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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중심을 향한 콤플렉스 깨라"
신영복 교수의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오픈 특강
김도형   2011.09.03

 

 
청년실업 80만 시대라는 말을 흔히 접한다. 대학도서관이든 대학 밖의 도서관이든, 도서관은 항상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정작 책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자격증, 토익, 공무원 수험서를 쌓아놓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책과 싸우고 있을 뿐이다.
 
'청년실업자'의 통계치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 중 일부는 대학원 연구실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더 이상 대졸 학력이 어떠한 메리트도 없는 시대. 대학원 졸업장 정도는 있어야 고학력 딱지를 받을 수 있다는 암묵적인 불안감이 팽배하다. 그러니 이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을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이래저래 공부는 우리시대의 화두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  ⓒ 참여연대

 

그렇다면 과연 공부란 무엇인가? 누구나 쉽게 갖는 의문이지만 결코 쉽게 답할 수는 없는 말이다. 지난달 31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참여연대 시민강좌 '아카데미 느티나무' 가을학기 개강에 앞서 오픈특강으로 진행된 이 강의에서 100명 가까운 수강생들은 약 한 시간 가량에 걸쳐 신 교수와 함께 공부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마침 그날이 필자의 인턴 근무 첫날이어서 그 강좌를 청강할 수 있었기에 내용을 전한다. 
 

공부란 삶 그 자체다

 

신영복 교수가 말하는 공부란 삶 그 자체다. 한자로 공부(工夫)는 연장을 쓰는 성인 남자를 의미한다. 특히 장인 공(工)자는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두 가로획과 이를 잇는 인간을 의미하는 세로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공부는 삶인 동시에 세계를 인식하는 틀이다. 살아가는 것, 세상에 적응하는 지혜로서의 작은 공부와 세상을 사랑에 맞게 고치는 우직함으로써의 큰 공부, 두 가지 모두를 합쳐 공부라 한다. 그러니 자격증시험을 위해 수험서를 읽는 일이나 대학원생의 논문 작업은 물론, 산골 목수의 망치질도 엄연히 당당한 공부인 것이다.

 

공부는 관계를 재 인식하는 과정

 

신영복 교수에게 공부는 관계를 재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를 '가지(Branch)'라고 부른다고 한다. 새로운 관계 의미를 담은 표현이다. 사람 사이의 앎도 이처럼 관계에서 시작한다.

 

진정한 앎은 내가 상대방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방도 나를 아는 것이다. 신영복 교수는 긴 수감생활 중 육체적 고통보다도 당신 자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 지인의 아픔이 전이될 때의 고통이 참으로 컸다고 이야기 한다. '생각'에 대한 견해도 남다르다. 생각은 단순히 뉴런과 시냅스의 기계적 작용이 아니라, 추운 겨울날 노잣돈 하나 없이 외지로 떠난 아들을 그리는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신영복 교수의 말은 곱씹을수록 의미가 새롭다.

 

역시 관계와 앎의 연장선에서 생각을 정의하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 '대상을 타자화 하지 않고 자기 세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구성하는 것'이 생각이다. 그렇기에 생각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바로 그 가슴이 세계를 조직하고, 공부가 되는 것이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 ⓒ 참여연대

 

공부는 절대진리의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

 

신영복 교수는 절대진리의 인식 가능성에 대한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공부라고 이야기했다. 산업화와 기계문명을 기반으로 한 근대 세계는 철저히 자기중심적,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을 만들고 이를 당연시 해왔으며 그 논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신영복 교수는 '환경운동'이라는 표현을 일례로 들었다. 인간이 과연 나무를 '환경'이라 부를 자격이 있는가? 나무에게는 오히려 인간이 환경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식하는 '진리' 역시 별이 아니다. 억겁의 우주에 절대 진리가 존재하고 그걸 인간이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저 오만에 다름 아니다.

 

그러기에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조직하며 깨달아 가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당연시 하는 것들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중세 유럽인들이 중세의 문맥에 갇혀 마녀의 존재를 믿고 죄 없는 여성들을 학살했듯이 우리도 근대의 문맥에 갇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도 던졌다. 소위 합리적, 이성적 주체라 하는 근대적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이 감옥, 군대, 학교, 공장 등을 통해 계량화, 규격화된 존재는 아닌가?

 

근대는 결국 존재론의 세계이다. 존재론은 이성과 혁신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폭력적이다. 콜럼버스의 달걀은 생각의 혁신만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비정한 폭력이기도 하다. 그 콜럼버스들이 소위 '신대륙'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야만인'인 북미 인디언들 수천 만 명은 학살당했다. 

 

무수한 피와 죽음과 폭력의 토대에 세운 근대문명의 절대성에 우리는 매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신영복 교수는 다시 묻는다. 과연 화재 현장에서 현대인은 램브란트의 명화와 한 마리의 고양이 중 무엇을 구할 것인가?

 

문맥을 깨뜨리는 것이 진짜 공부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 ⓒ 참여연대

조선말 최고의 석학이라 할 수 있는 연암 박지원 선생이 16세까지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영복 교수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덕분에 연암은 고문과 변려문 등의 옛 문체나 성리학적 세계관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도 읽히는 혁신적인 저술을 남길 수 있었다고 했다. 이를테면 연암은 변방의 인물이었던 셈이다.

 

신영복 교수는 변방이 중심보다 더 넒은 범위를 포용하고 있음에 주목할 것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심을 향한 근거 없는 콤플렉스와 허망함을 간직하고 있기도 한데, 변방이 스스로의 장점을 인식하고 긍정하기 위해서는 역시 문맥을 깨뜨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영복 교수는  책을 세 번 읽으라고 한다. 먼저 글 그 자체인 텍스트를, 그리고 그 글을 쓴 필자를, 마지막으로 그 글을 읽는 독자를, 즉 자기 자신까지를 읽을 수 있어야 진정한 독서가 완성 된다는 것이다. 문맥을 깨뜨리는 것이 진정 의미 있는 독서요, 공부라는 뜻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개별적인 각자의 세계-존재론에서 이어짐의 세계-관계론으로 인식틀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의 이유로 걷는 것

 

신영복 교수가 다음으로 강조한 것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여유이다. 버섯을 독버섯이니 먹는 버섯이니 나누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인식일 뿐이다. 버섯 입장에서는 그런 것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게 당연하다. 자유도 이와 같다. 결국 모든 이는 자기 자신의 이유로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 역시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다. 시냇물이 흘러가면서 자갈과 모래를 모아 담듯이, 하루하루를 아름답게 살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 곧 공부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성찰해 자신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이다.

 

달리던 길을 멈추고 영혼이 뒤처지지 않도록 바라볼 여유도 가질 필요가 있다. 근대의 문맥이 우리에게 당연한 삶의 방식으로 강요한,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도로의 마음에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길의 마음으로 바뀔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영복 교수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시 '지남철'을 낭송하면서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  ⓒ 참여연대

질의응답 시간에도 신영복 교수는 재기 넘치면서 성찰이 묻어나는 답변으로 강연회장을 감탄으로 채웠다. 고난에 대처하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특히 걸작이었다.

 

감옥에서 간수가 때리면 맞는 사람들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돼지처럼 꽥꽥거리며 맞는 사람, 닭처럼 푸드덕 거리며 도망 다니며 맞는 사람, 바람에 맞서는 대나무처럼 부들부들 떨면서도 꼿꼿이 서서 맞는 사람. 그중 당신은 '대나무형'이었던 것 같다면서, 비록 흔들릴지언정 다시 설 수 있다는 자기 신념만 지킬 수 있다면 모든 실패와 고난은 모두가 공부라는 신영복 교수의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강연 이후에는 성공회대 교수들로 이루어진 밴드 '더 숲 트리오'의 공연이 이어졌다.

 

필자의 지인들 중에는 대학원에 꿈을 두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유도 제각각이다. 그게 꿈인 이도 있고 단지 생업의 길이기에 찾아드는 이도 있다. 각자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현재의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필자도 한때 대학원 진학을 꿈꾼 적이 있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경제상황으로 더 이상의 공부는 사치였기에 포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턴근무 첫날 듣게 된 신영복 교수의 한마디 한마디가 더 가슴을 울렸는지도 모른다.

 

결국, 시작과 끝이 어떠했든지 삶에서 공부의 길을 거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길을 포기하고 취업 준비를 시작한 필자에게도 신영복 교수의 공부 방법은 결코 예외일 수 없었다. 아마 이글을 읽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자의 길에서 각자의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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