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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6-01-20
미디어 중도일보_박종평

[시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임박한 죽음 앞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삶을 마무리한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근에는 지난 주말, 하늘로 돌아가신 시대의 사상가, 신영복 선생이 있다.


중국 한나라 창업자 유방의 일등공신이었던 장자방(장량)도 비슷한 경우다. 최고의 자리를 던지며 신선 적송자를 따라가 놀겠다고 선언하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신선처럼 곡기를 끊고 솔잎을 먹으며 살다가 이승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곽재우와 신영복은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법칙을 받아들이되, 자유의지로 마무리했다. 그들의 결단은 삶의 고통에서 패배해 스스로를 던지는 자살자와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각자의 삶의 전장터에서 최선을 다한 뒤에 아름답게 매듭을 지었기 때문이다.


시인 천상병은 <귀천(歸天)>에서 노래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

라.” 삶의 벼랑 끝에서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들은 결코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했던 사람들만이 부를 수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남긴 글씨가 있다. '애기애타(愛己愛他).' 풀어보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하고, 그런 뒤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 쯤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가끔씩 잊고 있던 이야기, 어쩌면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말이다.


필자는 이순신 장군이 남긴 글과 흔적들을 오랫동안 읽고 사색해왔다. 어느 순간 '애기애타', '귀천',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그의 삶을 만든 핵심인 듯했다.


평시든 전시든 그는 자기 자신을 지독히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 사랑이 넘쳐 어머니와 가족, 이웃과 이 땅까지 사랑했다. 게다가 침략자를 죽임으로 응징하면서도 그들의 아픔까지도 사랑했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아들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사랑을 신영복이 차디차고 암울했던 감옥에서 쓴 엽서의 한 구절에서도 만날 수 있다.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 부모를 또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事後)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이순신도 자신에 대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을 생활속에서 매일매일 경작하면서 가장 위대한 능력을 키웠다. 사랑의 경작의 결과물이 그의 역사적 소명이었다.


그는 나라를 구해야 하는 소명을 받아들였고, 후회 없이 선택했다. 나라의 북쪽 끝 함경도를 호시탐탐 노리던 여진족의 화살도, 남쪽 끝에서 만난 수 천 년 이래 최대의 침략자 일본군의 총탄도 그를 막지 못했다. 사랑에 목맨 사람, 소명을 알았고, 선택한 사람이었기에 피 냄새가 배인 삭풍에, 핏빛 바닷물에 두려움을 던졌다.


그도 인간이었기에 때로는 하늘을 원망하며 울부짖기도 했었다. “하늘이 어찌 이리도 매정할 수 있느냐. 간담이 타고 찢어졌다. 타고 찢어졌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하늘의 이치가 아니냐. 그런데도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치가 어찌 이렇게 어긋날 수 있느냐.” 일본군의 칼에 막내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을 향해 일기를 썼다.


그럼에도 하늘이 준 소명을 따랐고, 운명을 선택했다. 7년 동안 이 땅을 유린한 일본군과 결전을 앞둔 1598년 11월 18일 밤 12시쯤, 하늘에 기도했다. “이 원수를 무찌를 수만 있다면, 이 몸이 죽을지라도 하늘에 그 어떤 서운함도 없을 것입니다.” 기도처럼 일본군을 물리쳤지만, 자신의 목숨을 하늘에 바쳐야 했다. 총탄에 맞은 순간, “지금 싸움이 급하구나. 내가 죽었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마라.”라며 끝까지 자신의 사랑에 충실했고, 사명을 다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비친 새벽의 동녘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는 천상병의 노래처럼 귀천했다.


한 시대 사상가의 귀천, 이순신의 귀천 순간을 돌아보며, 지금의 삶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 자세를 다진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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