙"을 중요시하고 "천재보다는 민중"을 요구하는 대중성으로 더많은 이웃을 포용해 왔던 것이다.

 

"사람이 죽음에 임하면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의 용서를 구한다고 하지만 …… 적들이여 나를 계속 미워하라. 나도 나의 적들은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루쉰의 양심은 또한 일체의 감상(感傷)이 배제된 전투성으로 표출되기도 하였다.

 

"젊은이가 늙은이의 임종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늙은이가 젊은이의 사망기사를 써야 하는 아이러니"를 통탄하고 사람들의 무감각에 절망하면서도 그것은 "냉담해서가 아니라 더 큰 재앙을 자초하지 않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유연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목이 잘린 여성혁명가들의 나신을 구경하기 위하여 떼를 지어 몰려가는 군중들의 열광에 대하여는 적들에 향한 것보다 더 심한 분노와 혐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음을 실토하고 있다. 이는 의사의 길을 버리고 몽매한 중국민중의 정신에 관여하기 위하여 문학의 길로 진로를 바꾼 그의 결단에서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농촌의 어렸을 적 친구였던 룬투와 함께 키워온 그의 우정이 곧 루쉰의 양심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간적 타락에 대하여 최대의 분노와 혐오를 금치 못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루쉰의 삶을 통하여 절절히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 이 양심의 문제는 오늘 우리의 현실에 있어서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모든 인식과 실천에 있어서 자칫 간과되고 경시되기 쉬운 인간적 토대를 다시 한 번 반성케 한다는 점에서도『루쉰전』은 중국의 과거이기보다는 차라리 우리의 현재라고 생각된다. 사람은 모든 사회 모든 역사의 처음이고 끝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루쉰이 임종을 달포 가량 앞두고 유언장을 대신하여 집필한「죽음」의 일부를 부기해 둔다.

 

  1. 장례 때에는 옛친구 이외에는 아무한테도 절대로 돈을 받지 말라.
  2. 빨리 묻어버리고 끝내기 바란다.
  3. 추도식은 절대로 하지 말라.
  4. 나를 잊어버리고 너희들의 일이나 잘 보살펴라. 그렇지 않다면 너희들은 어리석다.
  5.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가까이 하지 말고, 복수를 반대하고 인내를 주장하는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기 바란다.

 

「개성」과「인간」의 자각에서 출발된 루쉰의 일생은「민족혼」이란 세 글자(三子)가 크게 묵서(墨書)된 백포(白布)가 그의 관위에 덮임으로써 끝나게 된다. 근대중국의 격동을 정면에서 감당하며 키워 온 그의 양심은 비록 때와 곳은 다르지만 오늘 이 땅을 사는 우리의 삶을 깊이 돌이켜보게 하리라 의심치 않는다.

 

이 책의 저본은 왕스징(王士菁)의《루쉰전(魯迅傳)》(1979년 2월. 중국청년출판사)으로 하였다. 많은 루쉰전 가운데서 왕스징본을 택한 이유와 왕스징본의 성격, 이를 번역하는데 역자들이 취한 입장에 대해서는 뒤의「해설」을 참고해주기 바란다.

 

루쉰에 대한 섣부른 애정만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어려움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수시로 이용된 루쉰작품의 번역에는 기왕에 나온 여러 가지 번역본들이 많은 참고가 되었다.

 

본문에 나오는 고유명사의 표기는 국내 맞춤법의 원칙대로 하면 모두 원음으로 표기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자음으로서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명사들 이를테면 두보(杜甫), 상해(上海), 북경여자사범대학 등등을 원음으로 옮겼을 경우 초래할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인명 이외의 고유명사는 모두 한자음으로 표기하였고, 인명도 1911년 중화민국 건립 이전의 인물에 대해서는 한자음을 고집하였다. 원음표기는 어떤 원칙에 구애받지 않고 가능한 한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미흡한 부분에 대하여는 독자들의 애정 어린 비판과 격려를 바란다.

 

그리고「다섯수레」편집부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루쉰의 사진들을 수집하여 적절히 삽입 해설함으로써 독자들이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편집부 여러분의 책을 만드는 정성과 수고에 감사를 드리며 감히 서문에 대한다.

 


1992년 2월  옮긴이

 


 

도서출판 다섯수레 1992

 

루쉰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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