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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
얼음골 스승과 허준




이 엽서는 고향의 산기슭에서 띄웁니다.
스승 유의태가 제자 허준으로 하여금 자신의 시신을 해부하게 하였던 골짜기입니다.
소설 동의보감의 바로 그 얼음골입니다.
오뉴월 삼복에는 얼음으로 덮이고 겨울에는 오히려 더운 물이 흐르는 계곡입니다.
인체의 해부가 국법으로 금지돼 있던 시절, 스승은 이 얼음골로 제자 허준을 불러들였던 것입니다.
스승의 부름을 받고 찾아간 허준의 앞에는 왕골자리에 반듯이 누운 채 자진(自盡)한 스승의 시체와 시체 옆에 남겨진 유서가 황촉불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병을 다루는 자가 신체의 내부를 모르고서 생명을 지킬 수 없기에 병든 몸이나마 네게 주노니 네 정진의 계기로 삼으라고 적은 유서.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앉은 허준.
의원의 길을 괴로워하거나, 병든 이를 구하기를 게을리하거나,
이를 빙자해 돈이나 명예를 탐하거든 벌이라도 달게 받을 것을 맹세한 다음 스승의 시신을 칼로 가르던 허준의 모습이 어둠속에서 되살아나는 듯 합니다.
오늘은 그날의 횃불 대신 타는 듯한 단풍이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바위너덜에 앉아 생각했습니다.
소설 속의 유의태와 허준의 이야기는 물론 소설가가 그려낸 상상의 세계이며,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사실은 아니라 하더라도 ‘진실’임에는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사실이라는 그릇은 진실을 담아내기에는 언제나 작고 부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20년의 징역살이와 7년여의 칩거후에 가장 먼저 찾아온 곳이 이곳 얼음골이라는 사실이 내게도 잘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갇힌 사람들에게 ‘출소’의 가장 큰 의미는 ‘독보’입니다.
혼자서 다닐 수 있는 권리를 그곳에서는 ‘독보권’이라 하였습니다.
가고 싶은 곳에 혼자서 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설레는 해방감이었습니다.
이제 어머님에 이어 홀로 남아계시던 아버님마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나는 차라리 허전한 마음으로 기차를 타고 무작정 떠나 왔습니다.

오뉴월이 아닌 가마볼 얼음골에는 이미 얼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처절하게 승계하는 현장에서 나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의 엄정함 하나만으로도 가슴넘치는 감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스승이기도 합니다.
이 배우고 가르치는 이른바 사제의 연쇄를 더듬어 확인 하는 일이 곧 자신을 정확하게 통찰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중학교 때든가 나는 이곳에 아버님을 따라온 적이 있습니다.
여든일곱에 440여쪽의 책을 출간하시고 여든여덟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이 생각납니다. 아버님은 그 책에서 사람은 그 부모를 닮기보다 그 시대를 더 많이 닮는다고 하였지만 내가 고향에 돌아와 맨처음 느낀 것은 사람은 먼저 그 산천을 닮는다는 발견이었습니다.
산의 능선은 물론 나무와 흙빛까지 그토록 친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이 WTO체제이후 한낱 광고문안으로 왜소화되어버렸지만 어린시절의 산천이 바로 자신의 정서적 모태가 되고 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산천과 사람, 스승과 제자의 원융(圓融).
이것이 바로 삶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둠에 묻혀가는 얼음골위로 석양을 받아 빛을 발하고 있는 암봉(巖峰)이 문득 허준의 얼굴처럼보이기도 하고 스승 유의태의 얼굴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동의보감』의 찬술을 명한 왕의 교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나는 약재를 자세하게 적어서 지식이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병을 고칠 수도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 글에 나타난 민족의식과 백성들에 대한 애정은 선조왕의 것이 아니라 허준의 마음이고 허준을 가르친 스승의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동의보감』의 찬술 자체가 허준의 기획이었고, 허준의 집필이었음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동의보감』의 완성은 오로지 허준 혼자만의 외로운 작업이었고 그나마 절해고도의 유배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300년 후 이제마(李濟馬)의 사상의학이 나오기 까지 우리풍토와 체질에 맞는 유일한 의학서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낸 책이었습니다.
『동의보감』외에도 허준이 심혈을 기울인 저술은 대부분이 난해한 전문서적을 한글로 쉽게 풀어쓰는 일이었습니다. 서출인 의원 허준에 대한 선조의 파격적인 가자(加資)는 이와 같은 허준의 백성에 대한 애정과 경륜을 높이 사서 내린 것이라 짐작됩니다.
나는 얼음골에 쌓이는 어둠속에 앉아서 한사람의 허준이 있기까지 그의 성장을 위하여 바쳐진 수많은 사람의 애정과 헌신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한 송이의 금빛 국화가 새벽이슬에 맑게 피어나기 위하여 간밤의 무서리가 내리더라는 백거이(白居易)의 시 <국화>가 생각납니다.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던 노신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옛날의 어머니들은 자기가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저마다 누군가의 자양이 되는 것을 삶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자모(慈母)라 하였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연쇄 가운데에다 자신을 세우기보다는 한 벌의 패션 의상과 화려한 언술로 자기를 실현하고 또 자기를 숨기려하는 것이 오늘의 문화입니다.
당신의 장탄식이 들리는 듯 합니다. 무수한 상품의 더미와 그 상품들이 만들어내는 미학에 매몰된 채 우리는 다만 껍데기로 만나고 있을 뿐이라던 당신의 말이 생각납니다. 정작 둬려운 것은 그러한 껍데기를 양산해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을 잊고 있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고매한 도덕적 언어들이 수천억원의 부정한 축재로 여지없이 무너져내리는 이 위선의 계절에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가르치고 무엇으로 배우는가하는 생각이 얼음골의 차거운 교훈으로 남습니다.
알튀세르는 연극이란 새로운 관객의 생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관람을 완성하기 위해, 삶속에서 완성하기 위해, 그 미완성의 의미를 추구하기 시작하는 배우의 생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관람을 완성하기 위하여, 삶 속에서 완성하기 위하여, 그 미완성의 의미를 추구하기 시작하는 배우의 생산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무대위를 걷든, 객석에 않아 있든, 어차피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 저마다 그 미완성의 의미를, 그 침묵과 담론의 완성을 천착해가는 사람들속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화사한 언어의 요설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의 앞뒤좌우에 우리와 함께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으로써 깨닫고, 삶으로써 가르칠뿐이라 믿습니다.
여느 해보다 청명하고 길었던 가을이 끝나고 있습니다. 등뒤에 겨울을 데리고 있어서 가을을 즐기지 못한다던 당신의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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