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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08-08-21
미디어 헤럴드경제 민병문주필

[경제광장]신영복 교수가 보낸‘바늘’


헤럴드경제 2008.8.21





언론은 나침반

전율하는 바늘은 정론

그 바늘이 떨림을 멈출때

언론균형은 사라진다


  200808210103.jpg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 최근 만남이 잦아졌다. 성공회대학 신영복 명예교수 얘기다. 대학 동기이지만 이질적 삶 때문에 소원했다가 또 한 사람 갸륵한 친구 김승만 회장 덕분에 올 들어서만 대여섯 번 만나는 꼴이다.


그는 확실히 사상가에, 서예가에, 미문가답다. 말하는 것은 잔잔하나 힘이 있다. 속이 꽉 찼다. 혹시 그의 20년 옥살이 전력 때문에 너무 강한 말이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우려하던 사람도 일단 만나보면 저절로 온유해짐을 느낀다. 그가 쓴 글을 읽을 때 서정적이면서도 뭔가를 생각게 하는 힘이 우러남과 비슷하다.


이는 좌파정권 10년에 나 홀로 우파 소설 ‘디스토피아’를 집필하는 등 외로운 싸움을 하던 같은 대학 동기 홍상화 작가의 외유내강 면모를 연상시킨다. 부드럽되 직관은 남달리 강한 것 같다. 예컨대 지하철의 평균 승객탑승시간이 20분쯤 된다거나 어느 자리 앞에 가 서있으면 곧 앉을 수 있다는 따위 감각은 아무나 갖지 못한다.


심지어 새 죄수가 입소하면 그 얼굴만 보고도 형기를 알아맞힌다는 것이다. 5년 정도 독방 면벽명상 끝에 얻어진 결과라니 아무나 흉내 못 낼 일이다. 과거 만났던 수많은 사람이 자기 안에 들어와 자기를 구성할 정도면 그런 직관을 얻게 되는지 모른다.


지난 4월 신 교수는 상을 하나 받았다. 고전 연구와 우리 예쁜 글씨를 보급하는 데 기여했다는 명목이다. 이때 그의 수상소감도 일품이다. 사회에 나와 평생 벌만 받다가 난생 처음 상을 탄다고 했다. 그동안 그의 저서는 ‘더불어 숲’ ‘나무야, 나무야’ 등 베스트 셀러 대열에 낀 게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 상 한번 못 탔다니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상금을 그 자리에서 봉직하던 대학 인문학부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시상식이 끝났을 때 그가 김 회장과 내가 앉은 자리에 왔다. 내게 줄 선물을 김 회장에게 맡겨놓았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김 회장이 빙그레 웃으며 며칠 내로 표구까지 해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신 교수가 나를 위해 서예 작품 하나를 마련한 모양이다. 감옥에서 갈고 닦은 그의 서예 솜씨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나는 황감했다.


그러나 막상 선물을 받아 펼치고 났을 때 다소 기대와 어긋났다. 불그스름한 별 하나가 하늘 꼭대기서 빛나고 그 밑에 찌를 듯이 검정색 꼬챙이가 받치는 평범한 그림, 어린아이 데생 연습 같기도 했다. 그 옆에 또 웬 글씨가 그처럼 빼곡히 씌어 있는가. 일단 접어서 책상 뒤에 밀어놓았었다.


별 할 일 없는 일요일 오후, 문득 그림 생각에 다시 한 번 꺼내보기로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차분히 글씨까지 무슨 소리를 썼는가 읽어본다. 처음에는 무심히 잘도 읽혀져 나갔다. 그저 그런 소리 아닌가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내 뒤통수가 한 대 먹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나에게 날린 직격탄이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습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중략)…/만일 그 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니까/


평생 언론인임을 자부해온 내가 이 글을 보고 왜 당황하는 것일까. 신 교수는 굳이 내게 이런 선물을 주는 이유가 뭘까. 이 글이 은유이며 상징임은 자명하다. 지남철, 다시 말해 나침반은 언론인을, 전율하는 바늘은 언론인의 정론을 위한 몸부림, 정의의 펜 끝이다.


나는 과연 정론을 향한 전율을 그동안 얼마나 심각히 해왔는지, 중간 중간 멈춘 일은 없었는지, 앞으로 전율을 계속할 자신은 있는지 갖가지 상념에 젖어들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내게 이런 식의 은유를 보낼 수 있는 대학 동기가 있다는 게 감사했다. 사상과 이념의 다소 차이는 상관없다. 본질이 문제다.


신영복 교수의 또 하나 출판기념회가 27일 열린다. 만화 같은 군사독재 시절 소재를 담은 책 ‘청구회의 추억’이다. 거기 가면 이번에는 내 아팠던 뒤통수를 보듬을 위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해럴드경제 - 민병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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