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삶의 철학 펴는 신영복 교수 - 중앙일보 1998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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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1998-08-24
미디어 중앙일보_이경철 차장

 

[월요 인터뷰]삶의 철학 펴는 신영복 교수


"이곳은 암울하고 부질없었던 강물의 시절을 뉘우치는 각성의 자리이면서 이제는 드넓은 바다를 향해 시야를 열어가는 조망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나는 마지막 엽서를 당신이 내게 띄울 몫으로 이곳에 남겨두고 떠납니다."

땅길로는 더 이상 못 나갈 강화도 철산리에서 신영복 교수 (57) 는 이런 글을 띄우며 본지 독자들에게 25장의 국내엽서를 일단 마감했었다. 바다 위에 무수한 색종이를 희망처럼 날리는 예쁜 그림과 함께. 나직이 속삭이는 다정다감한 글과 깨물고 싶은 어린애 볼처럼 순정한 그림은 '더불어 숲' 등 책으로 출간돼 30여만 독자들에게 성찰과 각성, 그리고 전망을 주고 있다. 세상은 뒤숭숭하고 삶은 갈수록 고달프다.

그런 세상과 삶에 대한 사심없는 비판적 지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그립다. 그래 申교수를 찾았다.

 

- 요즘 초청강연 등으로 바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단체에서 무엇을 듣겠다고 요청해옵니까.

"사회단체와 대학 등에서 요청이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가급적 외부활동은 삼가려 합니다. 더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부탁합니다.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경제는 물론이고 교육.환경.가정 등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불편과 고통의 원인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IMF상황으로 상징되는 충격적인 현상들에 대하여 그 현상을 낳는 본질적 구조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없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말 목이 탑니다. 이 갈증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합니까.

"이유없이 질책하고 연민을 보내기보다 패배한 이유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봉합하려는 노력에 앞서 무슨 병인가를 밝혀내는 작업이 먼저라야 합니다.
역사가는 지나간 시대의 실상을 밝히고 정리하는 책임을 지지만 지식인에게는 당대에 그것을 드러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지식인 개개인의 견해도 중요합니다만 개별적인 의견보다 많은 지식인들이 공동으로 합의하고 확실한 방향을 세운 의견, 즉 사회적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

 

- 때늦은 질문입니다만 통혁당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의 심경은 어떠했습니까. 또 감옥생활 20년을 어떤 자세로 보냈습니까.

"죽음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어느 개인이 맞이하는 삶의 최종적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형을 언도받았을 당시는 젊어서 그랬습니다만, 감히 비교한다면, 해전에서의 충무공의 죽음을 그의 일관된 삶의 훌륭한 완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척박한 식민지에서 태어나 포악한 군사정권에 항거하다 총살형 당한다는 것 역시 당시의 언어로는 완결구조를 갖는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낭만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물론 한편으론 쓸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 공부해야 할 것이 아직 너무 많은데…. 하는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지요.
그러나 죽음은 나 개인의 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형제.친구들에게 깊은 슬픔을 남겨 함께 함몰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그런 낭만적인 정리가 한없이 관념적이고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에 대한 각성이 그후 오랫동안의 수형생활을 통하여 존재론에 대한 반성과 관계론에 대한 모색의 출발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관계론의 기본은 자기자신에 대한 반성과 타인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여러가지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조는 양심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양심은 한마디로 타인에 대한 이해이며 타인에 대한 관심입니다.
타인과의 생활이 적라라하고 밀착된 수형생활에서 그러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기억됩니다. 그리고 이념적인 사람보다 양심적인 사람이 더 강한 사람이라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심적인 사회가 강한 사회라는 믿음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20년만인 88년 나와서 본 지난 10년간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제가 출소한 때가 88년입니다. 올림픽의 도도한 열기속에서 출소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IMF한파속에서 10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출소 당시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세상 참 많이 변했지' 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묻는 사람들에게 선뜻 대답할 수는 없었습니다.
수많은 교량과 높은 빌딩들, 그리고 화려한 의상 등 변한 것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구조는 내가 들어간 20년전과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개인이나 사회를 판단할 때 겉이 아니라 내면을 보아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은 그 완고한 내면구조가 지금 IMF한파를 불러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88년이래의 도도한 열기는 어쩌면 거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못한 지식인의 책임도 반성되어야 합니다."

 

- 옥중에서 가족들에게 띄운 편지와 96년부터 국내외를 여행하며 본지 독자들에게 띄운 '엽서' 가 많은 깨달음과 성찰의 공간을 주며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명문이란 평을 듣습니다.선생님은 글을 쓸 때 무엇에 가장 힘을 기울입니까.

"저는 힘든 세월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 글로써 또 다른 부담을 지우려 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에게 단호한 결심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세상 살아가다보면 단호한 결심이 쉽게 무너지는가 하면, 우연한 깨달음이 튼튼한 기둥으로 자라 좋은 삶을 지탱시켜줍니다.
나는 글에서 우연한 깨달음의 여백을 남겨두려고 합니다.
나는 내 글에서 독자들이 나의 생각에 심취하기보다 자신들의 생각에 되돌아가기를 원합니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각자의 잠재의식까지 읽어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는 단어 하나 고를 때도 독자들이 그 말을 통해 무엇을 연상할까를 생각해서 쓰려고 합니다.
그러한 배려가 독자와의 공감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제자신의 일에 있어서도 항상 70%만 채우고 나머지 30%는 여백으로 남겨놓으려고 노력합니다. 글에서 남겨진 30%의 여백은 독자의 몫입니다. 이 여백을 통해 독자와 나의 창조적 공감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 건국 50주년을 맞아 제2의 건국운동을 펼치자고 합니다. 이 운동을 어떻게 보시고 다시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제2의 건국은 적절한 표현입니다. 그것은 제1의 건국이 바람직하지 않게 이뤄졌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단독정부.일제 미청산.비민주적 권력창출 등 제1건국은 결정적 결함을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의 연장선상에 비자립적인 사회구조와 문화가 결과적으로 고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해방이 우리가 쟁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싸운 사람들마저 배제된 채로 건국되었다는 사실이 자주성 상실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이 모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2의 건국이 필요합니다. 물론 문민정부.국민정부도 독재정권과 싸워서 얻어진 것이란 건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권창출 이후를 보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그 이유가 없어져 버립니다. 현정권은 어떤 역량을 기르고 연대할지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제2건국의 기본구상입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합니다.우리는 이것만큼은 분명히 하겠고 이것밖에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분명히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의 변화에 맞추고 우직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한테 맞추려 합니다. 세계화 이데올로기에 편성하려는 지혜로운 선택보다는 자주적인 건국으로 나아가려는 우직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금이야 말로 발빠른 타협적 지혜보다 우직한 삶이 필요합니다.이런 우직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연대해 숲을 만들어 간다면 세상을 위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엽서를 띄워 주시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 미뤄볼 때 고통이 견디기 어려운 까닭은 혼자서 짐져야 하는 외로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인칭의 고독함이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고독함이 고통의 속성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여러 사람이 동시에 고통을 겪는다면 비록 그 무게가 동일한 것이라 하더라도 훨씬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우리가 현재 처하고 있는 어려움을 견디는 방법도 그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


▶ 게 재 일 : 1998년 8월 24일 10面(10版)

▶ 글 쓴 이 : 이경철 문화부 차장

▶ 시리즈명 : 월요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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