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공간 '나루' 건립후원 전시회 개관식에서의 인사말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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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0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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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공간 '나루' 건립후원 전시회 개관식에서의 인사말

2008년 6월 16일(월) 18:00
대학로 상명아트홀 갤러리1관

시민단체 몇 개가 모여서 마포에 집을 짓는다고 해요.
그러더니 그 집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해요.  
그래서 저는 속으로, ‘촛불집회는 집 없이도 잘만 하던데…’ (청중 웃음),
그럼 건물 이름을 '나루'라고 하자. 제가 추천했어요.
이런 연유로 오늘 이렇게 <나루> 전시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또 이번 전시회에는 '물'에 관한 작품이 아주 많습니다. 바다도 있고, 수(水)도 있고…….

물이 쉬어가는 <나루>는 많은 배들이 모이는 곳이고,
땅과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또한 장(場)이었어요. 큰 장이었는데,
부족 중심 시대에는 장이라는 게 정보를 얻으러 가는 곳이었거든요.
나중에 '나루가 나라가 되기도 했다' 즉, 나루의 어원이 나라(國)거든요.
따라서 <나루> 건물에 입주하는 네 시민단체(녹색교통, 한국여성민우회,
함께하는 시민행동, 환경정의)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들도 물과 나루의 정신을 뼈아프게 좀 깨닫는 계기가 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자유로움. <나루>의 자유로움, 소통, 그리고 변화.

최근에 촛불집회 –아까도 얘기 했습니다만- 그 촛불이 뭘 비추냐?
미국산 소머리를 비추려는 거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대한민국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얼굴을 비추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을 비추려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는 ‘그 촛불이 뭘 비추냐?’ 고 묻는다면,  
바. 로. '우리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고 대답하고 싶어요.
아주 낡은 패러다임과 그런 구조를 촛불이 비추고 있지 않을까?

무슨 단체 대표, 무슨 연대 대표, 이런 대표들이
촛불집회 연단에 못 올라가더거든요.
집회가 끝나고 나면 그 사람들이 쭉 나와서 뭔가 촛불로 열린(實) 성과를
좀 담아보려고 하지만 절대 안됩니다.
작은 그릇으론 바닷물을 퍼 담으려고 해도 안 되거든요.
우리의 운동도 계속 변화해야 돼요. 자유로운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촛불은 바.로. 우리들을 비추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은 모든 운동 형태에서 운동의 새로운 전형을 만든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부지런 떨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면 된다.  
이것은 병사 하나하나를 더 충원하는 정도에 불과하고,
오히려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내는 게 새로운 부대를 창설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해요.

제가 지금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성공회대학교 교수들이 왜 붓글씨를 쓰냐?
잘 쓰지도 못하면서… (일동 웃음).
옛날에는 이 서도, 서예 하는 사람들이 그 사회의 최전선에 서 있는 지식인들이었어요.
당연히 그 시대의 고민이나 과제를 글에 담게 돼요.
물론, 유가적인 담론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사실, 그 메시지의 한계는 그 시대 자체의 한계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얘기를 막해도 되나? (일동 웃음)
이래서 선생들한테 얘기 시키면 안 된다니까… (웃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옛날에는 서예에 시대적 과제를 담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 땅에서 서예 활동하는 분들의 작품은 -좀 죄송하지만-
우리 시대의 고민이나 당대 사회 과제와 아무 상관없어요.
무의식적으로 중국 당나라 시대에 완성된 서체를,
게다가 내용 또한 구시대의 낡은 메시지를 담아서 쓰고 있거든요.
우리의 서예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반면에, 옛날에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정말 시대의식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그림하고 서예가 완전히 역전됐어요.
그림은 아주 글로벌해요.
그야말로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다 할 정도로 굉장히 앞서 있고, 변화하고 있잖아요?
서예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서예는… 원래 '서(書)는 ㅁ ㅁ다' 라고 하면, 그 안에 뭐 들어갈 것 같아요?
여다. 같을 여(如). 서는 같은 것이다(書如也)
왜냐면, 원래 이 뫼 산(山)자를 보세요. 저게 산이잖아요. 저 水자가 물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글자와 글자가 지시하는, 즉 지시되는 대상이 같다는 뜻이에요. 같다.
그 다음에 뭐하고 또 같으냐 하면, 그 시대와 그 사람이 같다, 그런 뜻이 있습니다.
서예에 그 시대를 담아야 돼요.
성공회대학교에 대해서 평소 많은 분들께서 여러 가지 질책과 격려도 해주시지만,
부족하더라도 내용에 있어서 우리 시대를 어떤 형태로든 담으려고 해요.
또한 글씨를 잘 쓰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문인화 전통을 잇는다는 뜻에서
그림도 넣고,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님께서 통일(統一)문제를
새롭게 통일(通一)이라고 작품에 담아내듯이 이런 노력들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한 이지상 교수가 노래도 했지만,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노래도 하고, 그림도 있고, 글씨도 있고 시민운동도 함께 어우러지는
예술적인 형식들이 곳곳에 만들어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쪼록 작품들이 다 팔려서…(청중 웃음)
<나루> 건물 짓는 데 다소라도 도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우레와 같은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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