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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동상 속에는 충무공이 없습니다
한산섬의 충무공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한산섬에 가 있으리라는 당신의 말을 따라 오늘은 충무공을 찾아서 이곳 한산섬에 왔습니다. 당신은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는 충무공 동상 속에는 이순신 장군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밤중에 ‘구리 이순신’이 그 무거운 입을 열어 지나가는 엿장수에게 구리 갑옷을 벗겨 달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부릅뜬 눈으로 큰 칼 짚고 서서 경복궁과 청와대를 지키는 일을 이제 그만두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한다고 하였습니다.

탄신 451주년을 맞은 엊그제도 화환 두 개가 발 밑을 밝히고 있는 것만 다를뿐 아무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기는 여늬때와 조금도 다름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으로 그를 찾아 왔습니다. 과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 있었습니다. 구리 갑옷을 벗고 시원한 바닷바람에 머리카락 날리며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옷차림으로 푸른 물에 얼굴을 씻고 있었습니다.
미륵산, 개미목, 학섬, 죽도, 봉화대, 활터 그리고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수루…….
여기야말로 충무공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산섬은 1593년 본영(本營)을 여수에서 이곳으로 옮겨 온 후 1597년 충무공이 서울로 압송될 때까지 4년간을 지키고 있었던 곳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만나는 충무공의 첫번 째 모습은 옥포(玉浦)해전의 승리를 시작으로 당포(唐浦) 한산도(閑山島) 부산해전에 이르기까지 연이은 대첩(大捷)을 휘몰아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우뚝하게 일어서는 모습입니다.
일본군의 예봉을 꺾어 간담을 서늘하게 한 위풍당당한 모습입니다.
두 번째의 모습은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언제 다시 반격해올 지 모르는 팽팽한 대치상황 속에서 나라의 존망을 한 몸에 지고 일본군이 움직이는 순간을 노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거제해협과 진도해협을 거쳐 서해(西海)와 한강(漢江)으로 이어지는 일본군의 해상진격로와 보급로를 봉쇄하고 충청.전라의 양호(兩湖)백성들과 곡창(穀倉)을 지켜야 하는 전략지점에 서서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세번째의 모습은 조정을 기만하고 임금을 무시한 죄, 적을 토벌하지 않고 나라를 저버린 죄로 압송되는 죄인의 모습입니다. 모함과 당쟁의 희생이 되어 하루아침에 죄인으로 전락하는 비통한 모습입니다.
네번 째의 모습은 옥에서 풀려나와 통곡하는 모습입니다. 패전의 비보를 듣고 피란민의 행렬 속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는 모습입니다. 그가 이룩해 놓은 함대는 형적도 없이 파괴되고 군량(軍糧) 화약(火藥) 총통(銃筒)할 것없이 피땀으로 쌓아놓은 군비(軍備)는 한 줌의 재로 불타버리고 백성들마저 적들의 어육이 되어 짓밟히고 있는 참담한 패보(敗報)에 접하고 통곡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모습은 병선 12척을 이끌고 100여척이 넘는 일본함대를 향하여 돌진하는 비장한 모습과 일본함대를 격퇴하고 승리를 눈앞에 둔 환희의 순간에 조용히 눈감고 세상을 떠나는 모습입니다.

한산섬에는 이처럼 환희와 통곡, 호령과 침묵이 교차되는 실로 살아있는 충무공의 얼굴이 푸른 바다위에 가득히 펼쳐집니다. 이러한 얼굴들은 자동차의 물결속에 서 있는 광화문의 구리 이순신의 표정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 정작 이곳 한산섬 앞바다에 와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의 이러저러한 모습은 언제나 수많은 백성들속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불바다에서 호령하고 있을 때에도, 팽팽한 긴장 속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을 때에도 그리고 옥에서 풀려나와 패허가 된 군진(軍鎭)으로 돌아 올 때마저도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함선을 만들고 수리하는 사람, 활을 만들고 화약을 만드는 사람, 적의 움직임을 알려오는 사람, 바닷 물길을 가르쳐주는 사람, 둔전을 일으키고 고기를 잡고 소금을 구워 군량을 마련하는 사람…….
그는 언제나 사람들로 에워싸여 있었습니다.
달밝은 밤 홀로 앉아 있는 동안에도 그는 전화(戰禍)에 떨고 있는 수 많은 생령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몇몇 권세가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그의 모습이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군관ㆍ병사 그리고 마을의 고로(古老)와 노복(奴僕)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운집(雲集)속에 서 있는 충무공의 모습이야 말로 그의 참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탁월한 전략(戰略)도 바로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연전연승 불패(不敗)의 신화도 바로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군량(軍糧)도 병력(兵力)도 이 풍부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무거운 구리옷 벗어버리고 바람에 옷자락 날리며 바다처럼 풍부한 사람들의 한복판에 서 있는 충무공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당신의 글을 다시 읽습니다.
"사람들의 머리위에 서 있는 우상(偶像)은 사람들을 격려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본질에 있어서 억압(抑壓)이다."
천재와 위인(偉人)을 부정하는 당신의 이유를 알 것같습니다. 광화문의 동상속에 충무공이 없다는 당신의 말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강한 사람이란 가장 많은 사람의 힘을 이끌어 내는 사람이며, 가장 현명한 사람이란 가장 많은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산섬을 떠나 오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우상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고 있는가를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시대가 발견해야 할 수많은 사람(衆)과 땅(大地)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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