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할 때 - 성공회대 제1회 교사아카데미 - 격월간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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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할 때


자갈은 저희들끼리 부딪치며 다듬어진다.

안녕하십니까? 딱딱한 얘기가 될 것 같아서 옛날 얘기 하나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방학중에 1월 1일날 등교를 했습니다. 조회를 마친 다음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우리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새해를 맞이하는 느낌을 1번부터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13번이었던가 그랬는데 제 차례가 되어서 저도 한마디 했습니다. 아마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겠다는 얘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순서가 30번쯤 되는 학생이었는데, 우리 반에서 공부도 별로 잘 하지 못하고 학교에 왔는지 안 왔는지 별로 눈에 띄지도 않던 한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는 왜 1월 1일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세월이란 물처럼 마냥 흘러서 지나가는 것인데 왜 1월 1일이라고 이름을 붙이는지 모르겠다는거예요.그 얘기를 듣고 제가 큰 충격을 받았지요. 속으로 '내가 저 얘길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거예요.(모두 웃음) 내가 저 얘기를 해야 하는데, 나보다 공부도 못하는 저 녀석이 저런 멋진 얘기를 하다니.......

그 다음에 또 충격 받았던 일이 있었는데요, 그 친구 때문은 아니었고, 아마 한 학년 더 올라가서일 거예요. 새 학년이 되어서 분단을 나눌 때였습니다. 농구 시합하기 전에 선수가 소개받듯이 선생님이 "아무개 1분단"하고 호명을 하면 박수를 받으면서 1분단 줄로 뛰어들어가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제 이름이 불리면 같은 분단원들로부터 제법 큰 박수를 받을 줄 알았는데 별로 박수를 못 받았어요. 그런데 공부도 별로 잘 못하는 한 친구가 몇 분단이라고 호명되자 그 분단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늦게까지 남아서 청소를 제일 열심히 하는 친구였어요. 그런 충격을 제가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 받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남아서 청소도 열심히 하고, 또 딴에는 철학적인 생각도 하면서, 세월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고 사람들이 말뚝을 박아서 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 생각하는 흉내를 내기도 했어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선생님들의 얘기가 학생들에게 충격이 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의 이야기, 후배들의 이야기, 또래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충격적이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흘러가는 세월 이야기도, 그 얘기를 선생님이 했더라면 저한테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을 거예요. 선생님이니까 으레 그런 이야기 하는 거겠지 했겠지요. 여기 오신 분들이 대개 교사이시거나 교육에 관련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가,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으로부터 배우고 어떻게 그것을 자신 삶 속에서 간직하고 키워나갈 것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희들끼리 배워라'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예전 6.3사태 때 울산의 어느 어촌에 피신가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울산은 아주 시골이었어요. 달리 할 일도 없이 하루종일 자갈이 길게 깔린 바닷가에 혼자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주 예쁘고 둥근 자갈들이 해변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습니다. 누가 일부러 깍은 것이 아닌데도 둥글고 윤이 나는 아름다운 자갈해변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아름다운 돌로 다듬어지는 과정이 그랬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면서 그 해변에 있던 자갈들을 들었다 놓는 거예요. 그러면 자갈들은 자기들끼리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다시 가라앉아요. 또 다시 파도가 밀려오면 다시 잠시 파도에 들려 올려졌다가 자기들끼리 몸을 부대끼면서 가라앉습니다. 서로 부대끼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자갈들이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가장 좋은 배움은 바로 자기들끼리 부대끼며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다만 파도처럼 잠시 들었다 놓아주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의 아들로 태어났고, 지금 저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교육이라든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은 바로 그런 생각 속에 있습니다.

몸소 떡을 썰어 보여주듯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지요. 정확한 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맹자 어머니가 집을 옮겼지요. 공동묘지 부근에서 시장으로 그리고 다시 서당 옆으로 이사를 한 것이지요. 집이 공동묘지 옆에 있으니 맹자는 날마다 상여 지나가는 흉내만 내길래 시장으로 이사를 가지요. 그랬더니 이번엔 날마다 장사꾼 흉내만 내기 때문에 안되겠다 싶어서 서당 옆으로 이사를 갔더니 그제서야 글공부를 하더라는 것이지요. 현모의 전형같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그 정도면 미리 알 수도 있었을 법한데 알지 못하고 나중에야 깨달아서 두 번씩이나 이사를 다니다니,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보다 저는 한석봉 어머니가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한석봉 어머니는 공부를 마쳤다는 한석봉과 내기를 했지요. 불을 끄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자기는 떡을 썰고 한석봉은 붓글씨를 쓰게 했지요. 저도 붓글씨를 써봐서 아는데 이 내기는 사실 좀 불공평한 데가 있어요. 컴컴한 데서 글쓰는 것보다는 떡 써는 것이 좀 유리하긴 하거든요. (모두 웃음) 어떤 점에서 한석봉의 어머니가 맹자 어머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바로 자기가 몸소 보여줬다는 데에 있습니다. 자기 삶의 일부를, 자기 스스로의 능력을 자식에게 보여줬다는 것이죠. 이크 안되겠다 싶어서 데리고 옮기는 것이 아니라, 깜깜한 어둠 속에서 떡을 썰어서 그 가지런한 떡을 불을 켜고 보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설득력 있는 교육행위라는 것이죠. 요즘 어머니들이 엄청난 사교육비를 지출해가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차라리 떡이나 썰어서 보여주지 뭐하려고 저렇게 비싼 돈을 들이나 싶은 생각을 해요. (모두 웃음) 조약돌이 끊임없이 자기들끼리 부딪쳐 다듬어지듯이, 선생님은 아이들과 직접 부딪치기보다는 차라리 아이들 저희끼리, 선후배끼리, 친구들끼리 서로 부딪치도록 들어주고 끌어주는 파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주입하려고 하기보다는, 깜깜하고 구석진 곳에서 자기 삶의 일부를 직접 보여주는 그런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선생님들이 교육이라든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기 삶이 과연 그 시대, 그 역사에서 어떤 정당성을 갖고 있는가, 이 문제를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들이 강의실에서 수많은 정보를 학생들에게 넣어주는 것보다는 삶에 대한 이러저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 삶이 사회·역사적인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사회·역사적인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성실하게 사는 것을 보여준다, 정직한 것을 보여준다, 저로서는 그런 태도가 세상 살아가는데 별로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역사의식, 이런 것들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직과 성실은 그러한 토대 위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고 봅니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세우려는 그런 노력이야말로 구체적인 사랑이 담긴 노력이 아니겠는가 생각해요.

IMF 사태의 본질

그런 맥락에서,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이 사회·역사적인 조건은 어떠한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최근의 IMF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성격 규정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이 먼저인 것은 사실입니다. 제3공화국 이후 매진해 온 경제성장 정책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3공 이후가 아니라 해방이후 일제하의 왜곡된 근대화 과정에 대한 자기 규명이 있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국제경제환경과 세계경제에서 우리 경제의 위치를 정확히 자리매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IMF 사태를 맞아 신속한 IMF 체제 졸업이라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전시키는 한, 그리고 근검절약, 외화절약, 수출증대 등 지금까지의 정책 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진정한 경제난국의 이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제금융이란 것도 그렇습니다. '구제금융'이라는 말이 맞는 조어입니까? 한마디로 IMF는 구제의 주체가 아닙니다. IMF 급전으로 빌려 쓰는 거지요. 금융은 구제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IMF 자금, 그것도 미국 금융자본이 주축이 되어 있는 단기 고리채를 급전으로 빌려 쓰는 겁니다. 구조조정이라는 것 역시 그렇습니다. 채무상환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금융자본의 투자 투기 대상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흑자기업의 자리를 겨냥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IMF 사태의 본질 아닙니까? 그런 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아무리 성실하고 정직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당대 사회의 문제와 역사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면 이것은 굉장한 허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선생님들이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MF 사태를 정책대응의 과오로 설명하거나 관료제도의 타성이나 무능과 결부시켜 이해하는 방식은, 필요는 하지만 진정한 논의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임을 따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전에도 이러한 경제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한 분도 있었고 단기적인 외채관리 문제에 대하여 우려를 제기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항상 소수 의견으로 경시되었지요. 마치 야구장에서 축구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요. 지금은 그 당시에 논의가 불가능했던 담론을 광범하게 제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시간에 많은 얘기를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냉전구도가 청산되면서 평화로운 세기를 예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갈수록 증가되던 핵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 많은 무기 제조에 바쳐지던 자원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또는 권위주의적 정권이 이제는 나타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등등의 여러 기대를 했는데요, 그러나 그런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이 IMF사태는 그런 점에서 미국의 패권주의가 벌이는 또 하나의 '운양호사건'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고 봐야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월가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자본의 문제이며 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의 운동방식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미국에 갔을 때 하버드 대학에서 거기 오래 계시는 교수들과 제가 준비한 여러 가지 질문을 가지고 아주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결론적으로 미국의 정치적 결정은 역시 월가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자본의 논리가 관철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미국 정부, 미국의 패권주의라는 것은 곁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이고, 오히려 금융자본의 운동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합니다. 금융자본이 지금까지 열중했던 분야가 바로 M&A입니다. 인수합병입니다. 사과를 팔고 사는 사람보다는 자동차를 팔고 사는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벌고, 자동차를 팔고 사는 사람보다는 자동차 생산라인 공정을 사고 파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법니다. M&A가 바로 그런 겁니다. 축적된 금융자본, 축적과정은 엄청난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호박이 한번 구르는 것과 참깨가 구르는 것이 엄청난 차이가 있듯이 과도한 금융자본이 새로운 투자 투기 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본의 필연적인 생리입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그 단적인 현상형태지요. 이러한 문제에서 우리는 굉장한 위기 국면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은 억제된 공황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IMF 관리체제하에 놓였습니다. 이런 시점에 뭔가 그래도 인간다운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 계신 선생님들은 바로 그런 고민을 하시는 선생님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무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지금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할 때

저는 이런 시기에 오히려 조용하게, 조용히 문닫고 좀 근본적인 생각을 돌이켜 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겅제성장에 대한 무제한적인 환상을 반성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욕망 그 자체를 생산하는 경제성장과 자본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물론 경제학에 관련된 논의입니다만, 그러한 반성을 기본적인 과제로 삼고 그것과의 연관하에서 일상적인 우리 생활 현장을 재조명하는 일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심히 영위해 왔던 일상적인 일들의 사회적인 의미를 탐색해보는 그런 일들을 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것을 교실에서 직접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여러분이 알고 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알고 떡을 썰어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떡을 썰어야 할지 소시지를 썰어야 할지, 그것을 여러분이 선택하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 인격의 성장을 돕고 그 인격이 정말 상처받지 않고 좌절하지 않게끔 도와주는 교사라면, 그들이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해갈 사회에 대하여 정당한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들께서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교실의 언어가 아니라 삶 속에서 생활의 주제로 제시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무제한적인 팽창, 거대한 자본축적, 이런 운동 방식이 결국은 자기 모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과도한 금융자본의 순환은 어차피 비정상적인 과정으로 치달릴 수밖에 없으며 축적의 누적은 계속되기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건 10개를 만들었는데 3개만 분배하고 7개를 내가 가졌다고 합시다. 내가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7개는 현물 형태거든요. 그것이 라면이든 자동차든 제가 7개를 다 소비할 수 없는 것이지요. 초과분을 팔 수밖에 없지만 팔 수 있는 것은 3개입니다. 팔리지 않지요. 총수요에 있어서 절대적인 부족(shortage)에 봉착합니다. 이게 바로 과소소비론인데, 이건 자본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아주 지엽적인 이론입니다만, 아주 작은 예만을 드는 겁니다. 금융자본운동은 이러한 모순을 누적해가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최근에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관련하여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논의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발전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견해가 소수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문화와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논의되던 소위 '유교 자본주의'에 대한 기대를 거두는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자본주의의 더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지요. 그 의견을 듣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옛날에 여러분은 잘 모르실지 몰라도 앙골라 토끼가 있었어요. 아주 훌륭한 모직물의 원료가 된다고해서 한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많은 농촌 사람들이 너도나도 빚을 내어서 앙골라 토끼를 분양 받으려고 줄을 섰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앙골라 토끼는 모직물 원료로 될 수 없었습니다. 밍트보다도 못하고, 직접 모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것이 밝혀진 것이지요. 그러나 앙골라 토끼를 중간 업자에게 넘긴 최초 분양자들은 돈을 벌었어요. 다음 단계의 업자들에게 분양할 수 있었던 중간업자도 돈을 벌었습니다. 맨마지막에 토끼를 분양받았던 농민들만이 그 손해를 안아야 했습니다. 앙골라 토끼와 함께 불꺼진 토끼장에 앉아 있는 처지가 됐어요. 마찬가지로 생각해 봅시다. 공업화와 근대화, 그리고 자본주의화의 과정이 저는 앙골라 토끼의 분양과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네 마리 용'에 대한 최근의 부정적 전망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지금 정확한 규모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아주 공격적인 국제환금융 투기자들이 굴리는 핫 머니(hot money)가 약 35조 달러가 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입니다. 이것이 일개 국민경제를 대상으로 삼으면 얼마든지 붕괴시킬 수 있는 규모라고 합니다. 우리가 경제위기 국면을 맞아서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점을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하여튼 우리는 거대한 국제적 환경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것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바로 우민화의 문제입니다. 제가 로마에서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에 대해서만 글을 썼습니다. 로마제국은 콜로세움 때문에 붕괴한 것이라고 썼습니다. 빵과 서커스로 대표되는 로마 시민들의 우민화의 이야기였어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제국의 역사에서도 그 제국의 붕괴는 대중들의 우민화가 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거대한 피라밋이 붕괴되는 결정적인 원인은 피라밋의 하부가 우민화되기 때문입니다. 하부가 무너지면 피라밋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IMF 사태를 직면하기 전까지 달려왔던 과정이 무한한 욕망의 생산과정에서 탐닉해온 우민화의 문화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자본주의 문화만큼 대규모로 우민화하는 문화는 일찍이 없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나 여러분도 이미 상당한 정도로 우민화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와 소유와 성장에 대한 신화적인 신뢰와 동경을 바탕에 깔고 있는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하는 일이 오늘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도꼭지 3백 개를 낳는 체제 제가 있었던 교도소의 이야기입니다. 10개 방이 있는 사동 복도입구에 세면장이 있고 세면장에는 수도꼭지가 6개 있습니다. 그런데 6개 꼭지 중에서 2개만 남기고 4개는 아예 수도꼭지 돌리는 손잡이를 빼버렸어요. 재소자들이 물을 낭비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후부터 수도꼭지의 손잡이가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손잡이만 가지면 자기만 편리하게 쓸 수 있거든요. 다시 손잡이를 꽂아 놓으면 없어지고 꽂아놓으면 또 없어졌습니다. 이번에는 꽂혀있던 2개의 꼭지마저도 관리 교도관이 빼어서 보관을 하고, 사용할 때마다 꼭지를 받아가서 사용하고 반납하도로 했습니다. 그 후 교도소의 공장, 직원화장실 등 이곳 저곳의 수도꼭지가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재소자들이 개인적으로 꼭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10개 방이 있는 사동 전체에 있는 수도꼭지의 숫자가 아마 20개는 넘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수도꼭지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버터나 런닝·팬티 같은 것과 교환되기도 하고 신세 많이 진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20개가 넘는 수도꼭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물은 계속 부족하고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식이라면 도대체 몇 개의 수도꼭지가 필요한가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각 방의 재소자들이 자유롭게 물을 쓸 수 있으려면 1인당 1개씩 150개, 그리고 예비로 1개씩 150개, 자그마치 300개가 필요했습니다. 6개만 있으면 될 수도꼭지가 300개가 필요하게 된다는 계산이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교도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바로 '300개의 수도꼭지'를 만들고 있는 사회입니다.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제 경우에도 옷장을 열어보면 평생 옷을 안 사도 될만큼 옷이 있어요. 여러분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예요. 옷을 옷으로만 입는다면 아마 다시 사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옷을 소유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출퇴근 인구를 200만이라고 할 경우 출근 200만, 퇴근 200만, 한시간씩만 잡아도 하루에 400만 시간을 출퇴근으로 소비합니다. 일일 8시간 노동으로 환산한다면 무려 50만 노동일이 출퇴근 시간으로 소비되는 겁니다. 물론 출퇴근 시간을 제로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거대한 낭비가 매일 행해지고 있습니다.

거대한 우민화의 파도 속에서

이야기가 너무 지엽적인 곳으로 흘러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거대한 우민화의 파도 속에서, 그래도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좀더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일입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떡을 썰 듯 정확한 이해를 키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정말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합의해낼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가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이글은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이 주최한 제1회 교사아카데미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녹취한 글로 격월간 '처음처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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