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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3-05-13
미디어 한겨레신문

한겨레 창간 25돌 릴레이 기고 ① 생각하는 나라

‘석과불식’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의 언어

 

20130513.jpg

 

정치’(政治)는 평화(治)의 실현(政)이다. 그리고 평화는 오래된 염원이다.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의 궁극적 목표가 평화로운 세상(平天下)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平和)란 글자 그대로 화(和)를 고르게(平) 하는 것이다. 화(和)의 의미가 쌀(禾)을 먹는(口) 우리의 삶 그 자체라면 정치는 우리의 삶이 억압당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정치가 평화의 실현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까닭은 오늘의 정치적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통치(統治)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으며, 정치란 그 통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현실은 정치의 정도를 벗어난 것이 아닐 수 없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일수록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는 법이며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 그런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광화문의 충무공 동상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 정서는 한마디로 ‘불안’이다. 청년, 노년, 취업자, 비취업자를 막론하고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개인의 삶에서부터 국가경영, 세계질서에 이르기까지 그렇다. 더욱 불안한 것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절망이란 전망이 없을 때를 일컫는다. 그럼에도 정치는 희망과 평화를 이야기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의 압도적 정서는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화려한 정치적 언설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사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정치권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투명하지만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반평화(反平和), 반정치(反政治)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의 원칙과 철학을 다시 생각하는 까닭이 이와 같다.

 

우리는 숱한 곤경을 겪어왔고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 서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그로부터 어떤 교훈을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다. 곤경을 겪고도 깨닫지 못하는 곤이부지(困而不知)의 사회가 두고두고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고통과 불안의 원인을 밝히고 그것을 극복할 의지와 희망을 결집해내는 구심이 바로 정치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현실은 이 모든 것의 근본인 신뢰를 얻는 일에서부터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신뢰와 희망의 정치를 만들어 가는 일은 더욱 먼 길이 아닐 수 없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언어 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주역(周易)의 효사(爻辭)에 있는 말이다. 적어도 내게는 절망을 희망으로 일구어내는 보석 같은 금언이다. 석과불식의 뜻은 ‘석과는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과는 가지 끝에 남아 있는 최후의 ‘씨과실’이다. 초겨울 삭풍 속의 씨과실은 역경과 고난의 상징이다. 고난과 역경에 대한 희망의 언어가 바로 석과불식이다. 씨과실을 먹지 않고(不食) 땅에 심는 것이다. 땅에 심어 새싹으로 키워내고 다시 나무로, 숲으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것은 절망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길어 올린 옛사람들의 오래된 지혜이고 의지이다. 그런 점에서 석과불식은 단지 한 알의 씨앗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에 관한 철학이다. 정치의 원칙을 생각하게 하는 교훈이기도 하다. 석과불식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교훈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엽락(葉落), 둘째 체로(體露), 셋째 분본(糞本)이다.

 

 

‘석과불식’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 : 씨과일은 먹지않고 땅에 심는다

 

정치란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사회의 역량을
완성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사람을 키우기보다는
수많은 사람을 잉여인간으로
낭비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람을 다른 어떤 것의
수단으로 삼고 있기까지 하다

 

‘엽락’은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거품과 환상을 걷어내는 일이다. 거품과 환상은 우리를 한없이 목마르게 한다. 진실을 외면하게 하고 스스로를 욕망의 노예로 만든다. 오늘의 정치가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기보다는 도리어 그것을 키우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소유는 끝이 없을 뿐 아니라 좋은 사람,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도 못 된다. 먼저 잎사귀를 떨어뜨려야 하는 엽락의 엄중함이 이와 같다.

 

‘체로’는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나무의 뼈대를 직시하는 일이다. 뼈대란 그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이를테면 정치적 자주(自主), 경제적 자립(自立), 문화적 자부(自負)이다. 정치적 자주는 우리의 삶에 대한 주체적 결정권의 문제이다. 경제적 자립은 위기를 반복하고 있는 세계경제 질서 속에서 그 파고를 견딜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만들어 놓고 있는가를 직시하는 것이다. 경제적 자립기반이 튼튼할 때 비로소 정치적 자주가 가능한 것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문화적 자부는 우리의 문화가 우리들의 삶 그 자체에 대한 성찰과 자부심을 안겨주는 것인가를 직시하는 것이다. 자부심이야말로 역경을 견디는 힘이기 때문이다.

 

엽락과 체로의 교훈은 한마디로 환상과 거품에 가려져 있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구조를 직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삶의 근본을 마주하는 것이다. 포획되고 길들여진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일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분본’은 나무의 뿌리(本)를 거름(糞)하는 일이다. 엽락(葉落)과 체로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분본이다. 무엇이 본(本)이며, 무엇이 뿌리인가에 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과 역사를 지탱하는 뿌리는 과연 무엇인가. 놀랍게도 뿌리가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까맣게 망각하고 있었던 언어, ‘사람’이 모든 것의 뿌리이다.

 

논어에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이라는 글귀가 있다. 무엇을 바르게 하는 것이 정치인가. 뿌리(本)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뿌리가 접히지 않고 바르게 펴질 때 나무가 잘 자라고 아름답게 꽃피듯이 사람이 억압되지 않을 때 우람한 나무처럼 사회는 그 역량이 극대화되고 사람들은 아름답게 꽃핀다. 정치란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사회의 역량을 완성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사람을 키우기보다는 수많은 사람을 잉여인간으로 낭비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람을 다른 어떤 것의 수단으로 삼고 있기까지 하다. 이제는 사람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키우는 일 자체가 불편하고 불필요한 것이 되어 있다. 모든 것은 구입한다. 필요할 때에만, 그리고 잠시 동안만 구입한다. 사람도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엽락, 체로, 분본이 어려운 것은 그 하나하나가 어려운 과제일 뿐 아니라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얽혀 있는 접점이 바로 우리의 분단 현실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분단 현실은 다시 동북아와 세계 정치 질서라는 중첩적 연결고리에 이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분단은 남과 북을 막론하고 정치적 자주성의 가장 큰 장애이다. 그리고 60년 동안 남과 북이 치르고 있는 엄청난 분단비용은 경제적 자립의 최대 걸림돌이다. 비난과 대적(對敵)의 언어는 비단 남과 북 사이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증오와 갈등으로 구조화되어 단 한 줌의 자부심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잊고 있을 뿐 분단이야말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고통과 불안의 최대 진원지이다. 분단의 극복이야말로 정치의 핵심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정치란 평화의 실현임에랴. 참으로 길은 멀고 소임은 무겁다.

 

먼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잊지 말고 챙겨야 할 몇 가지 채비가 있다. 첫째로 ‘길’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길은 도로와 다르다. 도로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속도와 효율이 그 본질이다. 그에 반하여 길은 그 자체가 곧 삶이다. 더디더라도 삶 그 자체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긴 호흡과 느긋한 걸음걸이가 길의 마음이다.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한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영위하는 모든 삶이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동반자이다. 고생길도 함께할 수 있는 길동무가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대단히 불행하다. 신뢰집단이 없기 때문이다. 비단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신뢰집단이 없기는 경제·문화·교육·종교·언론·사법 등 사회의 모든 분야도 다르지 않다.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가 없다면 길은 더욱 아득하고 암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먼 길은 ‘여럿이 함께’ 가야 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승인하는 공존(共存)의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사람의 모든 입장과 이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나는 20년간 갇혀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수많은 만남의 결론은 그 사람의 생각은 그가 살아온 삶의 결론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 속에는 우리가 함께 통과해 온 현대사의 애환이 고스란히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고 또 소통해야 하는 것이다. 평화공존과 소통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정치의 최우선 과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통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통일을 ‘통일(統一)’이라고 쓰지 않고 ‘통일(通一)’이라고 쓰기도 한다. 평화와 소통은 그것만으로도 통일 과업의 대부분을 담아낼 수 있는 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변화(變化)이다. 진정한 화(和)는 화(化)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막히면 변화해야 하고, 변화하면 소통하게 되고, 소통하면 그 생명이 오래간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변화의 의지가 없는 모든 대화는 소통이 아니며, 또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소통이란 진정한 소통이 아니다. 상대방을 타자화하고 자기를 관철하려는 동일성 논리이며 본질적으로 ‘소탕’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하다. 더구나 함께할 동반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동반자는 나 자신이 먼저 좋은 동반자가 될 때 비로소 나타나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원칙과 근본을 지키는 일이다. 혹한을 겪은 이듬해 봄꽃이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우리가 짐 지고 있는 고통이 무겁고 질긴 것이 사실이지만 바로 그 엄청난 무게 때문에 머지않아 ‘평화와 소통과 변화’라는 새로운 정치 전형(典型)의 창조로 꽃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러한 전형은 분단 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뿐만 아니라 나아가 패권적 세계질서를 지양하는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광화문(光化門)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이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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