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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석양의 북한강에서



비교적 징역 초년의 일입니다만 밤마다 바깥세상에 관한 꿈을 꾼다면 몸은 비록 갇혀 있더라도 꿈을 꾸는 시간만큼은 감옥을 벗아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적어도 징역의 반은 바깥에서 사는 셈이 되리라고 자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바깥세상에 관한 꿈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여 아마 사오 년이 지나고 난 후부터는 꿈속에서 마저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꿈은 역시 당신의 말처럼 그림자였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강가에 앉아서 서울에는 없는 저녁으스름을 기다리고 있다가 문득 그 때의 꿈을 생각합니다. 노을에 물든 수면에 드리운 수영(樹影)과 수면을 가르는 청둥오리들의 조용한 유영(遊泳)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물에 비친 그림자는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지나는 바람에도 쉬이 깨트려지는 지극히 얇은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그 속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그 때의 꿈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러한 그림자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환상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뛰어난 영상미학의 천재가 아득한 미래의 ET와 먼 과거의 공룡을 우리들에게 안겨준 바 있습니다. 비단 ET나 공룡만이 아니라 전자정보 미디어의 급속한 발전이 우리들에게 펼치는 가상공간(cyber space)의 세계도 그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세계는 이제 우리들의 가까운 곳에 다가와 있습니다. 바로 안방의 탁상에서부터 방문열듯 쉽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보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우리의 삶은 통째로 이 도로 위를 질주하게 되리라는 예단마저 없지 않습니다. 고속도로위로 달려오는 엄청난 양의 정보는 ‘불확실성’을 줄여주고 우리의 세계를 무한히 확대해주리라고 기대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보고속도로는 모든 ‘거리’를 제거함으로써 우리의 생활방식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감각ㆍ취미ㆍ사상까지도 바꾸어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이러한 변화에 관하여 ‘거리’의 제거가 ‘인간관계’ 마저 제거함으로써 결과하게 될 소통(疏通)의 경색을 우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로를 달려 마침내 도착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더욱 걱정하였습니다.
오늘의 첨단과학은 인간이 어디로 향하여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인간의 정체성(整體性)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없는 한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기술에 불과하다는 당신의 극언에 공감합니다.

고속도로위를 숨가쁘게 달려 도달하는 곳은 물론 ‘정보’와 ‘가상의 공간’입니다.
그 곳에서 만나는 정보와 공간이 설령 그 내용에 관여할 수 있는 소위 쌍방향(interactiv)의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오히려 그러한 착각을 심화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상현실을 주관속에 창조하고 이를 상대하는 간접경험의 세계는 현실의 긴장으로부터 도피하게 하고 현실을 방기하게하는 엄청난 지배구조의 말단에 단 하나의 칩(chip)으로 매달리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른바 소외(疏外)의 어떤 극치입니다.

우리는 이미 상품생산사회에 만연한 허위와 가상의 물신구조(物神構造)속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언어재(言語材)와 의상에 의한 자기표현도 본질적으로는 가상의 문화입니다. 그것은 분장과 디자인에 의하여 자기자신을 건설하려는 그림자의 문화입니다. 한마디로 표면(表面)에 대한 천착입니다.
그것은 껍데기이기 때문에 결국 변화 그 자체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는 악순환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지의 변화로 현실의 변화를 대체해버리는 거대한 정치공학을 실감케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품미학은 그 기능에 있어서 자본순환의 첨병(尖兵)입니다. 이러한 미학에 포섭된 감성은 그것이 아무리 새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결코  전위(前衛)역량으로 발전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단 하나의 가능성으로 기대하던 저항성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지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항성에는 그 저항의 근거지가 먼저 요구되는 법이며 그 근거지가 개인의 경우 바로 자기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근거지가 없는 저항성은 결국 후기모더니즘의 무정향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릅니다.

나는 해저무는 물가에 앉아서 당신의 우려를 다시 한번 상기합니다.
자기가 땀흘린 것이 아닌 것으로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고 하는 우리시대의 집단적 증후군은 기본적으로 환상이고 그림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생활은 스스로 자기의 길을 만들어나간다’는 짧은 시구를 당신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아침이 되면 간밤의 꿈을 세숫물에 헹구어내듯이 삶은 그 투박한 질감으로 우리를 모든 종류의 잠에서 깨어나게 할 것입니다.
인적이 없는 이곳 강변에도 어느덧 해가 지면서 수면위의 모든 그림자도 사라지고 없습니다. 끝으로 어느 연기자의 ‘갈채와 통곡’에 관한 당신의 이야기를 다시 상기시키며 이 엽서를 마치려 합니다.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와 함께 막이 내리면 그는 홀로 분장실에 남아 통곡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그의 통곡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갈채는 그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바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그는 통곡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왜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하고 무대위의 그림자를 살고 있는가?’ 이것이 통곡의 이유였다고 하였습니다.  
텅 빈 분장실에 홀로 남아 쏟아내는 그의 통곡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통곡은 그를 인간으로 세워놓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깥에서 얻어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서 씨를 뿌리고 가꾸어야 하는 한그루 나무인지도 모릅니다.
옛 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鑒於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곧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鑒於人)’.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업속에 자신을 세우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 보기를 이 금언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어깨동무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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