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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무를 더 사랑하는 까닭
소광리 소나무숲




오늘은 당신이 가르쳐준 태백산맥속의 소광리 소나무숲에서 이 업서를 띄웁니다.
아침햇살에 빛나는 소나무숲에 들어서니 당신이 사람보다 나무를 더 사랑하는 까닭을 알 것 같습니다. 200년 300년 더러는 500년의 풍상을 겪은 소나무들이 골짜기에 가득합니다.
그 긴 세월을 온전히 바위위에서 버티어 온 것에 이르러서는 차라리 경이였습니다.
바쁘게 뛰어 다니는 우리들과는 달리 오직‘신발 한 켤레의 토지’에 서서 이처럼 우람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이고 경이였습니다.
생각하면 소나무보다 훨씬 더많은 것을 소비하면서도 무엇하나 변변히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소광리의 솔숲은 마치 회초리를 들고 기다리는 엄한 스승같았습니다.

어젯밤 별 한 개 쳐다볼 때마다 100원씩 내라던 당신의 말이 생각납니다.
오늘은 소나무 한 그루 만져볼 때마다 돈을 내야 겠지요. 사실 서울에서는 그보다 못한 것을 그보다 비싼 값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경복궁 복원공사현장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일제가 파괴하고 변형시킨 조선정궁의 기본궁제를 되찾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오늘 이곳 소광리의 소나무숲에 와서는 그러한 생각을 반성하게 됩니다.
경복궁의 복원에 소요되는 나무가 원목으로 200만재, 11톤 트럭으로 500대라는 엄청난 양이라고 합니다. 소나무가 없어져가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기어이 소나무로 복원한다는 것이 무리한 고집이라고 생각됩니다. 수많은 소나무들이 베어져 눕혀진 광경이라니 감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를테면 고난에 찬 몇백만년의 세월을 잘라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각없이 잘라내고 있는 것이 어찌 소나무만이겠습니까.
없어도 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하여 없어서는 안될 것들을 마구 잘라내고 있는가 하면 아예 사람을 잘라내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위의 유일한 생산자는 식물이라던 당신의 말이 생각납니다.
동물은 완벽한 소비자입니다. 그 중에서도 최대의 소비자가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생산이란 고작 식물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나 땅속에 묻힌 것을 파내어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쌀로 밥을 짓는 일을 두고 밥의 생산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의 주체이며 급기야는 소비의 객체로 전락되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자연을 오로지 생산의 요소로 규정하는 경제학의 폭력성이 이 소광리에서 만큼 분명하게 부각되는 곳이 달리 없을 듯 합니다.

산판일을 하는 사람들은 큰 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에 올라서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잘린 부분에서 올라오는 나무의 노기가 사람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어찌 노하는 것이 소나무뿐이겠습니까. 온 산천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당신의 말처럼 소나무는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풍상을 겪어 온 혈육같은 나무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꽂아 부정을 물리고 사람이 죽으면 소나무 관속에 누워 솔밭에 뭍히는 것이 우리의 일생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 속의 한을 달래주는 것이 바로 은은한 솔바람입니다.
솔바람뿐만이 아니라 솔빛 솔향 등 어느것 하나 우리의 정서 깊숙히 들어와 있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소나무는 고절(高節)의 상징으로 우리의 정신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고 있습니다. 금강송의 곧은 둥치에서 뿐만 아니라 암석지의 굽고 뒤틀린 나무에서도 우리는 곧은 지조를 읽어낼 줄 압니다.
오늘날의 상품미학과는 전혀 다른 미학을 우리는 일찍부터 기꾸어놓고 있었습니다.

나는 문득 당신이 진정 사랑하는 것이 소나무가 아니라 소나무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마른 땅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지금쯤 서울거리의 자동차속에 앉아 있을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외딴 섬에 갇혀 목말라 하는 남산의 소나무들을 생각했습니다.
남산의 소나무가 이제는 더이상 살아남기를 포기하고 자손들이나 기르겠다는 체념으로 무수한 솔방을을 달고 있다는 당신의 이야기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더구나 그 솔방울들이 싹을 키울 땅마저 황폐해버렸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암담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카시아와 활엽수의 침습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척박한 땅을 겨우 겨우 가꾸어 놓으면 이내 다른 경쟁수들이 쳐들어와 소나무를 몰아내고 만다는 것입니다.
무한경쟁의 비정한 논리가 뻗어오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나는 마치 꾸중듣고 집나오는 아이처럼 산을 나왔습니다.
솔방울 한 개를 주워들고 내려오면서 거인에게 잡아먹힌 소년이 솔방울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소생했다는 신화를 생각하였습니다.
당신이 나무를 사랑한다면 솔방울도 사랑해야 합니다.
무수한 솔방울들의 끈질긴 저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언젠가 붓글씨로 써드렸던 글귀를 엽서 끝에 적습니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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