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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하방(下方)연대, 우리 시대 운동론의 핵심"


오마이뉴스 2006.12.02




[현장] 신영복 교수,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 <그날이 오면> 후원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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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복 교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청중이 서울대 '근대법학교육 100주년기념관'을 가득
메웠다.  ⓒ 정연경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이 힘들게 버티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인간적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나타낸다. 이는 한 서점의 이야기이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잃고 있는, 혹은 간과하고 있는 이야기다."

1일 저녁 7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인문사회과학을 지키는 한 서점을 후원하기 위한 강연에 나섰다.

강연이 열린 서울대학교 '근대법학교육 100주년 기념관'에는 250여명의 청중이 모여 신 교수의 강의를 경청했다. 백발의 노인과 파마머리를 한 중년 여성, 머리카락을 노랗게 물들인 학생 등 다양한 청중이 모였다.

이번 강연은 서울대 앞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그날이오면'(대표 김동운, 아래 '그날')을 후원하기 위한 것이다. 섭외하기 어렵다고 소문난 신 교수이지만, 인문사회과학의 중요성을 알기에 강연 요청을 선뜻 수락한 것.

1988년 문을 연 '그날'은 지난 18년 동안 비판적 지성의 산실이었다. 대부분의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이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재정난을 겪으며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날'은 인문사회과학이라는 전문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강연 시작 전 만난 '그날 후원회'의 장경욱('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 사무차장) 회장은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은 자본주의의 사회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며 "'그날'은 같은 목적과 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결합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다른 서점과 다르다"고 이야기를 풀었다.

'그날' 대표 김동운씨는 "'그날'과 함께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을 함께 했는데 후원을 통해 생존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날'과 뜻을 함께하자"며 강연 전 소회를 밝혔다.

"낙엽 떨어뜨리고 뿌리를 거름해 사회 근간을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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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 중인 신영복 교수.  ⓒ 정연경

신 교수는 "미리 강연 자료를 주었으니 상대적으로 편하게 이야기하겠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신 교수의 책을 한 권씩 들고 자리에 앉은 청중은 "'그날'이 힘들게 버티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인간적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나타낸다"는 신 교수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신 교수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림으로 설명했다. 나뭇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 한 그루와 열매 하나를 화이트보드에 그린 신 교수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말을 꺼냈다.

"석과불식은, 씨 과실은 먹는 것이 아니라 이듬해 새싹으로 돋아난다는 희망의 말이다. 낙엽은 떨어져 뿌리를 거름한다. 이를 '엽낙분본(葉落糞本)'이라 한다. 여기서 본(本)은 사람을, 인문학적 가치를 그리고 '그날' 책방을 말한다."

신 교수는 또한 "나무는 겨울에 낙엽을 떨어뜨리고 성찰하는데 인간은 삭풍 속에서 성찰하는 기간이 없다"고 말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직시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신 교수는 대학 시절의 대화를 비유로 들었다.

4·19로 자유당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총탄이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 직후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구조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총탄은 모자만 뚫고 지나갔다'고 말을 바꾸었다."

신 교수는 "60년대에 최전선에서 운동하던 친구들을 출소해서 찾아보니 다른 곳에 있더라, 가장 처절히 싸웠는데 성과를 뺏겼다고 원통해 하는 친구들도 봤다"며 "이는 주체적인 역량을 결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시기 우리 사회 운동은 민주주의의 외연과 내포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고 돌아보며 "우리 사회의 근간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관계론적 정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또한 신 교수는 "개인과 사회의 시작점은 모두 '의식'을 '인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 말하며 "사회의 제도와 윤리는 일단 주입된 것이며, 자기의식을 성찰해 머릿속 의식을 인식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인생의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신 교수의 성찰은 대부분 감옥 경험에서 비롯했으며, 이날 강연에서도 수형 생활 경험을 자주 사례로 들었다.

"감옥에서 만난 한 목수는 집을 그릴 때 주춧돌부터 그리더라. 우리는 대부분 지붕부터 집을 그리지 않는가. 그 목수에겐 집 짓는 순서와 집 그리는 순서가 같았던 것이다. 이는 인식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신 교수는 인문학과 인간 정체성의 위기를 우려했다.

"자본주의는 상품사회이다. 상품은 팔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다. 등가교환으로 내 가치를 연봉 1억원이라고 하면 좋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나 모든 물건을 상품화하면, 인간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화폐와 교환되지 않는 지식은 가치가 없게 된다."

신 교수는 '존재론'이 아닌 '관계론'을 믿는다고 밝혔다. "관계가 없으면 인간도 없다. 다른 관계와 달리 사람이 사람을 잘 알기 위해 조사나 탐색을 해서는 소용이 없다. A가 B를 잘 알려면, B도 A를 역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서로 잘 알고 애정이 있어야 한다."

또한 서도(書道)에 비유하며 관계론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우리가 편리하게 현금인출기를 사용함으로써 30만명의 정규고용자를 대신하게 되었다. 시장은 비시장부분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붓글씨는 한 획을 잘못 쓰면 다음 획으로 나아가며 결점을 보완한다. 관계론적인 정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고를 높여준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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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 후 저자사인회를 연 신영복 교수(왼쪽)와 김동운 <그날이오면> 대표.  ⓒ 정연경

강연은 예정된 두 시간을 훌쩍 넘겨 계속되었다. 신 교수는 "시간이 많이 지체됐지만 '그날'과 관련해, 사회변혁과 관련된 '연대론'을 꼭 이야기 하고 싶다"고 전했다.

신 교수는 신자유주의 경쟁 논리가 횡행하는 부박한 시대를 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노자>를 인용하며 '연대'를 거듭 강조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항상 낮은 곳에 자신을 둔다. 그리고 다투지 않음으로써 허물이 없다. 개인이든 사회든 물처럼 낮은 곳으로 '하방(下方)연대'하는 것이 역량을 키우는 방법이다. 또한 우리는 물에서 부쟁(不爭)하고 허물이 없음을 배워야 한다. 부쟁은 다투지 말라는 것이며, 허물이 없다는 것은 오류를 없앤다는 뜻이다."

"연대야말로 실천적 관계론이며 최고의 인문철학이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과 연대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인성을 높이는 길이다. 연대는 우리 시대 운동론의 핵심이다."

신 교수는 '여럿이 함께'라는 말 속에 담긴 연대의 뜻도 풀어냈다.

"내가 '여럿이 함께'라는 말을 썼더니 한 교수가 '방법론만 있고 지향성이 없는 것 아니냐'며 아쉽다고 하더라. 함께 가자는 방법은 있는데 어디로 가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고 쓴다. 함께 가면 길은 보인다는 뜻이다."

신 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다"라고 말하고 "냉철한 이성보다 따뜻한 가슴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머리부터 가슴까지의 여행은 가슴에서 발에 이르는 여행으로 완성되는데, 여기서 '발'은 삶이고 실천이며 숲이다"라고 밝혔다.

"60년대 학생운동 할 때 아주 논리적이고 뛰어난 사람이 많았다. 출소하고 나서 수소문했더니 그 사람들은 다 사라졌다. 오히려 남아있는 사람은 양심을 우선시하며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이성보다 감성이 중요하고, 양심과 자부심으로 실천에 이르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신 교수는 사회변혁 방법론으로 '진지전' 개념을 창안한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를 예로 들며 "수세 국면에서 (진보의) 역량을 지킬 진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당장은 그 진지가 작더라도 변혁의 시기엔 엄청나게 커지는 법이니 한탄할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이어 "사회 곳곳에 그런 진지와 숲을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며 '그날'도 계속 그런 숲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연을 마친 뒤 신 교수는 '그날이오면'이라는 붓글씨를 전달하고 '그날'을 격려했다.

"진보 조직의 제한성, 사회 역량 한계 반영하는 것... 따뜻하게 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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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이 끝난 후 청중은 신 교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을 들고 길게 늘어섰다.  ⓒ 정연경

밤 9시 35분께 강연이 끝난 후 문답 시간. 사회과학계열 06학번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강연장에 오기 전 비정규직 관련 법안 개악을 규탄하는 집회에 다녀왔다"고 운을 뗀 뒤 "학생이 민주노총과 연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보다는 학생들이 자생적으로 (다른) 현장을 찾아가며 연대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신 교수는 "학생 시절에는 기존의 사회운동 속에서 활동하는 것이나 독자적인 조직도 만들어서 해보는 것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 뒤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 조직이 현재 보이는 제한성은 우리 사회의 역량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니 따뜻하게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교사라고 밝힌 한 청중은 "아이들이 돈 버는 것, 부자 되는 것에 너무 민감하다"는 우려 섞인 말로 조언을 구했다. 신 교수는 "아이들은 다른 문화를 접하면 달라지기도 한다"고 말하고 "우리 사회의 담론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가 문제이며, 학교가 인문학적 가치를 지키는 최우선이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깝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고 '저자 사인회'와 뒤풀이도 진행됐다. 후원회장인 장경욱 변호사는 "'그날'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하고 "'그날' 홈페이지를 준비하고 있으며, 좋은 책을 알리는 차원에서 좋은 저자 등을 모시는 강연회를 이어가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오마이뉴스 - 정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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