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언어 碩果不食 -‘NEWS+’1998.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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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1998-09-24
미디어 NEWS+


신영복교수가 보내는 편지
새 땅에‘희망의 싹’틔우자

오늘에 되새겨보는 碩果不食
거품 걷고 우리들의 삶 직시해야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가장 소망스러운 언어가 바로 「희망」(希望)이라고 생각된다. 아마 그 다음이 「인내」(忍耐)일 것이다. 인내가 현재의 상황을 무작정 견디는 것이라고 한다면 희망은 견디기는 견디되 곤경의 건너편을 바라보는 것이다. 무작정 인내하기보다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경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수시로 확인된다.

 

절망(絶望)이란 의미가 희망이 없다는 뜻이고 보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희망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희망도 희망나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희망이 단지 소망이나 위안에 불과한 것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다』는 시구를 비롯하여 희망의 언어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수많은 담론 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이 말은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욱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기도 한다. 주역(周易)의 효사(爻辭)에 있는 구절이다.

 

주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점치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점치는 책이었다. 그러나 주역이 제시하고 있는 64개의 대성괘(大成卦)는 하나 하나가 세상만사를 범주화(範疇化)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64개의 범주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곤경을 범주화한 것이 바로 산지박(山地剝) 괘다. 박(剝)은 빼앗긴다는 뜻이다. 이 괘의 모양은 6개의 효(爻) 중에서 제일 위의 단 1개의 양효(陽爻)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음효(陰爻)이다. 그 마지막 남은 1개의 양효마저도 방금이라도 음효로 바뀌어버릴 것 같은 절명(絶命)의 상황이다. 불의(不義)가 만연한 세상에 단 1개의 가느다란 정의(正義)가 가까스로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석과불식이란 말은 이 마지막 남은 1개의 양효를 해석하는 효사에 나오는 말이다. 씨과실은 결코 먹히지 않는 법이며 씨과실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 이 말에서 나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읽게 된다. 수많은 세월을 면면히 겪어오면서 터득한 옛사람들의 유장함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이 괘를 읽을 때마다 고향의 감나무를 생각한다. 장독대와 우물 옆에 서 있는 큰 감나무다. 무성한 낙엽을 죄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만 서있는 초겨울의 감나무는 들판의 전신주와 함께 겨울바람이 가장 먼저 달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겨울의 입구에서 그 앙상한 가지로 서 있는 나무는 비극의 표상이며 절망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앙상한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빨간 감 한개는 글자 그대로 「희망」이다. 그것은 먹는 것이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씨를 남기는 것이다. 나목의 가지 끝에서 빛나는 가장 크고 탐스런 씨과실은 그것이 단 1개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희망이다. 그 속에 박혀 있는 씨는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이다.

 

석과불식이 표상하는 이러한 정경이 더없이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의 언어를 이처럼 낭만적 그림으로 갖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낭만은 흔히 또 하나의 환상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곤경에서 갖는 우리들의 희망이 단지 소망이나 위안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의미로 이 정경을 읽어야 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은 우리들 스스로가 키워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밭을 일구고 씨를 심는 경작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IMF라는 곤경을 당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나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는 박(剝) 괘를 연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진정한 희망을 갖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환상이나 소망이 아닌 진정한 희망을 키워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당면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나는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앙상하게 드러난 나무의 뼈대를 직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성한 잎이 떨어지고 한파 속에 팔벌리고 서있는 나목(裸木)의 뼈대를 직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품이 걷히고 난 후의 우리 경제의 모습을 직시하는 일이다. 비단 경제구조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틀어 돌이켜보는 일이다. 엄청난 외세에 떠밀리고 불의의 폭력에 가위눌리며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는 일이다. 그러한 역사를 살아온 우리들 스스로의 자화상을 대면하는 일이다. 남의 돈을 빌려 살림을 꾸리고 자녀들을 내몰아 오로지 돈벌어 오기만을 호령해 온 어른들의 모습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니었던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든 이 겨울을 넘기고 나면 다시 봄이 오겠지. 이것은 안이한 답습의 낡은 언어이며 결코 희망의 언어가 아니다. 희망은 새로운 땅에 싹트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희망은 새로운 땅을 일구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동토(凍土)에 쟁기를 박아 넣는 견고한 의지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패배할 수 없는 천근의 땅에 씨앗을 심는 각오여야 하기 때문이다.

 

산지박괘의 다음 괘는 지뢰복(地雷復) 괘다. 5개의 음효가 위로 쌓여 있고 제일 밑바닥에 1개의 양효가 싹트고 있는 모양이 복(復) 괘의 형상이다. 글자 그대로 광복(光復)이다. 씨과실 속에 있던 씨앗이 땅 속에서 싹트는 모습이다. 제2의 건국은 이러한 모습이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엄청난 경제적 충격에 더하여 폭우와 무더위로 그지없이 힘든 여름이었다. 이제 바야흐로 가을이다. 그러나 등뒤에 매서운 겨울한파를 거느리고 있는 금년 가을은 우리에게 시련의 시작을 알리는 파발마일 뿐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가을을 잃어버리고 겨울의 한파를 견뎌야 할지 모른다. 그럴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희망의 언어다. 희망을 키워내려는 우리들의 각오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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