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 Amnesty Magazine 2013년 0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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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3-06-14
미디어 Amnesty Magazine

공부란 무엇인가: 2013 정기총회 신영복 교수 강연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 <Amnesty Magazine> 2013년 002호 Interview ‘앰네스티가 만난 사람’

 

20년. 갓난아이가 스무살 청년이 되고, 혹은 그 청년이 마흔의 중년이 되는 긴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언제 나갈지 기약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있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쉽게 상상조차 안되는 일이다. 자의적인 법적용으로 구속되어 1,2심에서 사형까지 선고 받고 양심수로 복역한 신영복 선생님은 앰네스티 탄원활동의 대상이 되는 인권침해 피해자 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월 늦은 밤, 신영복 선생님이 앰네스티 정기총회를 찾아 ‘공부란 무엇인가’ 들려주었다. 감옥에서조차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가 말하는 ‘공부’가 도대체 무엇인지, 미처 총회에 오시지 못한 분들과 지면을 통해 나누고자한다.

 


ⓒ 신영복 교수 강연 ‘공부란 무엇인가’ 2013 앰네스티 정기총회에서

신영복 교수는…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고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지인들에게 보냈던 옥중서신을 묶은 책이다. 독창적인 경지에 오른 서예가로서도 이름 높으며 ‘더불어숲’과 ‘처음처럼’ 등의 서체가 널리 알려져있다.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인간과 사회의 성찰에 대한 소통을 계속하고 있다. 

 


 

오직 신영복 교수의 강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은 그의 서화(書畵)를 함께 보는 데에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잘 알려진 유홍준 교수는 신영복 교수를 귀양살이 중에 서체를 완성한 서예의 대가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등에 비하며 그의 서체를 극찬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신영복 교수가 서사적으로 형상화한 그림들을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문인화(文人畫)”라고 표현했다. 세상에 대한 신영복 교수의 개인적인 성찰을 담은 그림을 만나는 것은 현란하고 세련된 디지털 이미지로 가득찬 여느 숱한 강연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갈함이다.

 

그의 강연은 농기구를 잡고 있는 사람 그림으로 시작했다. 농사짓고, 사냥하고 때로는 전쟁을 하는 모든 행위들이 생산과 연관되어 있으며,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바로 공부’라는 정의로 첫 운을 떼었다. ‘공부’의 한자어 풀이에는 하늘과 땅을 이어 통합적으로 이해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며,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이 바로 공부라고 하였다.

 

한국 사회가 불행한 까닭 중 하나는 교육이 획일화된 성공의 기준에 맞추어 한 줄 세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다른 이들이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특별한 방법으로 달걀을 세운 ‘콜럼버스의 달걀’은 한국 사회에서 ‘발상의 전환’의 대명사처럼 통하며 많은 기업에서 혁신 모델로 이용되었다. 많은 아이들이 콜럼버스를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신영복 교수는 여기에 질문을 던진다. “다른 사람들은 왜 달걀을 세우지 못하였을까요?”

 

좌) '공부'라는 한자어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우) 콜럼버스의 달걀을 다른 시선으로 생각하기 ⓒ신영복

 

신영복 교수는 다른 사람들이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생명에 대한 잔혹한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자기의 정체성을 강화하겠다는 원리에서 나온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자기의 존재를 배타적으로 강화해 나와 다른 것들을 흡수하는 제국주의와 근대주의의 원리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콜럼버스의 달걀’에 대한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콜럼버스가 죽을 때까지 ‘인도’로 알고 있었던 그곳이 실은 ‘신대륙’이 아닌 이미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었음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간과하고 있다.

 

어떻게든 달걀을 세워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증은 청년들을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보단 불안한 미래에 초조해 스펙쌓기에 몰두할 수 밖에 없는 각박한 현실로 내몰았다. 신영복 교수는 이런 현실에 대해 “한 사람이 세속적 의미에서 훌륭한 성공을 했다고 하더라도 청년시절이 없다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며 사회의 청년시절로 비유할 수 있는 대학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꿈과 이상을 창조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취업관문의 역할 밖에 담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꿈과 이상(理想)에 불타는 청년시절의 부재는 절망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신영복

책상 위 공부를 넘어 넓게 그리고 멀리 보아야 한다 ⓒ신영복

 

신영복 교수의 ‘공부론’은 어쩌면 <죽은 시인의 사회>와 통하는 지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밑줄을 긋고 암기하는 것이 공부가 아니라 책상 위에 올라 멀리 그리고 넓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 왜 넓게 보아야 하는가?” 우린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는 ‘감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감옥이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은 갇히지 않았다는 착각을 가지게 하는 정치적인 공간’ 즉, 우리에게 갇혀있는 공간을 보여줌으로 당신들은 갇혀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이를 통해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했던 기준들을 바라보게 된다. 신영복 교수는 감옥에서 만났던 30대 초반의 ‘대의’라는 이름의 친구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름을 듣기로는 부모님께서 큰 뜻을 이루라고 지어주신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서 지어준 이름 같은데 이렇게 살아서 쓰냐” 며 누가 이름을 지어주셨냐고 물었더니, 화를 내며 자기는 고아에 불과했고 단지 버려진 장소가 광주 ‘대의동’의 파출소였다고 한다. 편견과 감옥, 둘 다 갇혀 있다는 의미로 본다면 동일하다. 신영복 교수는 이것이 언어적 편견에 기반해 무언가를 읽으려고 하는 ‘먹물’ 특유의 관념이었다고 자기반성을 한다. 이를 깨뜨리는 것이 바로 진정한 변화라고 그는 말한다.

 

오랫동안 면회가 없던 재소자가 한 명이 있었다. 어린시절 그의 어머니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나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나중에 알고보니 어머니는 재혼한 상태였다. 이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도시를 전전하다 나쁜 짓을 일삼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어머니가 재가한 곳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남매가 있던 집. 그에게 면회를 온 사람은 바로 재가한 어머니 밑에서 커 온 자식이었던 것이다. “왜 내 속을 뒤집으려고 왔냐”고 분노했던 그의 말에 면회 온 남자는 대단히 미안해하며 “만약 당신의 어머니가 내 어머니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당신 자리에 있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올 수 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 신영복

 

머리로 다른 사람을 측정하는 것이 아닌 공감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 그것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고 진정한 공존을 이뤄내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그림자를 추월해야 하는 절박함 속에서 자기 착취를 반복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진정한 사랑을 투여하지 못하고 언제 떠나더라도 별로 상처받지 않을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로 맺어진 수많은 사람들만 우리 곁에 있는 상태라며 사회구조 속에 인간의 뚜렷한 실상이 없다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우리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대부분의 기쁨, 아픔이 관계로부터 온다.관계 속에서 겪는 수많은 사건들과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내 속에 들어와 나를 만든다. 그는 세상을 숲에 비유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잎이 넓고 좁은 나무와 같이, 이렇듯 다양한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듯 함께 어울려 지속 가능한 숲을 만드는 것이 바로 공부가 추구하는 목적이라고 말한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을 잘 읽고 인식한 다음 세상에 잘 적응하려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출 수 없을까, 세상을 보다 인간적인 가치에 맞출 수 없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역설적인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변화시킨 다는 것이다. 공부는 바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에서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켜 숲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라는 말처럼, 신영복 교수는 여럿이 함께 만드는 좋은 세상을 꿈꾸며 ‘얼굴’ 이란 단어의 옛 의미를 알려주는 것으로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얼굴’ 이란 단어의 옛 말은 ‘얼꼴’ 이라고 합니다 ‘얼’은 영혼을 뜻하고, ‘꼴’은 모양을 뜻합니다. 공부는 이 얼굴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멀리가려면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가야 한다. 좋은 세상은 여럿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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